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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용감한 병사 비겁한 장교

[취재파일] 용감한 병사 비겁한 장교
전 국민을 분노케 만든 윤 일병 구타 사망 사건의 수사기록(1248페이지 분량)은 우리 군의 일그러진 자화상을 고스란히 보여줍니다. 평범했던 젊은이들이 규율이 무너진 군부대 내에서 어떻게 인간성이 철저히 파괴돼 가는지, 또 인간이 어느 정도까지 악해질 수 있는지를 생생히 기록한 다큐멘터리이기도 합니다.

보도를 위해 이 수사 자료를 분석하면서 피해자인 윤일병과 가해자 이모 병장 일당 외에 눈길이 가는 두 인물이 있었습니다. 바로 윤 일병 사망의 진상을 상부에 처음 보고한 김 모 상병과, 윤 일병이 속한 부대의 장교인 김모 대위였습니다.

김 상병은 윤 일병이 폭행으로 의식을 잃고 병원에 실려간 4월 6일 저녁 7시쯤 폭행에 가담한 지모 상병으로부터 사건의 진상을 처음 전해들었습니다. 당시까지 가해병사 일당은 윤 일병이 냉동식품을 먹다가 기도가 막혀 의식을 잃은 것일 뿐 폭행은 없었다는 취지로 사실을 은폐했습니다. 부대 간부들도 가해병사들의 첫 진술을 곧이 곧대로 믿고 진상을 모르고 있었는데, 지 상병이 동료 병사인 김 상병에게 처음 자초지종을 실토한 것입니다.

얘기를 들은 김 상병은 밤 9시45분 일석 점호가 끝난 뒤 지 상병을 다시 만납니다. 지 상병은 "아까 한 얘기는 둘 만 알고 있자"며 은폐에 가담할 것을 권유했지만 김 상병은 지 상병을 끝까지 설득했습니다. "지금이라도 솔직하게 고백하고 윤일병과 윤일병 부모님께 용서를 구하라"고 했지만 지 상병은 듣지 않았습니다. 지상병과 윤일병 걱정에 잠을 못이룬 김 상병은 결국 공중전화로 포대장 김호기 대위에게 이 사실을 전화로 알렸습니다. 이후 포대장의 자체 조사와 헌병대의 수사가 본격화하게 된 겁니다. 김 상병의 용기가 윤 일병 사건을 만천하에 드러나게 한 결정적인 계기가 된 겁니다.

포대장 김 대위는 이번 폭행 사망 사건 연루 병사들의 직속 상관입니다. 윤 일병이 36일 간 구타와 가혹행위에 시달리는데도 이를 전혀 눈치채지 못했고, 사망 당일에도 병사의 제보를 듣고 나서야 상황을 파악할 정도로 부대 내 사정에 깜깜했습니다. 이런 김 대위가 사건 후 병사들에 대해 작성한 지휘관 의견서는 김 대위의 처신을 잘 보여줍니다.

가해 주범 이 병장에 대해 "동료 병사들에게 큰 신뢰가 없는 인원임, 간부들에게 보이는 행동거지는 물론 병사들에게도 신뢰를 받지 못함" 같은 혹평이 줄줄이 이어집니다. 김 대위는 의무반에 근무하다가 구속된 가해병사 전원에 대해 이런 평가를 내놨습니다. 이런 평가라면 의무분대원 전원이 문제가 있는 병사인데, 이들을 한 데 모아 내무생활을 시켰다는 말밖에 되지 않습니다. 더욱 가관인 것은 사고 전 2013년 7월 김 대위가 이 병장에게 "책임감 있게 임무수행하려 노력하고 성실하고 적극적"이라며 후한 점수를 줬다는 겁니다.

용기 있는 병사, 비겁한 장교의 사례는 22사단 총기난사 사건에서도 드러납니다.

임모 병장이 총기를 난사하던 시점 해당 부대의 A 병장은 내무반에 뛰어들어 총기보관함 시건 장치를 총으로 쏴 풀어 부대원들에게 총기를 나눠줬습니다. 실탄보관함도 총으로 쏴 실탄을 나눠주고 임 병장의 총기 난사에 대응하도록 조치했습니다(총기함, 실탄보관함 열쇠는 소초장인 강 모 중위가 갖고 현장을 떴기 때문입니다). 급박한 상황속에서도 침착하게 본분을 다한 A병장의 사례는 그러나, 총기 난사 사건 자체의 엄중함에 묻혀 외부에 널리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반면 현장에서 부대원들을 지휘해야 할 소초장 강 모 중위는 부대원들을 두고 혼자 현장을 이탈했다가 구속됐습니다. 지원 병력을 요청하러 간다는 게 강 중위의 중위이지만, 총기와 탄약 열쇠를 갖고 부대원만 남겨둔 채 홀로 자리를 뜬 지휘관의 처신은 앞서 설명한 병장의 용기 있는 행동과 대비되기에 충분합니다.

윤 일병 사망 사건이나 22사단 총기 사건에서 김 상병과 A 병장이 보여준 행위는 군인 정신의 표상이라고 할 만큼 용기있고 담대했습니다. 반면 포대장 김 대위와 GOP 소초장 강 중위의 행위는 우리가 이런 군을 믿고 발뻗고 자도 될까하는 우려를 줄 정도의 빈약한 우리 군의 일면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용감한 병사들과, 비겁한 장교들...우리 군의 개혁이 어느 쪽에 더 집중돼야할지 방향은 분명해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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