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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택시와 버스의 위험운전 실태 보고

주행기록장치로 분석한 택시와 버스의 '위험운전행동'

[취재파일] 택시와 버스의 위험운전 실태 보고
택시와 버스에는 주행기록장치가 부착돼 있습니다. 운행기록장치에는 주행 중에 일어나는 모든 운행 기록이 1초마다 저장됩니다. 비행기의 ‘블랙박스’와 같은 장치입니다. 운행기록장치에 저장된 운행기록을 분석해 보면 택시와 버스의 운전 행태를 실증적으로 분석할 수 있습니다. 교통안전공단에 자료 분석을 의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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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안전공단에서 올해 1월 1일부터 9월 22일까지 전국에 있는 5만 7천대의 운행 기록을 분석했습니다. 전국에 등록된 61만대의 택시와 버스 중에 법인·개인택시 1만 3천대, 시내·농어촌·마을버스 4만 4천대의 운행기록을 살펴본 일종의 ‘빅데이터’ 분석입니다. 분석은 운행기록 분석시스템을 통해 이뤄졌습니다. ‘위험운전행동’이라는 조작적 정의를 바탕으로 11가지 요인을 적용해 분석했습니다. 대중교통 운전자들의 운전행태를 객관적인 데이터로 분석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 조작적 정의 : 사회과학분야에서 연구를 수행함에 있어 용어에 대한 정의입니다. 용어가 이 연구에 적용되는지 안 되는지를 결정하는 기준이나 절차 등을 구체화해서 연구의 목적에 따라 인과관계를 설정하는 개념입니다. 이번 분석에서는 택시와 버스 기사들의 운전행동 중 안전을 위협할 수 있는 운전 습관을 위험운전행동이라고 조작적 정의를 내리고, 이를 구체적으로 검증하는 요인으로 11가지를 설정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11가지 운전행동을 하면 위험하다는 논리가 이번 연구의 기본 개념이 되는 겁니다. 

※ 11가지 위험운전행동 : 급감속, 급정지, 급가속, 과속, 급출발, 장기 과속, 급진로변경, 급좌회전, 급우회전, 급유턴, 급앞지르기

● 택시는 약 610m, 버스는 약 1km마다 '위험 운전'

분석 결과는 대중교통 운전기사들의 평소의 위험한 운전 습관을 여실히 보여줬습니다. 택시는 100km를 주행할 경우 166회, 버스는 96.3회 위험운전행동을 하는 것으로 분석됐습니다. 택시는 약 610m를 주행하면서, 버스는 약 1km를 주행하면서 한번은 위험운전행동을 한다는 겁니다.

* 주기적으로 버스 정류장에 정차해 택시보다 불가피하게 감속과 가속의 빈도가 많을 수 밖에 없는 버스의 특징을 고려해야 한다는 전문가의 의견에 따라 택시는 계산에 따른 소수점 이하 처리를 '올림'으로 버스는 '내림'으로 계산했습니다.

택시와 버스 모두 운전위험행동 중 급감속을 가장 많이 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100km를 주행할 때 택시는 82.2회, 버스는 54회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 많이 하는 위험운전행동도 택시와 버스 모두 급진로변경입니다. 100km 주행할 때 택시 18.2회, 버스 13회입니다. 택시는 그 다음으로 급가속, 과속 순이었고, 버스는 과속, 급정지 순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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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전행동은 크게 가속페달을 사용하는 가속 행위, 브레이크를 사용하는 감속 행위, 그리고 핸들 조작 행위로 나눌 수 있습니다. 이 기준으로 11가지 위험운전행동을 재분류해 분석했습니다. 분석한 결과를 살펴보면, 감속과정에서 위험행동이 가장 빈번하게 일어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택시와 버스 운전기사들이 급감속이나 급정지를 가장 많이 한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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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급감속, 급정지는 1.8m 높이에서 자신의 몸무게가 떨어지는 충격을 고스란히 받는 것"
 
앞서 살펴봤듯이 대중교통운전자들은 '감속과정'에서 위험운전행동을 많이 합니다. 이런 감속과정인 급감속과 급정지가 얼마나 위험한지 실증적으로 알아봤습니다. 교통안전공단의 협조를 받아서 실험을 했습니다. 버스의 급감속이나 급정지는 무엇보다 승객들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줄 수 있습니다. 택시는 뒤 따르던 차량의 후방추돌 가능성을 높입니다. 따라서 버스는 실제로 급감속이나 급가속이 승객들에게 어느정도의 충격을 주는지, 택시는 급정지나 급감속이 후방 차량의 추돌사고에 어느 정도 영향을 주는지 초점을 맞춰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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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험에 참여한 참가자들과 함께 취재팀도 실험 버스에 올랐습니다. 시속 15km로 버스를 주행하다 천천히 감속을 해 정지하면 약간의 흔들림만 느낄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시속 15km로 주행하다 급감속을 하며 급정지를 했더니 깜짝 놀랄 만한 충격이 전해졌습니다. 실험에 참여한 참가자들도 넘어지지는 않았지만, 모두들 중심을 잃고 휘청였습니다. 특히, 버스에서 내리려고 승객이 이동 중에 제대로 중심을 잡지 못한 상태에서 일어나는 급감속이나 급정지는 더 위험했습니다. 

승객이 받는 충격을 받는 이유는 정지한 물체는 계속 정지하려고 하고 움직이는 물체는 계속 움직이려고 하는 ‘관성’ 때문입니다. 차가 앞으로 진행하면서 앞으로 가고자 하는 힘이 가해지고 있는데, 갑자기 속도를 줄이며 멈추면 앞으로 가고자 하는 힘이 그대로 승객들에게 전해지면서 승객들에게 충격을 주는 겁니다. 전문가는 이때 승객들에게 가해지는 충격은 "1.8높이에서 자신의 몸무게만큼의 물체가 떨어졌을 때 받는 힘이 승객에게 그대로 전달되는 것과 같다"고 설명했습니다.

● "급감속, 급정지는 도심에서는 안전거리 확보가 현실상 어렵기 때문에 위험하다"

서울시내 택시의 평균 주행속도는 약 시속 35km입니다. 전문가들은 이정도 속도라면 약 10m 정도 앞차와 거리를 유지하면 안전하다고 합니다. 안전거리가 확보되면 앞 차가 급정거를 해도 추돌사고를 피할 수 있다는 겁니다. 직접 후방 차량을 운전하면서 실험에 참여했습니다. 안전거리를 유지한 채 시속 35km로 달리면서 앞 차의 브레이크등이 들어오자마자 급브레이크를 밟았습니다. 차가 조금 밀리기는 했지만, 그래도 앞 차를 들이받지는 않았습니다. 반면에 같은 속도로 주행하면서 일반 시내 주행처럼 안전거리를 충분히 확보하지 못한 상황에서 앞차를 따라갔습니다.

앞 차의 브레이크 등이 들어오자마자 브레이크를 바로 강하게 밟았지만, 추돌을 피할 수는 없었습니다. 물론, 안전을 위해 앞차와 다른 차선으로 주행을 했고, 앞차 후미에 연결된 막대를 들이받는 것으로 추돌상황을 설정했습니다. 급정지나 급감속 사고는 후방 차량에도 일정 부분 책임이 있습니다. '안전거리 미확보'라는 과실입니다. 그런데 도심에서는 현실적으로 안전거리를 유지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대중교통은 거의 도심에서 운행되고 있는 교통수단입니다. 따라서 대중교통 운전자들이 급감속, 급정지하는 운전 습관은 추돌 사고를 일으키는 주요한 원인이 될 수 밖에 없다고 전문가는 강조했습니다.

● "급정지 급출발과 같은 운전습관의 위험성에 대한 인식은 여전히 부족"

시내버스 운전자들은 교통사고가 일어나는 원인을 전방주시 태만, 안전부주의, 신호위반 순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응답자의 약 60%가 ‘위반행위’가 교통사고 원인으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급출발 급제동과 같은 운전 습관으로 인한 사고가 원인이라고 생각하는 운전자는 13% 정도에 불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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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실제 사고 원인을 따져보면 급출발 급제동으로 인한 사고가 42.8%로 매우 높았습니다. 설문조사를 진행했던 전문가는 급출발, 급제동의 위험성에 대해 운전자들이 가볍게 인식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하나의 결과라고 분석했습니다.

● "징계에 대한 노사 합의가 필요하다"

운전 습관을 고치기 위한 방법 중에는 교육과 홍보가 있습니다. 현행법상 운전기사들은 연간 4시간 보수교육을 받아야 합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 정도 교육으로 10년 이상, 20년 이상 몸에 익은 습관을 바꾸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합니다. 교통안전공단을 비롯해 기관과 회사에서 지속적인 홍보를 한다고 하지만 그 효과에 대해서도 미지수입니다. 그런데 대중교통 운전기사들의 잘못된 운전습관은 시민들의 안전과 직결됩니다. 당장 위험운전행동을 줄이기 위한 구체적인 대안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한 버스 회사의 사례입니다. 지난 2009년 80대 버스를 운행하면서 59건의 사고가 났습니다. 사고율은 73.8%에 달합니다. 그런데 매년 사고율은 더 높아졌습니다. 2010년에는 80.2%, 2011년에는 82.1%까지 사고율이 높아졌습니다. 회사와 노조는 합의를 통해 2012년부터 운전자 과실 사고에 대해 운전기사에게 징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랬더니 사고율이 급격히 줄었습니다. 징계가 시작된 2012년 사고율은 41.1%였습니다. 2011년에 비해서 절반정도 줄어들었습니다. 반면, 다른 한 버스 회사는 운전기사들의 사기, 노동환경의 지나친 압박, 노동자에 대한 책임 전가 등의 문제로 징계대신 교육으로 대체했습니다. 2009년 77.8%였던 사고율은 매년 꾸준히 늘어나 2012년에는 109.7%에 육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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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에 무수히 많은 버스회사가 있습니다. 그 중 단 2개의 회사의 사례로 '징계'가 문제 해결의 유일한 답이라고 결론 내릴 수 없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힘의 균형에서 사주에게 밀릴 수밖에 없는 노동자인 운전기사에서 책임을 전가하는 징계만이 유일한 해답이라고 주장하는 것도 아닙니다. 단, 두 사례에서 보여주는 메시지는 간단합니다. 징계를 했을 때와 징계를 전혀 하지 않았을 경우에 사고율의 변화입니다.

이 사고율의 변화는 단순 교육과 홍보만으로는 운전행태의 변화를 이끌어내기는 현실적으로 한계가 있다면 노사 합의를 통한 적절한 징계가 어쩔 수 없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뒷받침해 주고 있습니다. 징계에 대한 논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노사 합의'입니다. 일방적으로 회사쪽에서 정한 기준에 따라 모든 책임을 운전자에게 떠 넘기는 징계를 거론하는 것이 아닙니다. 투명한 노사 합의를 통하지 않은 징계는 더 심한 위험운전행동을 낳을 수 있는 또 다른 요인이 될 것입니다.

운전기사의 책임을 묻는 동시에 제도적인 뒷받침도 병행돼야 합니다. 버스기사들의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절반정도가 배차간격 때문에 급출발이나 급제동 같은 위험운전행동을 한다고 답했습니다. 서울과 같이 버스공영제를 운영하지 않고 있는 대부분 지역의 버스운전기사들은 여전히 배차시간에 쫓기며 일을 하고 있습니다. 택시 기사도 마찬가집니다.

하루에 12시간 이상 일해도 한달에 200만 원 벌기도 힘든 열악한 환경속에서 조금이라도 더 벌기 위해 ‘빨리 빨리’ 운전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운전이 난폭해 질 수 밖에 없다고 이야기 합니다. 그리고 버스정류장에 불법 주정차된 차량, 갑자기 끼어드는 차량, 스마트폰을 보며 주위를 살피지 않고 그냥 길을 건너는 보행자들, 이런 교통방해 요소들이 운전자들의 운전습관을 더욱 거칠게 만들고 있다고 입을 모읍니다.

연구가 필요합니다. 설득력 있고 효과적인 대책을 내놓으려면 원인을 최대한 정확히 규명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대중교통 운전기사들의 운전이 너무 위험하다고 통상적으로 이야기해 왔지만 구체적인 근거를 제시하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교통안전공단이 분석한 자료가 처음으로 대중교통 운전기사들의 위험운전행동을 객관적으로 제시했습니다. 이제 시작입니다. 

앞으로도 계속 운행기록장치에 주행기록은 저장될 겁니다. 그리고 그 중요한 자료들이 계속 쌓일 겁니다. 이 자료를 바탕으로 연령에 따라, 운전 경력에 따라, 지역에 따라, 보수 수준에 따라 운전행태가 어떻게 다른지, 외국 대중교통 운전기사들과 우리나라 운전기사들은 어떤 차이가 있는지, 대중교통 사고 현황과 위험운전행동은 어떤 직접적인 연관성이 있는지, 다양하고 정밀한 연구가 이뤄지기 바랍니다. 관련 기관과 학계에 남은 과제입니다.
                   
▶ 2014년 10월 5일 8뉴스
버스·택시, 운행기록 분석해보니…도넘은 위험 운전 (최재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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