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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초원의 상처 감모초로 감싸다

[월드리포트] 초원의 상처 감모초로 감싸다
초원은 이미 익숙합니다. TV 프로그램을 통해, 영화를 통해 흔히 접합니다. 그런데 실제 눈으로 본 초원은 전혀 달랐습니다. 그렇게 넓은 공간을 한 눈에 입력하는 경험은 처음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일상에서는 시야에 걸리는 것이 무척 많습니다. 나무, 산, 건물이 앞을 가로 막습니다. 멀리 보는데 한계가 있습니다. 하지만 초원은 다릅니다. 끝없이 멀리 보입니다. 그것도 사방이 그렇습니다. 무한한 듯 느껴지는 광활한 대지 위에 오롯이 서있는 나의 존재는 한없이 작습니다.

초원에서는 순수한 자연을 느낄 수 있습니다. 지금 주위를 보시죠. 인공물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시골에 가면 다를까요? 사람이 지은 집, 심은 작물, 조성한 숲이 보입니다. 하지만 초원은 눈에 들어오는 모든 것이 자연 그대로입니다. 자연이 싹 틔우고 키워낸 풀만 보입니다. 사람이 심은 나무 한 그루 없습니다.

가끔 가축이 보입니다. 양 떼가 풀을 뜯고 황소가 줄 지어 걸어갑니다. 그조차도 목동은 보이지 않습니다. 자기들끼리 알아서 풀을 찾아다닙니다. 그래서 가축이 아니라 풀밭에 사는 야생 동물처럼 느껴집니다.

베이징 시내에서 3시간쯤 북쪽으로 달려 네이멍구 자치구에 들어서는 순간 이런 초원이 펼쳐집니다. 몇 시간을 달려도 풍광은 비슷합니다. 비포장도로로 들어서 다시 1시간쯤 초원 속으로 잠겨들면 목적지인 청란치의 보샤오테노르가 나타납니다. '노르'는 몽고어로 호수라는 뜻입니다. 과거에는 무려 4천만 제곱미터, 서울 강남구만한 커다란 호수였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물 한 방울 볼 수 없습니다. 10여년전 모두 말라버렸습니다.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과거의 호수 바닥에는 풀 한 포기 볼 수 없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소금밭이기 때문입니다. 내륙 한 가운데 있는 호수가 말랐는데 왜 소금 밭이 됐냐고요? 원래 몽골 고원은 8백만 년 전에는 바다 밑이었다고 합니다. 인도가 유라시아 대륙과 충돌하면서 지금의 중국의 지형이 형성됐고 몽골 고원도 바다 밑에서 솟아 올라 육지가 됐습니다. 몽골 고원을 덮고 있던 소금기는 비에 씻겨 호수로 모여 들었고 그래서 곳곳에 염호, 소금 호수가 나타났습니다. 카스피해나 아랄해와 비슷합니다. 그 호수가 바짝 마르다보니 자연적인 천일제염이 된 셈입니다.

소금으로 인한 죽음의 땅은 매해 커지고 있습니다. 바람이 소금을 주변 초원으로 퍼뜨려서입니다. 일반적인 토양보다 수십배 강한 염기성이 스며들면서 일반적인 풀은 살 수 없게 됩니다. 문제는 이렇게 불모지대가 커지면서 초원의 사막화를 촉진시킨다는 점입니다. 풀이 살지 않고 맨땅이 드러나면 해당 지역의 지표면 온도는 4도 이상 뜨거워집니다. 강남구 만한 면적의 땅이 뜨겁게 달궈지면서 강한 상승 기류가 형성되고 설사 주변에 구름이 형성돼도 이 지역으로는 들어올 수가 없게 됩니다. 비가 오지 않는 사막이 되는 것입니다.

몽고 초원의 사막화는 남의 일이 아닙니다. 우리나라가 고스란히 피해를 입고 있습니다. 매년 강력해지는 황사가 그것입니다.

우리나라에 날아오는 황사의 90%는 몽골고원에서 발원합니다. 사막화로 풀이 땅을 덮어주지 못하면서 황사는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특히 앞서 말한 강한 염기성 먼지가 우리나라에도 날아옵니다. 실제 우리나라 기상청에서 조사한 결과 황사가 평균 이상의 알카리성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몽고 초원에 있는 마른 호수의 소금기가 황사 먼지로 우리나라에 영향을 미친다는 증거입니다. 그래서 우리나라 환경단체와 기업이 손을 잡고 나섰습니다.



6년 전부터 에코피스아시아는 북경 현대차의 후원을 받아 이 마른 호수에 초원 생태를 복원하는 작업을 벌이고 있습니다. 소금밭으로 변한 땅에 감봉과 감모초를 심고 있습니다. 감봉 등은 영종도에 있는 인천 공항에 갈 때 볼 수 있는 붉은 빛깔의 풀입니다. 강한 염기성 토양에서도 살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이 있습니다.
감봉과 감모초가 자라면서 호수 바닥의 소금기를 붙잡아줍니다. 바람은 강 염기성 먼지를 확산시키는 대신 오히려 평범한 토양을 호수 바닥에 공급해 덮어줍니다. 오랜 시간 토양이 쌓여 감모초 외에 다른 풀까지 살 수 있게 되면 초원은 복원되는 것입니다.

에코피스아시아와 현대차는 이미 네이멍구 차간노르의 마른 호수에서 이런 사업을 성공적으로 진행한 바 있습니다. 그래서 올해 보샤테노르 지역으로 옮겨 5년 계획으로 2차 사업에 도전했습니다.

가족과 함께 이 사업의 자원봉사에 참가했습니다. 지난해 황사 관련 취재를 하면서 이 사업을 알게 됐고 올해 기회가 닿았습니다.

이번에 자원봉사자들이 한 일은 방사 울타리를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어렵게 심은 감모초 새싹이 모래에 뒤덮여 죽어버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바람이 모래를 몰아가지 못하도록 막는 작업입니다.
작업 과정은 이렇습니다. 길게 판 고랑에 주변에서 주워온 10에서 40 센티미터 길이의 관목 나뭇가지를 촘촘하게 꽂습니다. 5~6줄에 걸쳐 이런 나뭇가지 울타리를 만들어 강한 바람에 모래가 쓸려가는 것을 막아줍니다.

손바닥만한 그늘도 없는 곳에서 꿇어 엎드려 나뭇가지를 알맞게 자르고 땅에 꼽는 작업은 쉽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하얀 소금밭이 푸른 풀로 뒤덮일 미래를 생각하며 다른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신명나게 일했습니다.

지난 7월부터 시작된 자원봉사 활동에 한국 대학생 등 4백 명과 중국인 1천2백 명이 참가했습니다. 특히 중국 대학생 자원봉사자 1백20명을 뽑을 때는 무려 3천6백 명 넘게 지원자가 몰려 면접까지 봐야 했습니다.
이런 인기는 자원봉사와 현지 문화 체험이 적절하게 어우러진 프로그램 덕분이라는 분석입니다. 오전에는 초원 복원 활동을 하고 오후에는 말 타기, 활쏘기, 몽고어 배우기 등 현지 문화를 즐깁니다.

"자원봉사자들이 활동이 큰 도움이 되는 것은 사실입니다만, 실질적인 사업은 전문가들과 고용된 일꾼이 주로 진행합니다. 그럼에도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 자원봉사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이유는 이 사업에 대한 더 많은 관심과 이해를 얻기 위해서입니다.

이곳에 와서 자원봉사에 참여했던 분들은 초원의 소중함을 체험하고 이해하게 됩니다. 그런 분들이 사회 곳곳에서 우리의 지원군 역할을 해줌으로써 사회 전체적으로 좀 더 자연 친화적인 분위기를 형성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박상호 에코피스아시아 베이징사무소장의 설명입니다.

물론 곳곳에 깊은 상처를 입고, 그 상처가 암세포처럼 퍼져가면서 죽어가는 초원을 되살리기 위해서는 마른 호수의 초원 복원 사업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대표적으로 초원 곳곳에 자리 잡은 각종 광산에서 무분별하게 지하수를 끌어 쓰는 행태부터 고쳐야 합니다. 호수가 말라버린 근본적인 이유는 이런 지하수의 남용에 있습니다.

하지만 초원을 되살리겠다며 땀을 뿌린 사람이, 풀 한포기를 심고 보듬었던 사람이, 드넓은 초원의 풍광에 눈을 씻고 바람을 가슴에 가득 품었던 사람이 늘어날수록 초원이 되살아날 가능성은 점점 높아질 것입니다.
밤하늘에 쏟아지는 별을 한 번만 보면 초원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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