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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세금 얼마나 쓸지 모른다"…한국형 재난망의 '불편한 진실'

[취재파일] "세금 얼마나 쓸지 모른다"…한국형 재난망의 '불편한 진실'

김수형 기자 sean@sbs.co.kr

작성 2014.09.20 11:45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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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대표 이미지:[취재파일] "세금 얼마나 쓸지 모른다"…한국형 재난망의 불편한 진실
● 담뱃값 인상액만큼 나랏돈 들어가는 사업인데…

최근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군 이슈는 담뱃값 인상 발표로 촉발된 서민증세 논란입니다. 2천 원을 인상한다고 했을 때, 세수가 2조 8천억 원정도입니다. 그런데 나랏돈 규모로만 놓고 보면 담뱃값 인상액과 맞먹을 정도로 세금이 들어가는 거대한 국책 프로젝트가 조만간 펼쳐질 예정입니다. 세월호 사건 이후 한국형 재난망을 구축하자며 일사천리로 진행되고 있는 국가재난안전통신망 사업입니다.

사흘 전(17일) 국회 의원회관에서는 한국형 재난망에 대한 정책토론회가 열렸습니다. 새누리당 소속의 진영, 김을동, 조해진 의원이 합동으로 주최한 토론회였는데, 주무부처인 미래부와 안행부는 물론 관련 사업자들이 총출동한 큰 토론회였습니다. 하지만 기자들은 4-5명 정도밖에 없을 정도로 관심을 받지 못했습니다. 담배같이 모든 사람이 알고 있는 것도 아니고, 구조당국이 주로 사용하는 통신망에 관한 것이어서 대중의 관심사는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 한국형 재난망 필요성에는 공감…문제는 견적 안 나오는 '돈'

세월호 참사는 소방, 해경, 군 당국의 구조 체계가 얼마나 허술한지 그 민낯을 적나라하게 드러나게 했습니다. 특히 통신망 부분은 분명 보완이 필요했습니다. 여러 기관이 서로 다른 통신망으로 같은 질문을 반복하면서 혼선을 키우고, 정작 구조에 에너지를 쏟지 못했다는 반성 때문입니다. 박근혜 대통령도 대국민 담화에서 재난안전통신망의 조기 구축을 강조한바 있고, 토론회에 참가한 정부 기관과 사업자 모두 필요성에 공감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돈이었습니다. 재난망 설치는 고속도로에 긴급전용차선을 까는 것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통신망이라는 고속도로에 구조당국만 비상시에 사용하는 새로운 차선을 설치하는 겁니다. 이걸 전국에 다 까느냐, 일부에만 까느냐에 따라서 금액은 하늘과 땅만큼 차이가 납니다. 미래부는 정확한 금액을 말하지 않고, '2조 ±α'라는 모호한 말을 했습니다. 하지만 토론회에서는 이마저도 확실하지 않다는 당국자의 실토가 있었습니다.

@ 강석주 미래창조과학부 정보화전략국장
"이런 저런 논란이 있지만, (재난망 구축 사업은) 어느 정도 국가의 자원이 투입돼야합니다. 국민 세금을 쓸 수밖에 없는 부분이 있고요…저희들은 2조원 플러스 마이너스 얘기를 하는데, 지금 이 시점에서 그에 대한 답을 가진 사람은 지구상에 아무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세금이 얼마나 많이 들어간다는 걸까요? 토론회에서는 다양한 전망이 나왔습니다.

@ 김남 충북대 교수
"(이동통신은) 어떻게 지하에서 되는 거죠? 중계기를 달았으니까 되는 거죠. (재난망은) 지하와 터널 구간에서 안 되는 거는 당연합니다. 그거까지 다하려고요? 그러면 10조 원으로도 안 될 거 같은데요."

사람의 생명이 위태로운 재난 상황은 지하나 터널 같은 통신망이 닿기 어려운 곳에서 주로 발생합니다. 듬성듬성 재난망을 만들었다가 만약 지하에서 참사가 벌어졌다고 하면 실컷 돈 들여 깔아놓은 재난망이 무용지물이 될 수도 있는 겁니다.

지난 2003년 대구지하철 사건 이후 통합지휘무선통신망이라는 이름으로 사업이 시작됐지만, 지금까지 추진이 안됐던 이유도 견적 안 나오는 예산 때문이었습니다. 중간에 기술독점 논란까지 벌어진데다, 2009년에는 KDI가 예비타당성 조사를 했다가 사업성이 없다는 판정을 내린뒤 공무원의 서랍 안에만 존재하는 사업이 되고 말았습니다.

● 표준도 없고, 단말기도 없지만, 목표 달성 시점만 존재

정부가 구축하겠다고 발표한 한국형 재난망은 오는 2017년 전국망 구축이라는 목표 시한을 설정했습니다. 다음 정부가 시작되기 전에 완성을 하겠다는 계획을 세운 겁니다. 통신기술은 다소 생소한데, LTE 방식을 이용한 PS(Public safety)-LTE 방식으로 결정했습니다. 7월 달에 확정해 발표를 했는데, 문제는 이 기술은 표준조차 아직 결정되지 않은 겁니다. 2년 뒤에야 표준이 결정될 것으로 예상되는데, 일단 결정부터 하고 본 겁니다. 2년 뒤에 나오는 최신 스마트폰을 미리 예약해 둔 것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의사 결정은 미래부의 그동안 의사 결정 방식과는 사뭇 다릅니다. 미래부는 방송, 통신 기술 방식을 정할 때 표준화 완료 여부를 매우 강조해왔습니다. 다른 분야에는 이 원칙을 엄격하게 적용해왔습니다. 하지만 재난망은 이상하게도 표준조차 없는 기술방식을 먼저 결정해버렸습니다.

기술 표준이 없으니 제대로 작동하는 정식 단말기도 세상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미래부는 시제품 형태로 일단 단말기를 만들어서 내년에 강원도 사업부터 시범적으로 적용하기로 했는데, 망을 다 구축하고 나면 다시 단말 업그레이드를 해야 합니다. 단말기를 다시 교체해야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나랏돈을 얼마나 더 쓸지 알 수 없는 겁니다. 토론회에서 발제를 맡았던 배성훈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정보 분석 실장도 이 부분에 대한 우려를 제기하면서 통신 방식 자체를 지금 사용되는 통신망을 활용한 기술로 바꿔야한다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정부는 목표 시한을 달성하는 것에만 집착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윤재철 안행부 재난안전국장은 "가능한 빠른 시간 안에 LTE 방식으로 추진이 돼야 할 것"이라며 "그건 국가의 책무라고 생각한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 예비타당성 조사 면제…'황금마패' 쥔 한국형 재난망 사업

한국형 재난망 사업이 날개를 달게 된 건 지난 5월 27일 국무회의에서 재난망구축 사업에 대한 예비타당성 조사를 면제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입니다. 예비타당성 조사는 국책사업을 하면서 예산이 얼마나 소요되는지 따져볼 수 있는 종합 검토입니다. 국회에서는 예결위 회의 등에서 지역 국회의원들이 자신의 지역구에 국가사업을 유치하면서 예비타당성 조사를 면제해달라고 우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이 조사에서 사업의 실효성이 있는지 그 견적이 만천하에 공개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한국형 재난망 사업은 예비타당성 조사를 면제받으면서 '황금 마패'를 쥐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행정부에 나랏돈이 제대로 들어가냐고 따져 묻는 것 자체가 금기가 된 겁니다.

● 한국형 재난망 사업, 잿밥을 놓고 벌어질 쟁탈전

통신 사업자 입장에서는 전국에 통신망을 까는 건 신천지가 열리는 거나 다름없습니다. 기지국, 중계기 등을 설치하기 위한 장비 개발부터 유지 보수, 업그레이드 등 관련 분야에 엄청난 시장이 열립니다. 물론 치열한 수주 경쟁이 벌어지겠지만, 예비타당성 조사조차 거치지 않은 사업인 만큼, 다른 사업보다는 덜 빡빡한 사업이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부처 입장에서도 이 사업이 시작되면 재난망을 깔고 향후 맡아서 운영하기 위한 공적기구를 만들 수 있습니다. 민영화되기 전 KT는 정부 부처의 고위 관료들이 사장이나 고위 임원으로 가는 관행이 있었는데, 앞으로 재난망을 위해 만들어질 기구도 그렇게 되지 말라는 법이 없습니다. 정부 사업이기 때문에 이걸 제일 잘 아는 관료들이 마무리를 지어야한다며, 자리를 당당하게 요구할 수 있어 보입니다. 최악의 경우 국민의 안전이라는 본질보다는 잿밥을 놓고 민관이 쟁탈전을 벌일 가능성마저 있는 겁니다.

● 내년부터 예산 본격 투입…국회 장기 파행 우려되는 이유

국민의 안전을 지키는데 도움이 되는 재난안전망의 구축은 꼭 필요합니다. 하지만 사업의 목표와 범위를 명확히 설정하고 국민들에게 제대로 설득하지 않는 지금의 방식은 곤란합니다. 속도가 중요하다는 것만 강조하다보면 배가 산으로 와 있는지, 바다로 간 건지 가늠하기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사업비는 통신사업자들이나 정부가 스스로 조달하는 게 아닙니다. 돈을 낼 사람은 국민인데, 호주머니에서 돈을 꺼낼 사람에게 어디에 어떻게 쓰겠다는 설득 없이 빨리 사업을 마무리하겠다고 강조하는 건  앞뒤가 바뀐 행동입니다.

벌써 정부는 한국형 재난망 사업을 위해 내년도 예산으로 5백억 원을 신청했습니다. 내년 5백억 원부터 시작해 3년 동안  조 단위의 세금이 들어갈 예정입니다. 국회에서 예산안을 심사할 준비를 해야 하지만, 국회 파행 사태가 장기화 되면서 개점휴업 상태입니다. 정부조차 예산이 얼마나 들어갈지 모른다는 재난망 구축 사업이 졸속으로 추진되는 건 아닌지 국회는 하루빨리 문을 열고 시시비비를 가려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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