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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아사히 '흔들'…한일 갈등의 구조화

[취재파일] 아사히 '흔들'…한일 갈등의 구조화
1. 흔들리는 아사히신문…'기사 취소·사죄' 연발

일본은 아직도 신문의 여론 지배력이 절대적인 사회입니다. 발행부수 각각 1천만부, 750만부로 일본 1,2위인 요미우리와 아사히 신문은 세계 신문 발행부수에서도 그대로 1,2위를 차지합니다. 물론 일본 내에서도 영업소 밀어내기와 부수 부풀리기가 횡행하고 있어서 실제 유료부수는 70% 남짓으로 보는 견해가 중론입니다만...

발행부수에서는 요미우리가 우위지만, 영향력에선 아사히가 조금 더 위라는 평가가 많습니다. 여론조사 결과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독자로서 실감하는 차이는 신문에 끼워져 배달되는 광고지(이른바 지라시)의 두께입니다. 아사히 신문 쪽이 압도적으로 두껍고, 광고 내용도 고가품 선전이 많습니다. 일본어 공부 해보신 분이라면 아실 만한 얘기지만, 아사히 1면 하단의 '텐세이진고(天聲人語)'는, 아직도 일본 신문독자들 사이에서 최고 명문(짧은글 중에)으로 꼽힐 정도이죠.
취재파일
이런 아사히 신문이 대위기입니다.
지난 11일, 기무라 아사히신문 사장이 편집국 간부들과 함께 기자회견을 열고 머리를 조아렸습니다. 잇단 오보사태 때문입니다. 기무라 사장은 철저한 개혁과 자신의 사임까지 약속했습니다.

취소한 오보는 두가지입니다.
첫째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 당시 직원 90%가 현장을 지키라는 명령을 어기고 무단 철수했다는, 지난 5월 20일자 기사입니다. 요시다 당시 원전소장의 조서를 바탕으로 작성한 특종기사였는데, 정작 원문이 공개돼 확인해보니 명령 위반이 아니라 '타당한 대피 판단'이었다는 겁니다.

또 하나, 지난달 5일 위안부 강제연행 관련 과거기사를 취소한 것에 관해서도 처음으로 공식 사죄했습니다. 기무라 사장은 제3기관을 통해서 기사작성 과정을 검증하겠다고까지 말했습니다. 말 그대로 '항복선언'인 셈입니다.

2. '여론'에 굴복…'아전인수'는 깊어지고

아사히의 사죄는 여론에 굴복한 것입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당시 직원들이 명령을 어기고 도주했다는 보도, 또 위안부 강제연행 관련 과거기사는 일본 입장에서 보면 자존심을 구기는 내용이지요. 두 기사 모두 해외 언론을 통해 인용 보도됐던 것들입니다. 국가의 명예를 훼손하고도 제대로 사과조차 하지 않는다는 비난 여론이 쇄도했습니다.

보수 정치권과 언론은, 이런 비난여론을 적절히 파고들면서 전면적인 비난 캠페인을 벌였습니다.
요미우리와 산케이는 위안부 강제연행 관련 과거 기사를 취소한 이후, 한 달 가까이 아사히 공격 기사를 실었습니다. 아사히가 사과한 날, 요미우리는 정치면과 사회면은 물론, 특집과 사설까지 포함해 모두 10면에 걸쳐 아사히를 '잘근잘근' 씹었을 정돕니다.

아베 총리까지 연일 언론에 나와 "아사히는 책임지고 해외를 향해 사실관계를 바로잡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야단'을 쳤고, 자민당 내에서는 고노담화 취소 요구가 다시 등장했습니다. 전 자민당 간사장, 이제는 지방창생담당 장관이 된 이시바 장관은 "아사히 신문 기자들의 국어 능력이 의심스럽다"며 비웃었습니다.

일본 보수진영은 '아전인수'에 빠졌습니다. 

아시히의 굴복을 '위안부 강제성 부정'으로 몰고가는 분위깁니다. 일본 경산성 전 관료이자 시사평론가인 고가 시게아케씨는 "아사히의 실패를 요미우리와 산케이가 파고들면서, 일본 국민이 혼란에 빠졌다"고 지적했습니다. "아사히가 틀렸다면, 위안부 강제성 주장 자체가 틀렸다는 식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는 얘깁니다.

지난 96년 작성된 유엔 위안부 보고서, 일명 '구마라스와미 보고서'의 수정도 요구하고 있습니다. 구마라스 보고서에, 아사히의 과거기사 '요시다 증언' 관련 부분이 들어있다는 이유에섭니다. 물론 구마라스와미 전 조사관은, 이런 일본의 요구를 일축했습니다. '요시다 증언' 관련 아사히 과거기사는 UN보고서의 대단히 부분적인 근거일 뿐으로, 아사히의 기사 취소로 보고서를 수정할 필요는 전혀 없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일본 보수진영은, 구마라스와미 전 조사관의 지적과 반응에는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오로지 아사히 때리기를 고노담화 흔들기로 몰아가려는 '정치적 의도'로 가득찼습니다. 정치적으로 '일본 보수화·우경화의 완성'으로 내달리고 있는 모습입니다.

산업적으로도 요미우리와 산케이에게 아사히 때리기는 '먹음직한 요리'입니다. 아사히를 때리면 때릴수록 요미우리와 산케이의 부수와 영향력은 확대됩니다. 아사히 일선 영업소가 극우인사의 공격을 받는 일까지 벌어질 정도로 일본의 쇼비니즘(극단적 애국주의)과 보수화는 강화되고 있습니다. 일본의 보수화와 아베정권의 순항은, 보수 언론의 산업적 이익으로도 이어지는 구조입니다.

중도성향의 마이니치 신문이 정확하게 짚었습니다.
"여론을 무시하는 듯한 아사히의 태도가 문제를 키웠지만, 지금의 아사히 때리기는 지나치다. 감정적이고 이해관계가 깔린 아사히 때리기는 언론에 대한 불신만 키울 뿐이다."라고 지적했습니다. '감정적, 이해관계가 깔린' 공격을 구체적으로 설명하진 않았지만, 문맥상 어떤 말인지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3. 아베 정권 '탄탄대로'…한일 갈등의 구조화 완성

아베 총리는 여러차례에 걸쳐 아사히 신문에 대한 반감을 드러내 왔습니다. 지난 2월 5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는 "아베정권의 타도가 아사히의 사시(社是)라고 들었다. 그런 생각으로 읽고 있다"며 노골적으로 아사히 신문을 공격하기도 했습니다.

아베정권에 더 비판적인 진보성향 일간지로 주니치 계열의 '도쿄 신문'이 있긴 하지만, 발행부수나 영향력은 비교할 바가 못됩니다. 80만부 정도로 추산되는데, 한국이라면 엄청나지만 일본에선 틈새시장을 공략하는 수준입니다.

아베 정권에겐 '탄탄대로'가 열렸습니다.
친기업 성향 니혼게이자이 신문의 '선도적 이슈메이킹'-최근 경제사회적 이슈는 대부분 닛케이가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아베노믹스의 본산은 닛케이일지도...- 그리고 요미우리, 산케이의 '정치적 후원'이 든든하게 받쳐주는 모양샙니다.

'갈등의 한일관계'는 이제 구조화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일시적인 갈등이 아닙니다. 한일 갈등 자체가 양국 정치권력에게 '플러스 요인'이 된다는 점에서 구조적입니다. 영토와 역사문제를 중심으로 한 정치·외교적 갈등 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 양국의 상호의존성은 크게 약화되고 있습니다. 오히려 역사인식을 둘러싼 한중 접근과 중일 갈등이, 한국의 대중국 진출에 더 도움되는 상황입니다.

당연하게도, 우리정부가 요구하고 있는 '위안부 관련 일본의 성의표시'는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일본은 우리 정부의 요구를 '떼쓰기' '거듭된 정치적 배려 요구'로 일축하고 있습니다. 그런 식의 태도가, 보수화된 일본 여론에 더 부응하는 구좁니다. 문화-스포츠 교류로 완화하고 관리해 나가는 것으로 회복될 수 있는 수준이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미국의 중재를 통한, 최소한의 '안보·경제협력' 이상을 기대하기 어려운 국면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북핵 문제에 대한 '한미일 공조', 북한 개방을 위한 '일본 활용론'-북일수교와 배상금을 통한 북한 개방 유도론-이 과연 유효한 것인지, 전면 재검토가 필요해 보입니다. 내년은 종전 70년이자, 한일 국교 정상화 50년이 되는 해입니다. 한일 갈등의 구조화 속에서 전통적인 우방 개념과 외교적 공조틀은 흔들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과문한 탓인지, 이런 상황변화에 대한 우리 정부의(대사관, 외교부) 종합적이고 일관된 입장은 아직까지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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