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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알리바바' 1등공신은 침실의 '조력자'

[월드리포트] '알리바바' 1등공신은 침실의 '조력자'
지난주 단연 최고의 화제는 뉴욕 월가에 화려하게 입성한 알리바바였습니다.

중국 토종 인터넷 상거래업체인 알리바바는 첫 거래일인 지난 20일 공모가보다 24달러나 치솟은 92달러로 거래를 시작해 종가는 38%나 급등한 93.89달러로 마감했습니다. 한마디로 ‘초 대박’, 월가가 전망했던 1년 뒤 목표주가를 단숨에 뛰어넘은 겁니다. 이번 상장으로 조달한 22조 7천억 원의 자금은 미국 증시 사상 최대의 기업공개 기록이기도 합니다. 이 한방으로 알리바바는 명실공히 구글에 이은 세계 2위의 인터넷 기업으로 떠올랐습니다.

마윈 손정의
월급 15달러짜리 영어강사로 사회에 첫 발을 내딛었던 마윈 회장은 21세기 최대의 성공신화를 쓰며 중국 최고의 부자 자리에 올랐습니다. 마윈의 성공담도 드라마틱했지만 최대 주주인 일본 소프트뱅크의 손정의 회장의 투자 대박은 센세이션 그 자체였습니다. 일본 최고 갑부인 손 회장은 지난 2000년 2백억 원을 투자해 불과 14년 만에 무려 3천9백 배인 78조 원의 투자 수익을 거머쥐었습니다. 가능성은 무궁무진했지만 무명이었던 중국 사업가에게 일본 최고의 부자가 선뜻 투자를 결정한 건 불과 6분 간의 대화가 오간 뒤였습니다. 두 인물 모두 보통 사람은 아니었던 셈입니다. 

대박 신화의 두 주인공은 모두 미래를 읽는 남다른 통찰력과 과감한 의사결정력, 그리고 저돌적인 추진력을 겸비한 타고난 사업가들임에 틀림없지만 그들의 그늘 뒤에 숨은 ‘조력자’들의 도움 없이는 오늘날의 신화는 어쩌면 불가능했을지도 모릅니다.

마윈 손정의
마윈은 보시다시피 왜소한 체격에 울퉁불퉁 튀어나온 광대뼈가 돋보이는 볼품없는 빈털털이 대학생이었습니다. 항저우의 사범대학에서 꽤나 똑똑하고 매력있는 여대생으로 통하던 장잉(張瑛)은 주변 친구들의 만류를 뒤로 한 채 ‘외계인’으로 불리던 마윈과 다소 무모해보이는 교제를 시작합니다. 그녀는 무언가에 빠지면 제대로 미쳐야 직성이 풀리는 마윈에게서 엄청난 잠재력을 엿본 겁니다. 졸업과 동시에 결혼한 마윈은 자신에게 과분한 아내를 위해 열심히 생활 전선에서 능력을 발휘 합니다. 반짝이는 아이디어와 뛰어난 언변을 앞세워 항저우 10대 인기 영어 강사로 업계에서 나름 성공한 마윈은 곧 번역회사를 차려 새로운 도전을 나섭니다. 실패였습니다. 하지만 마윈은 좌절할 틈이 없었습니다. 뭐든 입에 풀칠이라도 해야 될 판이었기에 꽃 장사에 옷 장사까지 하며 닥치는 대로 일을 했습니다. 그 힘든 시절 아내는 한 번도 힘든 내색하지 않고 항상 웃음으로 남편을 격려했다고 합니다. 남편이 출근을 하고 나면 레스토랑에서 피아노 연주자로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활비를 벌었습니다.

다시금 얼마 안되는 자금을 모은 마윈은 중국에서 막 시작된 전자상거래 사업에 뛰어들기로 결정합니다. 중궈황예(中國黃葉, China Yellow Page)라는 전자상거래 사이트를 열자 아내 장잉은 흔쾌히 남편을 돕기 위해 나섰습니다. 회사는 나름 잘나갔지만 대주주의 전횡에 힘들어하던 마윈은 또 다른 도전에 나섰고 그게 오늘날 알리바바의 시작이었습니다. 물론 아내의 격려와 전폭적인 후원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특히 아내는 창업 자금으로 1천만 위안, 우리 돈 17억 원을 직접 빌려와 남편에게 건네기도 했습니다.

창업 맴버들과 집이자 사무실에게 함께 숙식을 해결할 때는 파출부 역할을 도맡아야 했고 밤마다 야식을 준비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장잉은 식모 자리에 머물지 않았습니다. 어깨 너머로 배우기 시작한 전자상거래 사업에서 나름 발군의 능력을 보이면서 그녀는 알리바바의 국내사업부 대표를 맡기도 했습니다. 남편 회사가 내 회사라며 낙하산 타고 날아온 천덕꾸러기 사모님은 아니었습니다. 사업이 제 궤도에 오르고 알리바바가 중국 전자상거래업계의 리더로 부상하자 그녀는 미련 없이 회사를 떠났습니다. 무섭게 성장한 알리바바를 견제하려는 세력들에게 괜한 공격의 빌미를 주지 않겠다는 생각에서였습니다. 그리고는 조용히 가정으로 돌아가 그동안 충분히 보살펴 주지 못했던 아들 뒷바라지와 남편 내조에 전념하며 숨은 ‘조력자’ 자리에 만족했습니다. 지금도 마윈은 중요한 결정의 최종 순간 마다 아내의 조언을 구한다고 합니다. 보잘 것 없던 남편을 믿고 거인이 되도록 키워줬던 내조의 여왕의 가치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일 겁니다. 마윈의 아내는 현대 중국식 동지(同志)형 아내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마윈 손정의
중국 여걸 장잉 못지 않는 일본의 국가대표급 내조의 여왕이 바로 손정의 회장의 아내 우미 마사미입니다. 재일 동포 3세인 손 회장은(그의 이름 ‘正義’는 남의 나라에서 정의롭게 살라며 아버지가 지어 준 겁니다.)미국 유학 시절 우연히 만난 우미를 보고 한 눈에 반한 손 회장은 성인식이 끝나기가 무섭게 우미에게 프로포즈를 하며 40살 되기 전에 궁전 같은 집에 살게 해주겠노라 약속을 합니다. 촌스러운 패션으로 유명했던 손 회장에게 우미가 마음을 열었던 이유 역시 뭔가에 미치는 그의 열정에 끌렸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결혼식부터 엉망이었습니다. 일에 빠진 나머지 첫 번째 결혼식에 늦어 증인인 판사가 승인을 해주지 못했고 다음 번 결혼식에도 지각하면서 혼례를 치르지 못했습니다.

마윈 손정의
세 번 만에야 가까스로 결혼했지만 아내는 오히려 남편에게 귀중한 선물을 합니다. 자신의 성을 남편의 한국 성인 ‘손’으로 바꾼 겁니다. 고심 끝에 귀화해 모국을 뒤로 하고 일본 국적을 택했던 남편에게 자신이 먼저 성을 바꿔 한국의 혼을 지킬 수 있도록 길을 열어 줬던 겁니다. 그때 크나큰 마음의 빚을 졌던 손 회장은 그 후로 행복의 1순위를 아내 몫으로 돌렸다고 합니다. 그 뒤로도 아내의 수호 천사 역할은 계속됐습니다. 한창 사업을 키워가던 시절 만성 간염으로 남편이 갑자기 쓰러지자 둘째 아이를 임신한 몸으로 밤낮없이 남편을 간호해 완치할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소탈하다는 평을 들어 온 손 회장이 평소 모습과 달리 아내를 위해 수백억 원 대 대저택을 선물했던 건 부인에 대한 약속이 그 어떤 것보다 우선함을 보여주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녀는 인터넷에 사진 한 장 나돌지 않을 정도로 외부활동을 자제하고 가정을 다스리며 조용히 남편을 보살피는 전통적인 일본식 현모양처의 전형입니다.

물론, 우리나라에도 불철주야 내 남자의 성공을 기원하며 양지와 음지를 가리지않고 최선을 다해 줄 평강공주 후보자들은 많을 겁니다. 그렇다고 눈썹 높이까지 무거운 밥상을 들어 올려 주는 상상 속의 ‘거안제미(擧案齊眉)' 형 조력자를 찾느라 너무 애를 쓸 필요는 없습니다. 유병언씨 사례에서 보듯이 이른바 ‘조력자’들을 집 안을 벗어나 집 밖에서까지 찾다보면 자칫 그 말로가 비참해지기 십상입니다. 아무리 가까운 부부지간이라도 서로를 항상 귀한 손님 대하 듯 존중하고 공경하라는 ‘상경여빈(相敬如賓)’의 경구를 매일  되새기는 편이 개인의 발전과 가정의 화목, 나아가 국가의 안녕에도 훨씬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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