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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대지진이 남긴 시한폭탄 '언색호'

[월드리포트] 대지진이 남긴 시한폭탄 '언색호'
2년 전 중국 쓰촨성 서북쪽의 주자이거우(구채구)라는 절경을 보기 위해 여행을 한 적이 있습니다. 쓰촨성의 성도인 청두에서 차로 8시간 길을 달려갔습니다. 그 길은 2008년의 원촨 대지진 발생지를 관통했습니다. 때문에 대지진의 참상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과거 원촨을 오가던 길은 아예 없어지다시피 했습니다. 강 오른쪽을 따라 냈던 길은 곳곳에서 일어난 산사태로 대부분 무너지거나 끊기면서 강 왼편을 따라 새로 길을 닦고 있었습니다. 중간중간 폭삭 내려앉은 대교의 잔해도 남아 있었습니다. 폐허가 된 마을을 그대로 보존한 곳도 있었습니다. 지진의 아픔을 기억하자는 뜻으로 읽혔습니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인상적인 광경은 산속 높은 고갯마루를 넘는 순간 펼쳐진 커다란 호수였습니다. 가이드는 그곳에서 차를 내리게 하더니 호수의 유래를 소개해줬습니다.

"2008년 대지진 때 새로 생겨난 호수입니다. 산을 끼고 돌던 강 한 굽이가 무너져 내린 토사에 막혀 호수가 됐습니다. 강은 다른 길을 찾아 흐르기 시작했고 결국 이 호수는 이렇게 남아서 지진의 무서움을 증언해주고 있습니다.

저기 호변 물속에 삐죽 솟아있는 첨탑이 보이시죠. 네, 호수 바닥에는 꽤 커다란 산촌 마을이 잠겨 있습니다. 어떤 여행객들은 호수 바닥의 집을 봤다고 하더라고요. 심지어 사람이 오가는 모습을 봤다는 분도 있었습니다. 한번 잘 찾아보시죠."

제 평생 처음 본 언색호였습니다.

언색호란 대형 지진으로 인해 산비탈이 무너져 내리면서 생긴 자연제방에 물이 갇혀 만들어진 호수입니다. 원촨 대지진쯤 되면 땅을 뒤흔들어 지표면의 모습을 새로 만들어놓습니다. 산이 무너지고 새로운 협곡이 생기고 물길이 바뀌고 그런 대혼란 속에 호수도 만들어집니다. 대형 지진이 일어나면 으레 언색호가 1~2개 정도 생성됩니다.

지난 3일 발생한 윈난성 루덴 지진으로도 언색호가 형성됐습니다. 루덴현 근처를 흐르던 뉴란장(牛欄江)을 지진으로 무너져 내린 산허리의 막대한 토사가 1백 미터 높이의 자연제방이 돼 막아섰습니다. 흘러내려온 강물이 계속 차올라오면서 지금은 폭 1백 미터, 길이 3백 미터, 깊이 70미터 이상의 제법 큰 호수가 됐습니다.

그런데 이 언색호가 지진에 의한 2차 재해를 일으킬 수 있는 시한폭탄으로 지목받고 있습니다.

멀쩡한 강이 막히다보니 물은 지금도 계속 불어나고 있습니다. 그나마 이 지역에 내리던 비가 그쳐 지금은 한 시간에 80mm씩 수위가 높아지고 있다고 합니다. 밤새 자고 일어나면 10미터씩 수위가 불어납니다. 당연히 막힌 곳의 상류 지역은 빠르게 수몰되고 있습니다. 이미 60여 가구와 농경지 67헥타르가 고스란히 물속에 잠겼습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따로 있습니다.

지금 속도로 물이 차오르면 대략 50시간 뒤에는 1백 미터 높이의 자연제방 위로 흘러넘칠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 경우 엄청난 수압을 견디지 못하고 제방이 무너져 내릴 수밖에 없습니다. 이미 2천7백 세제곱미터에 달하는 물이 모여 있는데 그때쯤이면 더 막대한 양의 물이 고여 있을 것이고 이 물이 한꺼번에 하류로 쏟아져내려갈 경우 재앙은 불을 보듯 뻔합니다.

강가의 수많은 촌락과 농경지가 물에 잠깁니다. 게다가 하류에 있는 7개 수력 발전소와 19개 저수지도 수몰되면서 무용지물로 변합니다. 강변의 도로가 끊기는 것은 물론 그 주변에 6백41개에 이르는 통신 기지가 모두 피해를 입습니다. 당분간 이 지역의 통신은 복구 불가능해집니다.

중국 당국은 당연히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골머리를 앓고 있습니다. 강 하류 지역 주민 4천2백 명을 긴급대피시켰습니다. 침수가 예상되는 주요 시설과 설비를 안전한 곳으로 옮겼습니다. 하지만 결국 근본적인 대책은 쌓여 있는 제방의 일부를 허물어 물길을 냄으로써 호수의 수위를 단계적으로 낮추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어제 밤 8시쯤 무장경찰 특공대 25명이 투입됐습니다. 특공대는 10킬로그램의 폭약을 제방으로 운반해 이를 설치한 뒤 안전한 곳으로 빠져나와 오늘 아침 폭파시킬 계획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마저 문제가 생겼습니다.

특공대는 일단 차를 몰고 언색호 주변으로 갈 수 있는 최대한 접근했습니다. 길이 끊겨 더 이상 나아갈 수 없게 되자 짐을 나눠지고 산을 걸어서 넘었습니다. 그리고 절벽이라 할 만큼 가파른 산사면에 로프를 설치해 줄을 타고 호변으로 내려갔습니다. 다시 고무보트를 펼쳐 제방으로 올라가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리고 가져간 폭약을 안전하게 설치했습니다.

후퇴는 왔던 길을 역순으로 돌아갈 참이었습니다. 하지만 막상 로프를 설치한 곳에 가보니 그동안 추가 산사태가 발생해 줄을 타고 올라가기 불가능하게 돼 있었습니다. 할 수 없이 다시 배를 타고 위험한 제방 쪽으로 돌아가야 했습니다. 그곳에서 구조대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합니다. 아직 구조됐다는 소식이 없으니 여전히 제방에 남아있는 모양입니다.

사실 설치한 폭약을 폭파시키는 데 성공하더라도 계획한 대로 호수 물을 빼낼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습니다. 인간이 만든 제방이 아니라 자연이 제멋대로 쌓아놓은 것이라 완벽한 계산이나 통제를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당장 폭약을 설치한 특공대가 자연의 심술에 막혀 돌아오지 못하는 상황만 보더라도 얼마나 어려운 작업일지 넉넉히 짐작됩니다.




사실 지진이라는 자연재해 자체가 인간이 예측할 수 없는 영역입니다. 태풍도, 홍수도, 가뭄도 어느 정도 내다볼 수 있지만 지진은 닥쳐야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자연의 힘 앞에 겸허해지고 그런 가능성에 최대한 철저히 대비하는 것 밖에 없지 않을까 싶습니다. 적어도 두부공정으로 인해 대형 인명피해가 나는 것만큼은 피할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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