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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만연된 요금소 '성희롱'…오죽하면 블랙박스까지

[취재파일] 만연된 요금소 '성희롱'…오죽하면 블랙박스까지

김수형 기자 sean@sbs.co.kr

작성 2014.08.17 11:38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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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공간에서 한번 근무하면 8시간씩 일을 하는 고속도로 요금소 징수원 업무는 육체적으로 여간 고된 게 아닙니다. 비좁고 무더운 공간에서 매연을 먹으면서 일하는 건 둘째 치고, 수많은 돌발 상황이 발생합니다. 기계가 통행권을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고, 운전자가 현금이 부족하다고 하소연 하는 경우, 심지어 차량이 그냥 통과하는 경우까지 뜻밖의 상황이 발생합니다. 대처가 늦어지기라도 하면 다른 차량이 기다리게 되기 때문에, 잠깐 방심하면 더 큰 일이 벌어집니다. 반복 작업이기는 하지만, 요금소 업무에 숙달되려면 6개월은 시간이 걸릴 정도라고 합니다.

● 은근슬쩍 신체접촉부터 ‘바바리맨’까지…요금소 여직원 58% 성희롱 경험

하지만 업무에 숙달된 여성 요금 징수원들도 정신적인 고통을 받는 이유는 따로 있었습니다. 요금소를 지나가는 짧은 순간을 이용해, 여직원들에게 성희롱을 하는 남성 운전자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요금소 여직원들을 만나서 실제로 얘기를 들어보니 성희롱으로 인한 정신적인 고통은 심각한 수위였습니다.

가장 흔한 유형은 손을 잡는 겁니다. 돈을 건네면서 은근슬쩍 과도한 신체접촉을 시도하는 유형이 있다고 합니다. 심한 경우에는 손을 덥석 잡고는 아예 안 놔주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럴 경우 직원들은 당황하게 됩니다. 뒤에 차는 서 있고, '도대체 이 사람이 왜 이러지?' 하는 생각에 업무가 일시 마비됩니다. 언어적인 성희롱도 심각한 수준입니다. 말을 건네면서 욕설에 준하는 입에 담지 못할 성적인 언어를 늘어놓는 운전자들도 종종 있습니다. 자신이 묻는 말에 답을 못한다고 성적인 욕설을 하는 경우부터, 일부러 성적 희롱을 하는 경우까지 다양한 온갖 언어의 배설을 듣게 된다고 합니다. 요금소 직원들도 인간인데 이런 말을 듣게 되면 평정심을 가지고 일을 하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더 큰 문제는 노골적으로 신체 부위를 노출하는 이른바 '바바리맨' 운전자들에게 있습니다. 상의를 벗고 요금소에 들어오는 경우는 물론, 하의까지 벗고 알몸으로 들어오는 사람도 있다고 합니다.  대놓고 변태행위를 하는 운전자까지 있습니다. 심한 경우기는 하지만, 한 운전자는 차에서 내려 성폭력을 행사하려 한 사례도 신고 접수되기도 했습니다. 한 요금소 여직원은 바바리맨들을 하도 많이 봐서 이제 상의 노출은 예쁘게 봐줄 정도라고 하소연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성희롱 행위가 요금소 여직원과 운전자 일대일 관계에서 발생하고, 뒤에 다른 운전자들이 꼬리를 물고 계속 들어오기 때문에 직원들은 대개 한숨 한번 쉬고는 이런 진상 고객들을 참고 넘겨버리곤 한다고 설명합니다.

작년에 도로공사 요금소 여직원 442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해보니 성희롱을 경험한 사람이 58%, 성희롱 유형의 신체접촉을 당한 사람이 46%나 됐습니다. 요금소, 그 작은 공간에 성희롱이 만연돼 있다고 할 만한 수치입니다.

● 성희롱 채증위한 블랙박스까지 등장…“여직원 개인이 고발하라고 한 게 잘 못”

결국 도로공사가 재작년부터 상습적으로 성희롱이 일어나는 지역을 중심으로 차량용 블랙박스를 설치하기 시작했습니다. 성희롱 행위를 채증하기 위한 장치를 달기 시작한 겁니다. 성희롱 행위를 하는 운전자는 습관적으로 같은 지역에서 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영상을 찍어보면 동일 운전자인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문제 행위가 일어나면 간단한 버튼만 누르면 바로 영상 녹화가 가능하게 설계돼 있습니다. 실제로 지난 6월, 한 요금소에서 확보한 영상 자료를 근거로 상습 성희롱 운전자를 적발해 경찰이 수사를 진행하고 있기도 합니다. 지금까지 블랙박스 장비는 전국에 91대가 설치돼 있고, 올해만 100대 이상 설치할 계획이라고 도로공사는 밝혔습니다. 요금소 여직원들은 실제로 블랙박스가 설치된 요금소에서는 무모한 노출을 감행하는 운전자 비율이 현저하게 줄었다고 말합니다.

고속도로 요금소 여직원들은 어쨌든 고객을 상대해야하는 감정노동자라는 인식 때문에 도로공사에서도 그동안 미온적으로 대처해온 게 사실입니다. 국정감사를 앞두고 요금소 여직원들의 성희롱 피해 실태를 준비하고 있는 새누리당 이노근 의원도 “지금까지 성희롱 행위를 인지해도 도로공사가 여직원 개인의 문제라고 하며 스스로 고발을 하라고 유도한 게 잘못”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오죽하면 블랙박스를 달까하는 생각도 들지만, 문제 행위가 발생했을 때는 여직원들에게 알아서 하라고 할 게 아니라 법적인 조치를 취할 부분은 끝까지 도로공사에서 책임져야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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