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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이래도 안 속을래?" 한국인에 최적화된 '보이스피싱'

[취재파일] "이래도 안 속을래?" 한국인에 최적화된 '보이스피싱'
경찰서를 출입하는 이른바 사건팀 기자를 하다보면, 비슷한 유형의 사건들을 여러차례 취재하게 됩니다. 빼 놓을 수 없는 것 중 하나가 이 보이스피싱입니다. 이미 수십 차례(혹은 그 이상) 보도가 됐고, 더 이상 피해가 발생할까 싶기도 합니다. 하지만, 피해는 여전히 반복되고 있습니다. 범죄 수법이 생물처럼 살아 움직이고, 진화하기 때문입니다.

한 때 타 방송사의 개그프로에서 보이스피싱 범죄를 코너로 다룬 적이 있었죠. 기억하실 겁니다. 특유의 말투가 웃음의 포인트였습니다. 하지만, 최근의 보이스피싱 사건들을 되짚어보면 이런 말투는 이미 구문이 된지 오래라는 생각이 듭니다.

최근 서울 서대문경찰서에서 검거한 보이스 피싱 조직의 가짜 텔레마케터 20명을 살펴보면, 그 면면이 참 놀랍습니다. 충북 한 지역의 고향선후배 사이인 이들은, 한국의 20-30대 청년들이었습니다. 물론, 전화를 건 곳은 중국입니다. 하지만 전화를 건 주체는 한국에서 학교를 나오고 우리와 같은 문화를 공유하고 있는 평범한 이웃집 청년들이었습니다.

큰 돈을 벌게 해주겠다는 선배의 말을 믿고 이들은 항공료까지 자비로 내고 중국으로 건너갑니다. 처음에 중국으로 건너갈때는 보이스피싱 조직 일이라는 것을 몰랐다고 주장하지만, 실제 업무에 투입된 이후에는 상당수 눈치를 챘을 거라는 게 경찰의 설명입니다. 이들은 조직에서 마련한 중국의 한 아파트에서 합숙하면서 전화 사기에 가담했습니다.-아파트는 숙소이자 사무실이었습니다-

대출 업체를 사칭하는 전형적인 수법이었지만, 평범한 한국인 말투에 깜빡 속아넘어간 피해자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지난해 6월부터 8개월가량 200명이 넘는 피해자가 발생했고, 피해 금액만 21억원이 넘습니다. 이렇다보니, 이들에게 돌아온 수입도 괜찮다고 합니다. 월급을 성과급처럼 받았는데, 일부는 '영업'을 워낙 잘해 한달에 500만원을 벌기도 했답니다. 보이스피싱 피해자들은 돈을 돌려받을 길이 요원한데 말입니다.

물론, 꼬리가 길면 잡히기 마련입니다. 일을 하면서 자금 배분 문제로 내부 갈등을 겪던 이들은 귀국을 생각하게 됩니다. 이즈음, 경찰이 제보자를 통해 수사를 본격화하고 있었고, 3명의 범죄 사실을 확인하게 됩니다. 이 3명을 시작으로, 고향 선후배 사이인 20명은 입국과 동시에 경찰에 검거됩니다. 한동네 친구, 형, 동생 사이인 이들이 모두 구속되는 어이없는 상황이 벌어진 것입니다.

많은 분들이 이미 알고 계시겠지만, 보이스피싱 범죄에 한국인이 동원되는 것도 이미 흔한 일입니다.

지난 4월에는 아예 전문가들을 동원한 조직이 적발되기도 했습니다. 실제 텔레마케터 일을 한 경험이 있는 여성들을 고용한 겁니다.경찰은 당시, 카드사 정보유출 사태로 전화 영업이 중단되면서 임금이 체불되거나 실직한 일부 텔레마케터들이 범죄 유혹에 빠졌다고 전했습니다. 합법의 영역에서, 불법의 영역으로 자리를 옮겼지만, 영업 실력이 바뀌지는 않습니다. 104명이 이 영업실력에 속아 계좌번호와 현금카드 등 자신의 금융정보를 알려줬습니다.

보이스피싱 조직도 이제 한국인에게 특화된 텔레마케터를 선호합니다. 그리고 이들로 하여금 검찰 수사관, 경찰, 통신사나 금융사, 국세청까지 사칭하게 합니다. 이미 주민번호 같은 개인정보는 물론이고, 대출액까지 상세히 알고 있습니다. 이렇다보니, "나는 안당해" 장담하던 사람들도 깜빡 속아넘어가기 십상입니다.

정부 민원 상담기관인 '110정부민원안내콜센터'에 접수된 2분기 보이스피싱 상담 건수는 1분기에 비해 22.8% 늘고, 피해 금액도 16% 증가했다고 합니다. 정부 차원의 근절 대책이 당연히 마련되어야겠지만, 그 전까지는 일단, 개인이 속지 않는 게 상책입니다. 

보이스피싱 범죄를 말투로 판단한다는 것은  옛말입니다. 아무리 능수능란하게 이야기해도, 금융 정보나 개인정보를 요구하는 전화는 의심부터 하는 습관, 요즘같은 때엔 꼭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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