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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여성 이름 허리케인의 피해가 크다

[취재파일] 여성 이름 허리케인의 피해가 크다
‘허리케인 카트리나(Hurricane Katrina)’, 지난 2005년 8월 하순에 미국 플로리다 동쪽 대서양에서 발생해 플로리다와 루이지애나, 미시시피 등 미국 남동부를 강타한 초대형 허리케인이다. 가장 강력하게 발달한 시점, 중심 기압은 최고 902헥토파스칼까지 떨어졌고, 중심에서는 초속 73미터의 강풍이 몰아쳤다. 카트리나가 상륙했던 루이지애나는 말 그대로 물바다로 변했다. 인명피해만도 2,500명을 넘어섰다(위키피디아).

Katrina, 카트리나는 한때 큰 인기를 끌었던 여자 이름이다. 순수(‘pure')하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고 한다.

허리케인에 본격적으로 이름을 붙이기 시작한 것은 지난 1950년대 초다. 처음에는 여성 이름만 사용했지만 현재는 여성 이름과 남성 이름을 교대로 사용하고 있다(자세한 것은 아래 참고). 허리케인에 본격적으로 이름을 붙인지 60년이 넘었다. 허리케인 이름과 피해 규모와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허리케인 이름을 보고 다가올 위험을 판단하는 사람이 있을까?

미국 일리노니 대학과 애리조나 주립대학 공동연구팀이 1950년부터 2012년까지 63년 동안 미국에 상륙한 94개의 허리케인 이름과 피해 규모와의 관계를 조사했다(Jung et al, 2014). 보통의 태풍과 달리 엄청난 피해를 낸 허리케인 카트리나(Katrina, 2005)와 오드리(Audrey, 1957)는 제외 했다. 물론 둘 다 여성 이름이다. 유명 영화배우 오드리 헵번(Audrey Hepburn)이 있지 않은가?  

조사결과 평균적으로 여성 이름이 붙은 허리케인의 피해 규모가 남성 이름이 붙은 허리케인의 피해 규모보다 훨씬 큰 것으로 나타났다. 여성과 남성 이름을 교대로 붙이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이유는 고정관념이다. 이름이나 사물에는 그 것이 갖는 고정관점이 있는데 이 고정 관념이 피해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여성 이름 태풍의 경우 일반인들은 그 태풍이 남성 이름이 붙은 태풍에 비해 약하고 위험하지 않을 것으로 판단했다는 것이다. 때문에 여성 이름이 붙은 태풍 올 때는 그 만큼 위험에 대한 대비도 소홀히 했다는 것이다. 다른 조건이 같다면 대비가 소홀했던 만큼 피해는 커질 수밖에 없다.

연구팀이 실제로 허리케인에 여성 이름과 남성 이름을 붙여 일반인의 생각을 물어본 결과 여성 이름을 가진 허리케인보다 남성 이름을 가진 허리케인이 더 강하고 위험할 것으로 판단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비슷한 이름이라도 허리케인  Alexandra, Christina, Victoria(여성 이름)보다는 허리케인 Alexander, Christopher, Victor(남성 이름)가 더 강하고 위험할 것으로 판단한다는 것이다. 

다음 그림은 연구팀이 지금까지 상륙한 허리케인 각각의 이름과 그리고 당시 사망자 수를 기준으로 만든 이름과 사망자 수 사이의 관계를 이용해 허리케인 이름이 사망자 수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추정한 한 사례다. 사망자 추정에서 허리케인의 강도는 중심기압을 964.90헥토파스칼로 고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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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설명 : 허리케인 이름에 따른 사망자 추정, 자료: Jung et al, 2014

그림에서 볼 수 있듯이 허리케인 이름이 남성적인 것에서 여성적인 것으로 바뀔수록 최고로 발생할 수 있는 사망자 수가 급증한다. 같은 위력(중심기압 964.90hPa)을 가진 허리케인이 상륙하더라도 매우 남성적인 이름을 붙이면 사망자가 최고 10명 정도에 불과하지만 매우 여성적인 이름을 붙이면 사망자가 최고 58명까지 늘어날 수 있다는 뜻이다. 허리케인 이름에 따라 피해가 엄청나게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허리케인 이름과 당시 사망자와 관계를 기준으로 추정한 결과인 만큼 실제로 지금까지 이 같은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태풍이나 허리케인의 이름은 편의상 임의로 붙인 것이다. 하지만 이름이나 사물에는 그 이름과 사물이 갖는 고정관념이 있게 마련이다. 다른 뜻은 전혀 없고 단순히 편의상 붙인 이름이지만 일반인에게 전달될 때는 불행하게도 의도와는 전혀 상관없이 얼마든지 의미가 달라질 수 있다는 뜻이다. 태풍의 이름을 정하고 또 부르면서 일반인에게 정보를 전달하는 정책결정자나 기상캐스터, 언론인, 공공안전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단순히 정보만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일반 사회와 개인이 받아들이는 위험에 대한 인식과 위험에 대한 평가나 판단까지도 고려해야 한다는 뜻이다.

우리나라가 태풍위원회에 제출한 태풍 이름은 개미', ‘나리', ‘장미', ‘미리내', ‘노루', ‘제비', ‘너구리', ‘고니', ‘메기', ‘독수리' 등 모두 10개다. 태풍이 큰 피해 없이 얌전하게 지나가기를 바라는 뜻에서 대부분 예쁘고 부드러운 이름을 제출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태풍 ’개미‘가 한반도로 북상 한다>라는 말과 <태풍 독수리가 한반도로 북상 한다>라는 말을 들을 때 일반인이 느끼는 느낌은 다를 수 있다. 특히 태풍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모르는 상태에서 태풍 이름을 들을 때는 더더욱 느낌이 달라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참고> 열대성저기압(태풍) 이름의 역사

열대성저기압에 이름을 붙인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카리브 해 섬나라에서는 수 백 년 전부터 열대성저기압에 이름을 붙였다. 19세기 말부터는 호주에서도 열대성저기압에 이름을 붙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당시 호주 예보관들은 자신들이 싫어하는 정치가의 이름을 붙이기도 했는데, 예를 들어 싫어하는 정치가가 앤더슨이라면 앤더슨이라는 이름을 붙여놓고‘앤더슨이 태평양에서 헤매고 있다.’거나 ‘앤더슨이 엄청난 재앙을 몰고 올 것으로 예상된다.’와 같은 예보를 했다고 한다. 기상학이라는 학문이 처음 시작된 시절 미국에서는 이름 대신 허리케인이 발생한 위치를 나타내는 위도와 경도를 붙이기도 했다. 위도 경도를 붙이고 나니 부르기도 어렵고 서로 의사소통도 잘 안되고 기억하기조차 어려웠다.

열대성저기압에 여성 이름을 붙이는 방법이 널리 퍼진 것은 제2차 세계대전 때다. 태평양에서 근무하던 미국 군인들이 자신의 부인이나 애인 이름을 붙인 것이다. 당연히 부르기 쉽고 기억하기도 쉽고 전달도 잘 됐다. 1953년 미국 태풍센터(National Hurricane Center)는 열대성저기압에 여성 이름을 붙이는 이 방법을 채택했다. 하지만 성 평등 문제가 제기되면서 1979년부터는 여성 이름 뿐 아니라 절반은 남성 이름을 사용하게 됐고 이후 여성과 남성 이름을 교대로 붙이고 있다. 현재 대서양에서 발생하는 허리케인은 24개로 이뤄진 6개 조 즉 144개 이름을 만들어 놓고 매년 1개조씩 순서대로 이름을 붙이고 있다. 특히 허리케인 피해가 크게 발생할 경우 그 이름은 삭제하고 대신 다른 이름으로 교체해 사용 한다.

태풍 이름도 1999년까지는 괌에 있는 미국 태풍합동경보센터(JTWC)에서 정한 사람 이름을 사용했지만 2000년부터는 태풍위원회 주관으로 아시아-태평양지역 14 회원국이 각각 10개씩 제출한 140개의 이름을 28개씩 5개조로 나눠 순차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허리케인 이름과 달리 거의 모두 사람 이름이 아니다. 주위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동식물 이름이 많다. 우리나라에서는 ‘개미’, ‘장미’, ‘노루’ 등 10개를 제출했고 북한에서도 ‘기러기’ 등 10개를 제출해 한글 이름이 20개나 된다(자료 : 국가태풍센터, National Hurricane Center, Geology.com).

<참고 문헌>

* Jung, Kiju, S. Shavitt, M. Viswanathan, and J.Hilbe, 2014: Female hurricanes are deadlier than male hurricanes. 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 doi:10.1073/pnas.1402786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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