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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혹행위 당하고 전역 당일 자살…軍은 '나몰라라'

소속부대 "자정 4분 지나 사망해 민간인 신분…우리와 무관"<br>유가족 "부대 사전 적극 조치 취했어야…진상 조사라도 해야"

가혹행위 당하고 전역 당일 자살…軍은 '나몰라라'
지난달 10일 오후 11시께 20대 초반의 청년이 의정부시내 아파트 23층에서 뛰어내려 숨졌다. 이 청년은 경북 모 부대에서 근무하다 이날 전역한 이모(22) 상병이다.

이 상병은 복무 당시 가혹행위 등으로 정신질환을 앓다가 상병으로 전역해 집에 오자마자 자살을 선택했다. 가족과 헌병들에 의해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1시간여 뒤인 7월 11일 오전 0시 4분 의사는 사망진단을 내렸다.

경찰은 자살로 사건을 종결처리했다. 그러나 사건 발생 뒤 20여 일이 지난 현재까지 군당국은 이 상병이 왜 자살을 택했는지, 군대 내에서의 문제점은 없었는지 등에 대해 아무런 조사를 하지 않고 있다.

해당 부대는 사고 시각은 군인 신분이 유지되는 전역 당일 자정 전이지만 사망 진단 시각은 다음날 오전 0시 4분이어서 민간인 신분으로 바뀌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불과 4분 차이로 신분이 달라져 그의 죽음이 군과는 무관하다는 것이다.

유족은 사전 조치를 제대로 취하지 않아 상태를 악화시킨 군 당국이 사후 진상 조사조차 하지 않은 채 '나몰라라' 한다며 분노하고 있다.

윤 일병 구타 사망사건으로 국방부 장관까지 군 내부 가혹행위와 관련 대국민 사과를 발표한 상황임을 지적하며 철저한 진상 조사를 요구하고 있다.

이 상병의 아버지(53)는 "군에서 하나도 조사를 안 한다니 정말 답답하다"면서 "아이가 맞았다는 것도 나중에 아이 군 동기들에게서 듣고 나서야 알게 됐다"고 연합뉴스에 말했다.

소속 군부대 당국과 이 상병 부모 등에 따르면, 이 상병은 대학 1학년 1학기를 마치고 2012년 8월 육군에 입대할 당시 신체검사 결과가 좋았고 특수부대를 지망할 정도로 군 복무에 열의도 있었다.

그러나 입대 후 검사에서 관심병사 A급으로 분류됐다. 입대 전 정신과 치료를 받은 병력과 군생활 부적응 등 때문이었다. 정신과 '치료 기간이 기준에 비해 짧고 경미해' 현역 면제나 귀가조치는 이뤄지지 않았다.

이후 자대 배치를 받는 순간부터 문제가 불거졌다. 아버지가 이 상병 동기들에게 들은 얘기를 종합하면 이 상병은 전입해 온 첫날부터 70명 중대원의 군번과 이름을 암기하도록 강요당했다. 또 일주일에 최소 3회 이상 집합, 말실수와 행동실수를 트집으로 상병들에게서 욕설을 듣고 뺨과 배를 얻어맞았다.

이 상병이 일병으로 진급하고 나서도 가혹행위는 이어졌다. 중대원 대다수가 이 상병의 후임이 됐는데도 후임들 앞에서도 집합을 당하고 모욕을 겪었다.

연합뉴스가 입수한 아버지와 이 상병 군 동기들 간 통화 녹취록에 따르면 동기들은 이때부터 이 상병이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처럼 보였다고 증언했다.

입대 때부터 관심보호병사 A급이었던 이 상병은 "엄마를 죽이고 싶다"고 얘기하기도 하고 상병 때는 "자살하고 싶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그때마다 동기들은 이 같은 내용을 상부에 보고했다고 한다.

군 복무에 부적응한 이 상병은 국군병원에서 현역복무 부적합 판정을 받으려 했으나 그마저도 좌절됐다.

지난 2월 22일 작성된 대구국군병원 간호일지를 보면 이 상병은 "가만히 있거나 부대 생각만 하면 누군가 패버리고 싶은 생각이 든다"고 상담사에게 얘기한다.

또 "거의 한 시간에 한 번씩 그런(패버리고 싶은 생각) 생각이 든다"면서 "부대에서 맞고 욕설 들었던 것들을 자대 간부에게 얘기했는데 내 말은 들어주지 않고 무시했다"고 털어놓았다.

그럼에도 지난 3월 19일 작성한 정신건강의학과 경과기록에서 "뚜렷한 정신 병리는 관찰되지 않음"이라며 계속 복무해야 한다고 판정해 이 상병은 전역하지 못했다.

이후 우발적으로 상관을 때리는 '사고'를 치고 탈영해 영창에 가게 된다.

상병에서 병장으로 진급하지도 못하고 꼬박 21개월을 만기 복무한 뒤 군사법원에서 집행유예 선고를 받고 전역했다.

이 상병의 아버지는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처벌을 제대로 받아야겠지만 중대장이 인정할 정도로 우리 아들은 정신병자처럼 보였다"고 밝혔다.

그는 "사정이 이런데도 군 당국이 절차와 규정만 따지고 민간병원 치료를 받게 하거나 휴가를 제때 보내주거나 하지 않고 시간만 끄는 사이에 아이의 상태가 악화됐고 결국 저렇게 갔다"고 분노했다.

그는 또 군대에 가서 빚어진 일로 전역 당일 자실하게 됐는데도 군당국은 사망시점만 따지면서 진상조사나 사과 등을 외면하고 있다며 제도개선과 재발방지를 위해서도 철저한 경위 파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국방부는 정신과 진단서 생략 등 행정서류 간소화를 통해 현역복무 부적합 병사의 전역 절차를 기존 2∼3개월에서 2∼3주로 단축해 이달 초부터 시행 중이라고 4일 뒤늦게 밝혔다.

군법무관과 민변 사무차장을 지낸 박지웅 변호사는 "일반 사건이라면 법리적으로 의사가 사망진단을 내린 시각이 중요하지만, 이번 사안은 군인 신분인지 민간 신분인지 중요한 게 아니다"고 지적했다.

박 변호사는 "해당 병사가 군 생활에서 어떤 가혹행위와 스트레스를 받아 전역한 날 투신하게 됐는지 밝히는 것이 핵심"이라면서 군이 조사하지 않으면 유족이 소송을 제기, 조사토록 하는 방법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의정부=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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