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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합죽이' 대통령…유머 잘못 했다 지지율 급락

[월드리포트] '합죽이' 대통령…유머 잘못 했다 지지율 급락
놀라운 이야기를 들었을 때 사람들은 그게 사실이냐고 되묻는다. 하지만, 별다른 확인 없이 그냥 믿어버리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럴 만한 사람이라는 짐작이 성립되거나 화풀이 대상일 경우가 그렇다. 진실 여부는 이미 저 멀리 사라져 버린다.

프랑스 루이 16세의 아내였던 마리 앙투아네트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거리의 빈곤한 사람들을 보고 “빵이 없으면 브리오슈(프랑스 사람들이 먹는 단맛 나는 빵)를 먹으면 되죠”라고 말해 대중의 공분을 샀다는 일화가 있다. 하지만, 그녀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는 것이 정설이다. 1789년 프랑스 혁명에 영향을 줬던 장 자크 루소가 ‘고백록’이란 책에 어떤 공주가 그런 말을 했다고 썼을 뿐이다. 고백록은 앙투아네트가 프랑스 왕가로 시집 오기 전에 쓰여졌다. 전후 맥락상 앙투아네트는 누명을 쓴 셈이다. 당시 민초들은 분노의 대상이 필요했다. 빵 조차 먹을 수 없는 비참함을 사치의 대명사로 알려진 앙투아네트에게 풀어야 했다. 세상 물정 모르는 위정자를 조롱하고도 싶었을 것이다. 꼭 그 때문은 아니지만 그녀는 결국 단두대에서 생을 마감했다.

2백년이 더 지난 지금, 이번엔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이 그 덫에 걸렸다. 그의 전 동거녀이자 영부인이었던 발레리 트리에르바일레가 쓴 책 때문이다. 그녀는 올 1월 올랑드가 프랑스 여배우와 바람을 피운다는 보도가 나오자 대통령궁인 엘리제궁을 나왔다. 사실 올랑드의 버림을 받아 쫓겨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녀는 복수를 공언했다. 그 결과가 4일 발간된 “이젠 감사합니다.”라는 제목의 회고록이다. 두 사람의 연애사나 결별 과정을 담은 폭로가 세간의 관심을 끌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녀만이 아는 사실이 비장의 무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폭탄은 의외의 곳에서 터졌다. 책에 ‘SANS-DENTS’, 프랑스어로 ‘상덩’이라 읽는 짧은 표현이 등장한다. 이가 빠진 또는 이가 없다는 뜻이다. 합죽이를 떠올리면 된다. 트리에르바일레는 회고록에서 “올랑드가 가난한 사람들을 ‘상덩=이 빠진 사람들’이라고 부르고 자신의 유머에 자부심을 느꼈다”고 주장했다. 단 두 단어로 이뤄진 올랑드식 유머는 큰 파장을 일으켰다. 올랑드가 좌파인 사회당 출신 대통령이기 때문이다. 정치적 지지 기반인 가난한 사람들을 조롱했으니 좌파 진영의 실망감은 컸다. 극좌파 정당 대표인 멜랑숑은 “그래 나는 ‘이 빠진 사람들’ 편이다. 당신 참 거만하네”라고 올랑드를 비꼬았다. 좌파 진영에선 위선, 역겨움 이런 단어가 자주 등장했다.
합죽이

페이스북에는 ‘상덩’이라는 페이지가 개설됐다. 이가 빠진 올랑드를 합성한 사진이 대문짝만하게 걸려 있다. 지금까지 3만명 가까이 ‘좋아요’를 눌렀다. 우파는 유럽의 이웃 나라들은 경제가 회복된다고 하는데 올랑드 정부는 쓸데없는 정책만 발표한다고 비난했다. 대통령이 국민의 고통을 모른다며 물러날 때까지 투쟁을 계속하겠다고 다짐했다. ‘상덩’이 반 올랑드 전선에 기름을 부은 격이다.

올랑드의 전전 동거녀인 세골렌 루아얄이 방어에 나섰다. 루아얄은 회고록은 헛소리라고 비난했다. 정치인은 말이 아닌 활동으로 평가해야 한다며, 올랑드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노력했다는 증거는 얼마든지 댈 수 있다고 변호했지만 이미 늦었다. 2백년 전 앙투아네트처럼 지금 프랑스인들도 분노의 대상을 찾고 있기 때문이다. 프랑스에서 실업률은 발표할 때마다 최고치를 경신하고, 해고는 일상이고, 세금은 줄지 않고 있다. 먹고 살기 힘들다는 아우성이다. 민초들이 화가 났는데 그들을 조롱했으니 올랑드는 제대로 걸린 셈이다. 사람들은 발언의 진위를 따지지 않고 올랑드는 그럴만한 사람으로 낙인 찍은 것이다.

이 와중에 회고록 발간 직전 여론조사에서 올랑드의 지지율이 13%로 또 떨어졌다는 보도가 나왔다. 재임 28개월째 이렇게 낮은 지지율을 보인 프랑스 대통령은 없었다고 한다. 자크 시라크 대통령이 두 번째 임기 중에 36%까지 떨어진 게 역대 최저치다. 10명 중 한 명만이 대통령을 신뢰하는 상황이라면 통치가 가능하겠느냐 묻는 언론도 있다. 임기는 아직 2년이 넘게 남아 있다. 올랑드가 대통령 임기를 마치지 못한다면 ‘상덩’이란 표현은 역사책에 기록될 지도 모르겠다. 모든 것을 잃게 만든 대통령의 유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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