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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소매치기 했다 하면 경찰…재수 없거나, 무모했거나

[월드리포트] 소매치기 했다 하면 경찰…재수 없거나, 무모했거나
월드리포트를 통해 여러 차례 중국의 도둑 이야기를 전해드렸습니다. 도둑에 특별히 관심이 많아서는 아닙니다.

도둑질은 사회의 가장 대표적인 병리 현상입니다. 따라서 그 배경에는 해당 사회에 내재된 모순과 부조리가 도사리고 있습니다. 도둑들의 사연을 통해 중국의 현실을 들여다보게 됩니다.

하지만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중국의 땅이 넓고 인구가 많아서인지 어이없는 도둑이 부지기수입니다. 혼자서 관련 기사를 '킥킥' 거리며 읽다가 재미있는 사연을 알려드리고 싶은 욕심이 일어납니다. 함께 웃자는 차원이니 너무 심각하게 따지지 말아주시기를.

얼마 전 어수룩하다 못해 바보 같은 도둑들을 소개해드렸죠. 이번에는 너무나 재수 없는, 아니 무모했던 도둑입니다.

얼마나 무모했냐면 천안문 광장에서 소매치기를 시도했습니다. 그것은 마치 경찰서에 들어가 도둑질을 시도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아니, 중국의 대표적 관광지로 수많은 여행객이 오가는 천안문 광장이 어떻게 경찰서에 비교되느냐고요? 다음의 사례들을 보면 이해가 가실 것입니다.

사례1) 한국 모 건설사의 한 부서원들이 단체로 중국 단기 연수에 나섰습니다. 사실상 관광이지만 그래도 연수했다는 증거를 남기기 위해 이 부서원들은 중국의 얼굴 천안문 광장에서 단체 사진을 찍기로 했습니다. 조용히 사진만 찍었다면 별 문제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흔히 하듯 대형 플래카드('00건설 00부 중국 견문 연수'류의 내용을 적은)를 꺼내 펼치기 시작했습니다. 3미터 길이의 플래카드를 다 펴기도 전에 사복 경찰들이 까맣게 에워쌌습니다. 다행히 중국어를 조금 하는 부서원이 있어서 경찰에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플래카드를 잽싸게 다시 접어 넣지 않았다면 천안문 광장 한 가운데서 시위를 벌이려 한 혐의로 경찰서에 끌려가 고초를 겪을 뻔 했습니다.

사례2) 중국에서 유학중인 한국 청년이 애인에게 영상 고백을 하고 싶었습니다. 한때 유행했던 방식이죠, 도화지에 큰 글씨로 자신의 마음을 적은 뒤 이를 넘겨가며 촬영해 메일로 영상을 보내려 했습니다. 장소는 중국의 상징 천안문 광장으로 정했습니다. 친구에게 촬영을 부탁한 뒤 '00아!(여자 친구의 이름)'라고 적은 첫 번째 카드를 보여주고 두 번째 카드로 넘기는 순간 어느새 나타난 사복경찰에 포위당했습니다. 세 번째 카드에 커다란 빨간 하트가 그려져 있지 않았다면 꼼짝없이 연행될 뻔 했답니다.

사례3) 한 기업의 사내 방송국에서 중국 주재원과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이왕이면 중국이라는 현장감을 살리겠다며 천안문을 배경으로 했습니다. 조그만 6밀리미터 카메라로 마이크도 없이 촬영했는데도 채 첫 번째 질문에 대한 대답도 끝나기 전에 사복경찰이 몰려왔습니다. 천안문 광장에서의 취재행위는 사전 허가를 얻어야 한다는 엄중한 경고를 받고서야 풀려났습니다.

천안문 광장에서 주의 깊게 살펴보면 관광객 사이사이에 무채색의 옷을 입은 남성들이 눈에 띕니다. 꽤 많아 어떤 때는 거짓말 보태 관광객의 절반쯤 돼 보입니다. 모두 사복 경찰들입니다. 사방으로 감시하다 뭔가 수상쩍은 행동을 하는 사람이 보이면 번개같이 달려듭니다.

그러니 천안문 광장은 경찰서 한 복판 수준이라고 말해도 그리 과장이 아닙니다.

문제의 무모한 도둑은 올해 47세, 동북 출신의 순모 씨입니다. 지난달 말 베이징에 볼일을 보러 왔다가 그 유명한 천안문 광장의 국기게양식이나 보자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새벽 4시 천안문 광장을 찾아가 게양식을 보다보니 생각보다 훨씬 사람이 많고 번잡했습니다. 가뜩이나 호주머니 사정이 궁했던 순 씨는 나쁜 마음이 들었습니다. '혼잡을 틈타서 호주머니를 털어보자.'

주위를 둘러보다 한 어수룩해 보이는 남성을 지목했습니다. 사진을 찍는데 신경을 빼앗긴 듯 보였기 때문입니다. 슬그머니 접근해서 바지 오른쪽 뒷주머니의 단추를 풀었습니다. 그 순간 남성은 순 씨의 팔을 낚아채며 한 마디 했습니다. "너! 사람 잘못 골랐어. 내가 소매치기 검거 전문 경찰이거든." 공교롭게도 순 씨가 범행 대상으로 삼은 사람은 랴오닝에서 베이징으로 휴가차 여행을 온 차오모 경관이었습니다.

순 씨는 하늘이 노랗게 변할 만큼 놀랐습니다. 하지만 바로 정신을 차리고 도둑의 기본자세, 오리발을 내밀었습니다. "지금 무슨 소리 하는 거요. 사람에 떠밀려서 당신 엉덩이에 부딪히기는 했어도 내가 무엇을 훔쳤단 말이요?" 소리를 버럭버럭 질렀습니다. 차오 경관은 순 씨가 수상쩍은 짓을 하려 했다는 심증은 분명히 있었지만 명확한 물증은 없었습니다. 순 씨가 아직 지갑을 꺼내기 전이었기 때문입니다.

순 씨는 차오 경관과 옥신각신하다 급히 몸을 빼 달아났습니다. 그런 봉변을 당했으니 포기할 법도 했습니다. 순 씨는 천안문 광장을 떠나려다가 그만 반바지를 입은 한 남성을 봤습니다. 앞주머니가 눈에 띄게 불룩했습니다. 갑자기 오기가 치솟았습니다. '칼을 빼들었으면 뭐라도 잘라야지!'

순 씨는 혼잡한 사람들 틈새로 스며들어가 반바지 남성에게 다가갔습니다. 오른편에 바짝 붙어서 앞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었습니다. 과연 돈 뭉치가 잡혔습니다. 주머니 밖으로 빼내며 속으로 환호작약했습니다. '대박이다.' 하지만 순간 반바지 남자가 순 씨의 팔을 움켜잡았습니다. "지금 뭐하는 거야?" 순 씨로서는 더할 나위 없이 재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두 번째 범행 대상자 역시 윈난에서 출장차 베이징에 온 량모 경관이었습니다. 베이징에 온 김에 말로만 듣던 국기 게양식을 직접 보기 위해 나와 있었습니다.

순 씨는 순간 기지를 발휘했습니다. 잡힌 팔을 뿌리치며 돈을 공중으로 확 뿌렸습니다. "돈이다!" 몇몇 관광객이 부르짖으며 돈을 줍기 위해 몰려들었습니다. 그런 혼란을 틈타 도망치려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습니다.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돈을 줍겠다고 소란을 떨어야 정상인데 오히려 순 씨를 잡으려고 몰려드는 사람들이 더 많았습니다. 어느새 구석으로 몰려 잡히기 일보직전이었던 순 씨는 다시 한 번 수완을 부렸습니다. 몸을 흔들어 잡은 손을 뿌리치며 철제 난간을 머리로 들이받아 쓰러트렸습니다. 그리고 난간을 넘어 탈출을 시도했습니다. 그것이 다였습니다. 이미 난간 밖에도 사복 경찰들이 철통같이 에워싸고 있었습니다. 순 씨는 그대로 잡혔습니다.

한 장소에서 범행 대상으로 삼은 2명이 모두 경찰이었다는 점은 확률적으로도 매우 드문 일입니다. 순 씨로서는 재수에 옴 붙은 셈입니다.

하지만 운 탓으로만 돌릴 수 없는 노릇입니다. 천안문 광장은 경찰서 한 가운데나 마찬가지이니까요. 애초 이곳에서 범행을 시도한 것 자체가 무리였습니다.

그러니 독자들도 혹 천안문 광장으로 관광을 가게 되면 눈에 띌만한 행위는 절대 하지 마십시오. 굳이 천안문 광장의 철통 보안을 경험하고 싶지 않다면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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