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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뮤지컬 '쓰릴미' 여전히 의미 있는 전율

[리뷰] 뮤지컬 '쓰릴미' 여전히 의미 있는 전율
뮤지컬 ‘쓰릴미’는 여러모로 강렬하다. 날씨에 비유하자면 폭우가 내리기 직전 잔뜩 찌푸린 하늘을 닮았다. 오묘하고 어두운 감성이 무대를 장악하고, 남자 배우들 2명이 ‘살인사건’을 중심으로 한 이야기를 진행한다. 이 뮤지컬은 서두르지 않는다. 추리소설을 한 장씩을 넘기듯 조금씩 인물들의 감정을 고조시킨다. 어느덧 추리소설의 마지막장을 덮을 때 관객들은 이 뮤지컬의 러닝타임 100분이 지났다는 걸 체감할 수 있다.

스티븐 돌기노프의 오프 브로드웨이 작품을 원작으로 하는 ‘쓰릴미’는 단출한 무대가 특징이다. 사각의 2층으로 구성된 검은색 무대에 남자 배우 2명이 오른다. 피아노 한 대는 인물들의 감정선을 좇으며 클라이맥스에서 몰아친다. 군더더기를 털어내고 최소한의 재료만 남긴 셈. 그러나 ‘쓰릴미’의 서사적 장점은 그래서 더 돋보인다.

내용 뿐 아니라 배우들의 연기도 돋보인다. 2007년 한국에서 초연된 ‘쓰릴미’를 거친 배우들이 훗날 좋은 평가를 받을 때 늘 이 뮤지컬이 빼놓지 않고 언급된다. 퀴어(Queer)물이라는 장르적 특성의 덕이 아예 없다면 거짓말이지만, 그보다는 공을 주고받듯 빠르게 주고받는 두 배우들의 감정연기가 매우 매력적으로 그려지는 게 더 큰 이유다.

‘쓰릴미’는 미국 전역을 충격에 빠트린 전대미문의 유괴살인사건을 중심으로 한다. 겉으로는 충격적 사건이 조금씩 실체를 드러내는 스릴러가 중심이 되는 듯 보이지만 사실은 치열한 소유의 줄다리기를 하는 ‘나’와 ‘그’의 심리극에 방점이 찍힌다.

에녹과 정욱진 페어는 예리한 면도칼로 도려내듯 ‘나’와 ‘그’의 미묘한 감정선의 변화를 잘 표현한다. 선 굵은 연기를 주로 해온 에녹은 발톱을 잔뜩 세운 어린 짐승처럼 위험하지만 그 속은 연약한 ‘그’를 잘 표현했고, 정욱진은 맹목적인 소유욕과 집착을 드러내는 ‘나’를 설득력 있게 그렸다.

젊은 배우들의 호연에 힘입어 2014년 ‘쓰릴미’는 더 정교하게 다듬어졌다는 느낌이 든다. 전율에 집착하는 남자와 그를 소유하고자 하는 남자의 엉킨 실타래를 긴장감 있게 풀어내고, 결말에서 반전을 맞을 때 객석에서는 큰 박수가 터진다. 무대의 전환이나 오케스트라의 음악, 새로운 인물의 등장 없이 두 인물이 거대한 스토리를 이끌어 온 것에 대한 칭찬의 의미를 담는다는 걸 어렵지 않게 눈치 챌 수 있다.

충격적인 역사적 사건을 재구성한 작품들이 인기를 끌면서 스스로 자아복제를 거듭하고 있다. 그럴수록 2014 ‘쓰릴미’의 전율은 더 큰 의미를 갖는다. ‘쓰릴미’에 재관람 관객들이 유독 많은 건, 작품의 완성도를 위해 쏟아부은  노력과 이 작품을 거쳐간 배우들의 진지한 도전의식이 골고루 나눠가질 공이다.

‘쓰릴미’는 에녹, 런, 정동화, 신성민, 정욱진, 임병근, 정상윤, 전성우, 이재균 등이 출연하며 오는 10월 26일까지 서울 종로구 대학로 유니플레스 2관에서 공연된다.

(SBS 통합온라인뉴스센터 강경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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