● 장면 #1 네오콘과의 싸움
북핵 협상은 북한 사람들과의 협상이지만, 사실 미 행정부 내 강경 신보수주의자들인 네오콘과 온건 협상파의 투쟁이었다. 한 축의 정점에 딕 체니 부통령과 백악관 참모들, 재무부 제재 파트 인사들이 있었고, 다른 쪽에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과 힐 차관보가 있었다. 힐은 ‘체니와의 아침식사’라는 제목으로 한 장(章)을 할애해 딕 체니에 대한 식지 않는 분노를 드러냈다.
2007년 7월 라이스 국무장관이 백악관 대통령 집무실(Oval Office)에 같이 가자고 불렀다. 대통령과 부통령에게 북핵 문제를 브리핑하는 자리였다. 부시 대통령은 자신과 중국의 장쩌민 전 주석이 텍사스 크로포드 목장에서 일찍이 합의한 6자회담이 성과를 내자 힘이 난 모양이었다.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셋째, 한국 측과 계속해서 긴밀히 협의할 것입니다... 넷째...”
그런데 옆에 앉아있던 체니 부통령은 졸고 있었다. 사실 체니는 심장이 좋지 않았던 터라 그 다음날 조지워싱턴대 병원에 입원했다. 그런데, 체니는 도통 다른 사람의 생각에 상관치 않는 사람이었다. 바그다드 거리에 장미꽃잎이 깔릴 거라는 웃기는 - 아니 비극적인- 잘못을 저질러 놓고 여전히 자기만의 외교 정책을 계속하는 듯했다. 대통령의 관점마저 무시했다.
백악관 상황실에서 대통령이 주재한 토론을 하는데, 체니가 완전히 잘못된 장광설을 늘어놓았다. 보고서를 제대로 읽지도 않고서 북한과 이란의 협력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다. 대통령이 보고 있는 가운데 콘디(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가 나섰다.
“부통령님! 제가 읽은 바로는 그 보고서를 어떤 관점에서 보더라도 그것은 보고서가 말하려는 내용이 아닙니다.”
부통령은 더 이상 말이 없었다.
같은 해 10월, 부시 대통령은 체니 부통령과 아침 식사에 콘디와 나를 다시 불렀다. 스티브 해들리 국가안보보좌관도 있었다. 부시는 야구 이야기로 대화를 시작했다. 북핵 문제로 넘어가자 콘디가 앞장섰다. 생각이 깊고 세밀하며 잘 구조가 짜여있는 설명,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여기서 어디까지 갈 수 있을 것인지 냉정한 설명을 대통령 앞에서 했다. 정확한 플루토늄의 양에서부터 동북아 안보 메커니즘을 창설하려는 노력까지 6자회담의 모든 측면을 통합하는 능력이 정말 경이적이었다. 대통령은 문제를 잘 알고 있는 듯 중간 중간 구체적인 질문을 던졌다. 대통령은 이미 생산된 플루토늄을 어떤 국제 감시체제 아래에 두고, 언젠가는 북한에서 제거하는 데 매우 희망적이었다. 해들리도 귀 기울여 들었다.
그런데, 체니 부통령은 남은 계란과 버터를 듬뿍 바른 토스트를 먹는데 더 열중이었다. 대통령이 부통령을 쳐다보며 말했다.
“딕, 콘디와 크리스(크리스토퍼 힐)에게 할 질문 없어요?”
“글쎄요. 저는 어떤 사람들만큼 이 문제가 그렇게 내키지 않아요 (not enthusiastic).”
이번에는 콘디가 나서고 싶지 않아 하는 것 같아 내가 나섰다.
“부통령님, 내키지 않기는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제가 맡은 일을 하고 밤에는 퇴근하고 싶을 뿐입니다.”
나의 목소리에 담긴 긴장을 대통령이 감지한 것 같았다.
“좋아요, 크리스. 부통령은 그저 검증 체계가 어떻게 될지 걱정하는 것뿐이에요.”
콘디가 설명했다. 만족할 만한 검증 레짐에 도달하지 못한다면, 계속 나갈 수는 없을 거라고. 체니는 투덜거리며 아침 식사를 마저 했다.
힐은 책 곳곳에서 부시 행정부 내 네오콘에 대한 우려와 반감을 드러냈다. 상대적으로 2기 집권 때의 부시 대통령은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과 더불어 협상을 지향하는 온건파로 그려졌다.
● 장면 #2 북핵 6자회담 부활은 야구장에서 이뤄졌다
2005년 6월 29일 힐은 워싱턴 DC의 RFK 스타디움에 있었다. 워싱턴 내셔널즈와 피츠버그 파이레이츠의 야구 경기다. 5회 동점 상황. 3루 쪽 관중석에 앉아 있었다. 좋은 자리였다. 경기도 경기지만 조바심 나게 전화를 들여다봤다. 마침내 전화벨이 울렸다.
“크리스, 조 디트라니에요. 협상을 타결한 것 같아요.”
“좋아요, 조. 그들이 합의한 게 뭔지 말해 봐요.”
6자회담의 미국 측 차석 대표인 조셉 디트라니(Joseph DeTrani)가 뉴욕에서 걸어온 전화다. 한 외교 관련 민간단체가 주최한 ‘트랙-2’ 콘퍼런스에 북한 측 인사들 몇 명이 참석했다. 북한 정부 핵협상의 2인자인 리근도 참석했다.
디트라니는 미국 측에서 북한 대표단을 만나준다면 6자회담에 기꺼이 복귀할 것으로 '확신한다'는 리근 북측 대표의 말을 전했다.
미 국무부의 동아태 차관보이자 6자회담 미국 측 수석대표를 맡은 크리스토퍼 힐은 리근과 직접 통화를 원했다. ‘확신한다’는 표현이 못 미더웠다. 야구 경기 분위기라 무르익어 시끄러웠다.
“미스터 리, 반갑습니다. 내가 김계관 씨를 베이징에서 만난다면, 당신 정부가 6자회담 복귀를 발표하겠다는 뜻인지 분명히 하고 싶습니다.”
“네, 제가 이해하는 바로는 그렇습니다.”
3차 회담 뒤 지지부진하던 북핵 6자회담은 그렇게 뉴욕과 워싱턴의 채널을 통해 순풍을 타게 됐다. 라이스 국무장관에게 보고했고 “최선을 다하라”는 훈령을 받고 북-미-중 베이징 3자 회담에 임했다.
그런데, 3자 회담은 뜻하지 않게 북-미간 양자회담이 돼 버렸다. 중국 측 인사가 회담장에 나타나지 않은 것이다. 북한과의 직접 대화를 금기시했던 미 행정부에서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마침 라이스 국무장관은 미중 외교장관 회담을 위해 베이징으로 향하고 있었다.
“왜 거기 없었죠?”
라이스는 리자오싱 중국 외교부장에게 정색하고 따졌다.
“북한 사람들이 우리가 오는 걸 원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북한 사람들이 협상 테이블로 돌아왔으니 결과는 좋은 거지요.”
콘디는 더 따지고 들었다. 배석한 힐이 보기에 위험 수위다 싶을 정도였다. 회담은 끝나고 콘디는 기자회견에 나섰다. “6자회담 재개는 이제 시작일 뿐이다, 비핵화의 진전이 필요하다, 북한은 전략적 선택을 해야 한다”며 또박또박 훌륭한 기자회견을 해냈다. 4차 6자회담이 열리게 된 것이다.
● 장면 #3 냉각탑 폭파는 내가 제안
4차 6자회담의 성과물인 9.19 공동성명을 좌초시켰던 BDA(방코델다아시아)의 북한 자금 문제로 곡절을 겪다 2.13 합의(2007년 2월)와 핵 시설 동결(2007년 7월), 10.3 2단계 조치 합의 (2007년 10월)까지 노무현 정부 말기에 북핵 문제는 순풍을 탔다. 그리고, 이명박 정부 들어 극적인 장면이 연출됐는데 영변 5mW 원자로의 냉각탑 폭파였다. 이른바 북핵 ‘불능화’ 합의에 따라 영변 원자로의 일부를 날려버리는 것이었다. 이렇게만 된다면 언제가 영변 원자로도 같은 길을 걸을 테니 그 의미는 대단해 보였다. 북핵 실무협상의 주역으로 떠오른 성김(Sung Kim) 국무부 한국과장이 바로 거기 있었다. 이 장면은 CNN을 비롯한 방송을 통해 전 세계에 생중계됐다. 그 제안을 처음 한 사람은 크리스토퍼 힐이었다.
이 탑을 폭파시켜 버리는 아이디어는 북한의 6자회담 수석대표인 김계관 외무성 부상에게 처음 내놨다. 이 사건을 전 세계에서 지켜볼 것이니 우리의 여정의 진정성에 대한 의심을 극복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었다. 적어도 플루토늄 생산에 관한 한. 그는 관심 있어 했지만 조심스러웠다. 베이징에서는 우다웨이 중국 측 6자회담 수석대표에게 이야기했다. 불능화 조치로 낡은 파이프들을 톱으로 잘라내고 있는데 그러한 작업들에 어떤 의미를 부여할 제스처가 필요하다고. 우 대사에게 노트를 보여주며 “이렇게 생긴 냉각탑을 무너뜨려야 한다”고 말했다. 우 대사가 답했다. “그들(북한)을 확신시킬 수 있을 겁니다.”
냉각탑 폭파는 그해 6자회담의 마지막 성과가 될 것이었다. 진짜 엔드게임은 불완전할 것이 분명한 북한의 핵 시설.물질 신고가 아니라는 것을 성김을 비롯해 우리 팀의 핵심인사들은 모두 알고 있었다. 진짜 문제는 제대로 된 검증 프로토콜을 갖고,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북한에 존재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을 찾아내는 것이었다.
6자회담은 신고와 검증의 벽에 부딪혀 결국 흐지부지 됐다. 플루토늄 이외에 고농축우라늄(HEU) 프로그램까지 북한이 갖고 있느냐, 있다면 어디까지 와 있는가가 관건이었다. 북한이 영변의 흑연감속로를 재가동해 6자회담 합의는 종이 짝이 됐지만 그래도 폭파시켜버린 냉각탑 때문에 정상적인 가동에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게 위성사진 분석을 통해 드러나고 있다. 이도 저도 아닌 상태로 시간만 흐를 것인가, 아니면 힐과 같은 협상가가 다시 나와 6자회담 재개를 주도할 날이 올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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