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로의 대표적인 연기파 배우로 꼽히는 최민식에게는 해외 진출의 많은 기회가 열려 있었다. 전 세계적인 주목은 받은 '올드보이'(2004)이후 해외의 수많은 감독이 그를 눈여겨 봐왔던 것이 사실이다. 그도 그럴 것이 서양에서 동양 배우를 생각할 때 일본, 중국에 비해 한국은 주목도가 낮았다. 그 가운데 발견한 최민식은 서양의 감독들에겐 매우 흥미로운 존재였을 것이다.
최민식이 할리우드 진출을 하게 된 건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후. '올드보이'의 영광이 먼 옛날 이야기처럼 여겨지게 된 2014년에서야 이뤄졌다.
그 작품은 뤽 베송 감독의 신작 '루시'였다. '루시'는 평범한 삶을 살던 여자 루시(스칼렛 요한슨)가 절대악 미스터 장(최민식)에게 납치돼 이용당하다 우연히 모든 감각이 깨어나게 되면서, 두뇌와 육체를 완벽하게 통제하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
프랑스 출신 거장 감독 뤽 베송이 3년 만에 메가폰을 잡으며 화제를 모은 이 작품은 "인간이 뇌를 100% 사용한다면?"이라는 가정 아래 흥미로운 이야기를 펼쳐가는 영화다. 십 년 전 초고를 완성할 정도로 이 이야기에 애착을 가진 뤽 베송은 다윈의 진화론부터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 등 다양한 과학 지식까지 끌어들여 상상력에 날개를 달았다.
할리우드 데뷔작에서 최민식은 한국어로 연기할 수 있는 행운을 얻었다. 뤽 베송은 금발의 서양여성인 루시가 아시아 타이페이에서 동양계 조직에 쫓기는 설정을 만들었다. 서로 다른 인종과 문화를 지닌 정반대의 인물이 충돌할 때의 벌어지는 사건과 그로 인한 쾌감을 의도한 것으로 보인다.
덕분에 이 작품은 할리우드 영화 사상 가장 많은 한국어가 등장한다. 미스터 장 역의 최민식을 물론이고 그의 부하로 한국 배우 서정주, 신창수 등이 활약해 영화 내내 익숙한 우리말을 들을 수 있다.
최민식은 그간 해외 진출을 고려하지 않는 이유로 언어의 장벽을 꼽았다. 언어가 자유롭지 않은 이상 제대로 된 연기를 펼칠 수 없다는 판단이 있었을 것이다.
동양계 조직과 보스라는 설정이 꼭 필요했던 '루시'는 최민식에 찾아온 최적화된 기회였다. 뤽 베송은 '올드보이'를 보고 최민식에게 매료됐다고 밝혔다. '루시'를 제작을 결정한 뤽 베송은 최민식을 캐스팅하기 위해 한국을 직접 찾았고 무려 2시간 동안 설득작업을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간 수많은 한국 배우들이 할리우드의 문을 두드렸다. 그러나 언어의 장벽이라는 한계에 부딪혀 기대 이하의 연기력을 선보였던 것이 사실이다. 능숙한 영어 구사가 가능한 이병헌 정도만이 성공 사례로 꼽힐 뿐이다.
그러나 최민식은 할리우드 데뷔작에서 언어의 한계를 넘었다. 모국어로 연기하며 언어에 대한 부담을 줄인 최민식은 오롯이 캐릭터에 집중해 자신의 연기를 펼칠 수 있었다.
최민식은 극악무도한 악당 미스터 장 역할을 맡아 특유의 폭발적인 카리스마를 뽐냈다. 영화 초반 루시가 미스터 장과 첫 대면 장면에서 두 사람은 영어와 한국어로 이야기하며 관객의 긴장감을 끌어올린다. 영화를 통틀어 가장 흥미로운 장면 중 하나다.
미스터 장은 최민식이 과거 연기했던 '올드보이'의 오대수나 '악마를 보았다'의 장경철 캐릭터가 오버랩 되기도 했다. 약간의 기시감이 느껴지기는 하지만, 연기 몰입을 방해할 정도는 아니다. 최민식은 자신의 연기 색깔을 고스란히 드러내며 주인공 루시 못지 않은 존재감을 보인다.
약간의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최민식의 할리우드 진출은 꽤 성공적인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월스트리트 저널은 ""비중은 작았지만, 영화를 구했을 정도로 인상 깊었다"고 호평했으며, 캐나다 트위치 필름은 "강력한 악마 최민식, 그의 연기는 정말 놀랍다"고 극찬했다.
무엇보다 '루시'는 4,000만 달러(한화 409억)의 제작비로 완성돼 두 배가 넘는 수익을 올리며 흥행에 성공했다. 지난 7월 25일 북미에 개봉해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으며 누적 수익 1억 달러(한화 1,024억)를 돌파했다. 그뿐만 아니라 호주, 불가리아, 네덜란드 등에서도 박스오피스 1위에 오르며 세계적인 흥행을 기록했다.
최민식의 성공적인 할리우드 데뷔다.
(SBS 통합온라인뉴스센터 김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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