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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이스라엘 언론이 바라본 '한니발 지침'의 망령

[월드리포트] 이스라엘 언론이 바라본 '한니발 지침'의 망령

이스라엘군에는 '죽일지언정 납치는 막아라' 라는 지침이 있다? 없다?

정규진 기자 soccer@sbs.co.kr

작성 2014.08.07 10:03 수정 2014.08.07 10:05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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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대표 이미지:[월드리포트] 이스라엘 언론이 바라본 한니발 지침의 망령
지난 1일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72시간 휴전이 2시간만에 끝난 것에 관해 제 개인적인 궁금증을 [월드리포트] ‘2시간만에 끝난 평화... 그 안에 숨겨진 두 가지 수수께끼’란 제목으로 올렸습니다.
휴전 파기의 불씨가 된 ‘땅굴 습격’에서 자살폭탄테러까지 치밀하게 준비한 주체는 누구인지? 납치됐다가 교전 중 전사한 걸로 바뀐, 그러면서도 시신도 제대로 수습하지 못 한 이스라엘 장교는 과연 누가 죽인 것인지에 대한 의문점을 제시했습니다.

72시간 휴전이 개시되고 바로 무산된 뒤 이틀이 지나 이스라엘 ‘하레츠’라는 신문에서 비슷한 의문과 함께 흥미로운 이유를 제시했길래 올려봅니다.

이 신문은 납치된 하다르 골딘 소위가 ‘땅굴 습격’때 사망한 것인지, 아니면 이스라엘군이 납치됐다고 믿으며 벌인 과도한 구출 공격으로 사망했는지에 대해선 직접 언급은 피하고 있습니다. 대신 납치가 사실인지 여부를 떠나 이스라엘군이 구출작전이란 명목으로 과연 동료 병사의 목숨까지 앗아갈 수 있는 무모하고 무자비한 작전을 이행해도 되는 것인지에 대해 초점을 맞췄습니다.

그러면서 그 이유로 이스라엘 군의 해묵은, 하지만 오랫동안 베일에 가려졌던 지침을 들고나왔습니다. 이른바 ‘한니발 지침’ ( The Hannibal Directive ) 입니다.

‘한니발 지침’은 지금으로부터 30년 전 이스라엘 군의 컴퓨터가 무작위로 골라 지은 이름입니다. 이 지침의 기초를 잡은 건 이스라엘 재무장관을 지냈던 당시 이스라엘 북부사령관인 요시 페레드 장군입니다. 당시 이스라엘 병사 2명이 레바논의 헤즈볼라에 납치당한 일이 벌어지자 페레드 장군이 “ 구출작전에서 가장 중요한 임무는 비록 우리 병사가 총에 맞고 다치더라도 반드시 구해내는 일이다.” 라며 제시한 기준을 ‘한니발 지침’이라고 이름을 지은 겁니다. 

              
본래 이 지침은 경병기(예를 들어 저격수)를 사용해 납치범이나 차량의 타이어를 쏴서 이스라엘 병사가 다치는 한이 있더라도 일단 도주로를 차단한 뒤 병사를 구해내야 한다고 방향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동료 병사가 적군에 생포됐을 때 어느 정도 수준까지 구출작전을 감행할 지에 대한 판단이 어려울 때를 대비한 것이죠.

그런데 문제는 이 지침이 세월이 지나면서 그 해석이 변질되고 있다는 겁니다. ‘동료 구출이란 대명제를 위한 작은 희생은 감수해야 한다’는 것이 총으로 차량의 타이어 정도를 조준한다는 제한적 버전에서 헬리콥터 공격이란 확장판까지 현실과 그 상황에 따라 해석과 적용이 너무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는 겁니다.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동료를 적의 손에 넘겨서는 안 된다’는 널뛰기판도 나왔다는 거죠.

그런 예로 2008년말과 2009년 초까지 이어진 가자전쟁을 예로 들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최정예인 골란여단의 사령관이 자신의 부하들에게 가자지구에 투입되기 전 “누구도 포로로 잡힐 생각을 하지 말라. 누군가 너희를 잡아가려면 차라리 수류탄으로 자폭할 지언정…”라고 말하기까지 했습니다.

실제로 이번 ‘땅굴 습격’에서도 이스라엘 군은 하마스에 납치됐다는 하다르 골딘 소위를 구출한다면서 하마스의 도주차량에 대포와 같은 중병기의 포격과 전투기 공습까지 감행하면서 그 일대를 아예 쑥대밭을 만들었고 부근의 팔레스타인 40명이 목숨을 앗아갔다고 ‘하레츠’신문은 지적합니다.
                                                   하다르 골딘 소위의 장례식

이런 문제를 안고 있다 보니 ‘한니발 지침’은 이스라엘 군사 조직 내에서도 오랜 논쟁을 일으켰다고 합니다. 전장에선 납치된 동료를 오히려 더 큰 위험을 빠뜨릴 수 있는 지침을 거부하는 지휘관들이 끊이질 않았다고 설명합니다.

그래도 군 기밀로 철저히 보안에 붙여졌던 이 지침이 세상에 알려진 것은 지난 2003년이 한 의사가 예비군 기간 한니발 지침에 대해 들은 이야기를 기록으로 남기면섭니다. 더욱 놀라운 건 이스라엘 국민의 반응입니다. 대부분이 ‘한니발 지침’에 대해 비판을 쏟아내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고 합니다. 많은 이스라엘 사람들은 적에게 병사가 넘어가는 걸 막기 위해선 생포된 병사의 생명이 위험해지는 건 합당하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겁니다. 

이 신문은 이런 이스라엘인의 반응에 대해 크게 두 가지 이유를 들었습니다. 하나는 이스라엘이 수십 년간 (1973년 4차 중동전쟁 이후) 국가단위의 전쟁을 치른 적이 없고( 자국 영토가 침범당한 적도 없습니다.) 테러리스트나 무장단체 정도를 상대하다 보니 이들에 붙잡히면 전쟁포로가 아닌 인질의 대우를 받게 되고 가족들은 몇 년간을 생사로 모르는 채 불안에 떨어야 하고 결국엔 그 병사도 고문 받거나 목숨을 잃게 될 게 뻔하다는 고정관념에 잡혀있다는 겁니다.

또 다른 하나로 2011년 하마스에 5년간 억류됐던 길라드 샬리트란 병사를 1000여명의 팔레스타인 수감자를 풀어준 기억도 무시할 수 없다고 합니다. 비록 1명을 구했지만 살인혐의가 확인된 1000명의 테러리스트를 잡는 데 걸린 5년의 세월을 물거품으로 만들었다는 비난도 이어졌습니다. 그러면서, 이스라엘군은 샬리트가 하마스에 납치될 당시 대포와 같은 중화기 대신 자동소총정도로만 대응한 게 결국은 이런 손실을 낳았다는 비판도 받았습니다.

제 판단으로 이스라엘 사람들은 잡혀가면 어차피 인간대접도 못 받고 가족만 고생하고, 혹시 나중에라도 송환될 때 국익에 막대한 손해?를 입히기에 차라리 납치 병사가 죽을 수 있어도 모든 수단을 가리지 않고 납치범을 공격해야 한다는 뜻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 한니발 지침의 적용에 대해 혼란을 막는 차원에서 2011년 이스라엘군의 한 고위 장성은 ‘한니발 지침’은 붙잡힌 동료가 적에게 생포되는 것을 막기 위해 동료를 직접 겨냥해도 된다는 건 아니라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이 가자지구 사태에서 사병 피납시 이스라엘의 대응을 볼 때 ‘한니발 지침’은 여전히 ‘모든 수단을 동원’ 이라는 확장 버전으로 군에 적용되고 있다는 게 분명한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이 신문은 이스라엘 군은 지휘관과 장교들에게 과연 구출작전을 명목으로 주변 민간인 거주지까지 황폐하게 만들 정도로 포탄을 쏟아 부어야 하는지를 명확히 구분해야 한다고 끝을 맺고 있습니다.
이 ‘한니발 지침’에 관한 기사를 읽으면서 제 시선을 끈 건 이 지침이 세상에 공개됐을 때 이스라엘 사람들이 시큰둥한 반응을 보인 이윱니다. 그 두 가지 이유를 들여다 보면 제가 왜 이번 골딘 소위 납치설을 소위 ‘색안경’을 낀 것처럼 바라보고 있는 지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끝으로 자신의 조국을 위해 목숨을 잃은 한 군인의 고귀한 죽음에 흠집을 내고 싶은 의도는 전혀 없음을 분명히 밝히고 싶습니다. 전쟁이 인간을 얼마나 교활하고 잔악하게 만들 수 있는 지에 대해 한 번쯤은 생각해볼 수 있는 문제를 제기한 것이라고 이해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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