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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현대판 미다스, 서명만 하면 억!

[월드리포트] 현대판 미다스, 서명만 하면 억!
서양에는 미다스, 동양에는 화수분이 있습니다. 손만 대면 금으로 변하는 손, 아무리 퍼내도 또 재물이 나오는 항아리. 우리나라에도 있네요. 도깨비 방망이. '금 나와라. 뚝딱!' 하면 금이 나오고 '은 나와라. 뚝딱!' 하면 은이 나옵니다.

물론 전설 속 얘기입니다. 현실에서는 있을 수 없습니다. 재물에 대한 인간의 원초적 욕망을 빗댄 우화일 뿐입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 현실에도 이런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실제 있습니다. 현대판 미다스는 서명만 하면 돈이 뚝뚝 떨어집니다. 전설이나 이야기 속에서나 존재할 법한 초능력을 발휘하는 이들은 누구일까요?

최근 중국 안후이성 후이난시 인민검찰원이 이 지역 농업발전은행 부행장 차오량위 씨를 기소했습니다. 기업들에게 대출 편의를 봐주는 대가로 3백82만 위안, 우리 돈 6억3천만 원 넘게 챙긴 혐의입니다. 우리나라로 따지면 알선수재쯤 되겠습니다.

차오 부행장은 이런 짓을 지난 2003년부터 지난해까지 무려 10년 넘게 해왔던 것으로 검찰 조사결과 드러났습니다. 그런데 그 수법이 나름 은밀하고 기발해서 중국 언론의 관심을 받았습니다.

처음에는 소액씩 대출 수수료를 받는 수준이었습니다. 그러다 차오 씨는 2005년부터 본격적으로 뒷돈 수수에 나섭니다. 자신의 동생을 대출 받으려는 회사에 취직시킵니다. 그리고 동생이 일종의 스톡옵션을 받은 것으로 위장해 돈을 챙겼습니다.

하지만 알고 보니 중국의 부패한 금융권 간부 가운데 차오 씨는 피라미에 불과했습니다. 지난 6월 이래 한 달 만에 중국 사법 당국에 적발된 금융권 고위 간부들의 명단입니다. 네이멍구 은행 사장, 허난성 쉬창 은행의 당서기 겸 사장, 중국 수출신용보험사 사장 등등 최고위직 인사들이 줄줄이 이름을 올렸습니다. 지난해 18대 중국 공산당 대회 이후로 범위를 넓히면 중국 우정저축은행 총행장도 있습니다. 가장 고위직 금융권 인사입니다.

이들의 수수액은 대부분 1천만 위안, 우리 돈 17억 원대를 훌쩍 넘습니다. 앞서 차오 행장처럼 대출 허가 서명 한 번에 몇 천에서 몇 억씩 챙겼다는 것이 중국 사법당국의 수사 결과입니다.

올 6월 적발돼 조사를 받고 있는 농업은행 집행부문 사장이자 부행장인 량쿤 씨의 경우를 살펴보죠. 받은 금품은 모두 3천79만 위안에 달합니다. 우리 돈으로 50억 원이 훨씬 넘습니다.

수사 기록에 나타난 받은 금품의 목록을 보면 금괴가 2억 원 어치, 골동품급 고가구가 7천만 원 어치, 각종 주식과 채권 등등 입니다. 량쿤 부행장의 서명은 가위 도깨비 방망이라 부를 만합니다.

금융권 고위 간부 몇 명의 행적이 아닙니다. 지난해 상하이 검찰원 한 곳의 금융 관련 범죄 적발 건수가 1천2백여 건에 달했습니다. 사기 대출과 금품 수수, 직권 남용 등을 총망라합니다.

중국의 금융 전문가들이 이들의 수법을 분석한 결과 다음 세 가지의 특징이 드러난다고 합니다.

1) 엄격한 대출 규제를 역이용했습니다.

이들은 자신의 대출 심사와 관련한 권한을 200% 이용했습니다. 대출 규정에 조건을 충족하지 못하는 기업들에게 편의를 봐주는 대가로는 물론, 이 규정을 만족시키는 기업들에게도 각종 트집을 잡아 대출을 막아 결국 돈을 뜯었습니다.

2) 직접 돈 봉투를 받는 구식 방법은 이용하지 않았습니다. 우회적으로, 대단히 은밀하고 교묘하게 뒷돈을 받았습니다. 앞서 차오량위 씨와 같이 해당 기업의 주식이나 채권의 가격을 조정해 이익을 챙기는 수법까지 동원했습니다.

3) 자신의 권한을 이용해 사적 이익을 챙기는 데는 사기나 불법 거래도 불사했습니다.

한 기금의 고정수익부 부사장은 자신의 기금 가운데 3억5천만 위안을 사적으로 운용해 2백여 차례 채권을 사고팔면서 3천3백여만 위안의 수익을 챙겼다가 적발됐습니다. 물론 관련 기업들이 사내 정보를 동원하고, 억지로 수익률을 올려주고, 작전을 벌여 높은 수익을 올릴 수 있도록 발 벗고 도와줘 가능했습니다.

중국 금융가에는 왜 이렇게 현대판 미다스들이 횡행할까요?

상하이 재경대학 법학원의 리위숴 교수는 이렇게 진단합니다. "금융기관의 감찰 능력에 결함이 있는 것이다. 각 금융기관들이 내부적인 불법을 막기 위한 의식조차 희박하다."

리 교수는 금융 관련 규정은 허술하고 감찰 수단은 대단히 단조로우며 감찰조직의 권한도 너무 약하고 적발에 대한 유인책도 미약하다고 지적합니다. 그러다보니 감사는 대개 철저하지 않고 요식행위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설사 애써 불법 행위를 찾아내도 온정주의에 치우쳐 조치나 처벌이 허술합니다.

부정행위를 발견하기 힘들고, 증명하기는 더 힘들며, 사정도 잘 안 되니 부패는 만연하고 장기간 은닉된다고 탄식합니다. 실제 앞서 사례를 든 차오 부행장은 무려 10년 넘게 부정행위를 저질러왔는데도 지금까지 적발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이렇게 얻은 검은 돈으로 위, 아래에 인사 잘하고 인심을 사서 승진이 더 잘 된다고 꼬집습니다. 량쿤 부행장의 경우 부패에 물든 뒤부터 고속 승진을 시작해 부행장의 자리에까지 뛰어올랐습니다.

현대의 미다스들이 미치는 폐해는 단순히 기업에게서 돈을 뜯고 자신이 속한 금융 기관의 이익을 해치는 수준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중국 행정학원 왕위 교수는 "이런 부패는 경제의 구조와 체질을 악화시켜 중국 경제를 병들게 한다."고 목소리를 높입니다.

이런 검은 커넥션은 검은 이익 집단을 형성함으로써 건강한 경제 발전을 가로 막습니다. 마땅히 도태돼야 할 비효율적인 기업들이 막대한 자원을 낭비하는 반면, 경제 발전을 이끌 도전적이고 혁신적인 기업들이 기회도 얻지 못한 채 사장됩니다. 경제 전문가들은 이런 금융권의 부패가 중국 경제의 암적 존재라고 질타합니다.

이런 시커먼 현대의 미다스들을 박멸할 방법은 무엇일까요?


중국의 금융 전문가들은 여러 가지 처방을 내놓습니다. 자금 심사를 혼자서 결정하지 못하게 하고 합의제로 바꿈으로써 견제와 균형의 기능을 살려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금융의 시장 기능을 활성화시켜 금융 기관 간 경쟁을 통해 투명성을 높이자는 제안도 있습니다. 금융기관 간부는 퇴직한 뒤에도 반드시 감찰을 받도록 하는 제도를 마련하자는 의견도 나옵니다. 대출 심사와 관련된 직책은 임기제로 해야 한다고 제안합니다.

어쩐지 많이 듣던 얘기 같지 않습니까? 우리나라의 금융권에서도 설왕설래 했던 정책들입니다. 일부는 실제로 도입돼 실행되는 것도 있습니다.

네, 그렇습니다. 지금 중국에서 나타나는 병폐는 우리나라 금융권도 한때 겪었던 문제들입니다. 그동안의 노력으로 극복된 것도 있고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것도 있습니다. 결국 현대판 미다스는 자본주의의 병폐요, 성장의 부작용으로 출현하는 암세포와 같은 것입니다.

그런데 말이죠, 그리스 신화 속 미다스 왕은 행복했던가요? 전혀 아닙니다. 딸을 금덩어리로 만들고 먹을 음식도, 마실 물도 모두 금으로 바꿔버려 고통에 절규해야 했습니다. 우리나라 도깨비 방망이는요, 욕심을 부리다가 혹만 더 붙였죠. 탐욕의 끝은 불행이라고 그 옛날부터 끊임없이 경고해왔습니다.

하지만 희한합니다. 현대에 와서는 누구나 미다스가 되고 싶어 하고, 도깨비 방망이를 얻고 싶어 하니까요. 결말을 망각한 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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