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원촨을 오가던 길은 아예 없어지다시피 했습니다. 강 오른쪽을 따라 냈던 길은 곳곳에서 일어난 산사태로 대부분 무너지거나 끊기면서 강 왼편을 따라 새로 길을 닦고 있었습니다. 중간중간 폭삭 내려앉은 대교의 잔해도 남아 있었습니다. 폐허가 된 마을을 그대로 보존한 곳도 있었습니다. 지진의 아픔을 기억하자는 뜻으로 읽혔습니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인상적인 광경은 산속 높은 고갯마루를 넘는 순간 펼쳐진 커다란 호수였습니다. 가이드는 그곳에서 차를 내리게 하더니 호수의 유래를 소개해줬습니다.
"2008년 대지진 때 새로 생겨난 호수입니다. 산을 끼고 돌던 강 한 굽이가 무너져 내린 토사에 막혀 호수가 됐습니다. 강은 다른 길을 찾아 흐르기 시작했고 결국 이 호수는 이렇게 남아서 지진의 무서움을 증언해주고 있습니다.
저기 호변 물속에 삐죽 솟아있는 첨탑이 보이시죠. 네, 호수 바닥에는 꽤 커다란 산촌 마을이 잠겨 있습니다. 어떤 여행객들은 호수 바닥의 집을 봤다고 하더라고요. 심지어 사람이 오가는 모습을 봤다는 분도 있었습니다. 한번 잘 찾아보시죠."
제 평생 처음 본 언색호였습니다.
지난 3일 발생한 윈난성 루덴 지진으로도 언색호가 형성됐습니다. 루덴현 근처를 흐르던 뉴란장(牛欄江)을 지진으로 무너져 내린 산허리의 막대한 토사가 1백 미터 높이의 자연제방이 돼 막아섰습니다. 흘러내려온 강물이 계속 차올라오면서 지금은 폭 1백 미터, 길이 3백 미터, 깊이 70미터 이상의 제법 큰 호수가 됐습니다.
그런데 이 언색호가 지진에 의한 2차 재해를 일으킬 수 있는 시한폭탄으로 지목받고 있습니다.
멀쩡한 강이 막히다보니 물은 지금도 계속 불어나고 있습니다. 그나마 이 지역에 내리던 비가 그쳐 지금은 한 시간에 80mm씩 수위가 높아지고 있다고 합니다. 밤새 자고 일어나면 10미터씩 수위가 불어납니다. 당연히 막힌 곳의 상류 지역은 빠르게 수몰되고 있습니다. 이미 60여 가구와 농경지 67헥타르가 고스란히 물속에 잠겼습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따로 있습니다.
지금 속도로 물이 차오르면 대략 50시간 뒤에는 1백 미터 높이의 자연제방 위로 흘러넘칠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 경우 엄청난 수압을 견디지 못하고 제방이 무너져 내릴 수밖에 없습니다. 이미 2천7백 세제곱미터에 달하는 물이 모여 있는데 그때쯤이면 더 막대한 양의 물이 고여 있을 것이고 이 물이 한꺼번에 하류로 쏟아져내려갈 경우 재앙은 불을 보듯 뻔합니다.
강가의 수많은 촌락과 농경지가 물에 잠깁니다. 게다가 하류에 있는 7개 수력 발전소와 19개 저수지도 수몰되면서 무용지물로 변합니다. 강변의 도로가 끊기는 것은 물론 그 주변에 6백41개에 이르는 통신 기지가 모두 피해를 입습니다. 당분간 이 지역의 통신은 복구 불가능해집니다.
이를 위해 어제 밤 8시쯤 무장경찰 특공대 25명이 투입됐습니다. 특공대는 10킬로그램의 폭약을 제방으로 운반해 이를 설치한 뒤 안전한 곳으로 빠져나와 오늘 아침 폭파시킬 계획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마저 문제가 생겼습니다.
특공대는 일단 차를 몰고 언색호 주변으로 갈 수 있는 최대한 접근했습니다. 길이 끊겨 더 이상 나아갈 수 없게 되자 짐을 나눠지고 산을 걸어서 넘었습니다. 그리고 절벽이라 할 만큼 가파른 산사면에 로프를 설치해 줄을 타고 호변으로 내려갔습니다. 다시 고무보트를 펼쳐 제방으로 올라가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리고 가져간 폭약을 안전하게 설치했습니다.
후퇴는 왔던 길을 역순으로 돌아갈 참이었습니다. 하지만 막상 로프를 설치한 곳에 가보니 그동안 추가 산사태가 발생해 줄을 타고 올라가기 불가능하게 돼 있었습니다. 할 수 없이 다시 배를 타고 위험한 제방 쪽으로 돌아가야 했습니다. 그곳에서 구조대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합니다. 아직 구조됐다는 소식이 없으니 여전히 제방에 남아있는 모양입니다.
사실 설치한 폭약을 폭파시키는 데 성공하더라도 계획한 대로 호수 물을 빼낼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습니다. 인간이 만든 제방이 아니라 자연이 제멋대로 쌓아놓은 것이라 완벽한 계산이나 통제를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당장 폭약을 설치한 특공대가 자연의 심술에 막혀 돌아오지 못하는 상황만 보더라도 얼마나 어려운 작업일지 넉넉히 짐작됩니다.
사실 지진이라는 자연재해 자체가 인간이 예측할 수 없는 영역입니다. 태풍도, 홍수도, 가뭄도 어느 정도 내다볼 수 있지만 지진은 닥쳐야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자연의 힘 앞에 겸허해지고 그런 가능성에 최대한 철저히 대비하는 것 밖에 없지 않을까 싶습니다. 적어도 두부공정으로 인해 대형 인명피해가 나는 것만큼은 피할 수 있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