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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속의 천주교, 교황 방한의 의미는

[SBS스페셜] 거리의 교황, 프란치스코⑤

이틀 동안 다섯 번의 투표가 이어진 뒤, 콘클라베에 흰 연기가 피어올랐다. 새로운 교황의 탄생이었다.

지금까지 아무도 선택하지 않았던 이름, 빈자들의 성인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를 즉위명으로 선택한 새로운 교황은 시작부터 남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는 교황 관저 대신 다른 성직자들과 함께 지내는 바티칸의 산타 마르타 게스트 하우스를 숙소로 정했고, 비싼 전용차 대신 작은 소형차를 선택하였다. 또한, 모국인 아르헨티나의 여권을 갱신하면서 교황청의 국가원수라는 의전특권을 거부했다. 그는 검소하고 낮은 행보로 역대 교황 중 가장 매력적인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프란치스코 효과’라는 신조어가 등장했고 사회 곳곳에서 그의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이탈리아 이민자의 아들로 아르헨티나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교황 프란치스코. 노동을 중요시한 아버지는 그가 열세 살이 되던 해, 화학 공장에서 일을 하도록 했다. 몸소 노동의 가치를 엄격하게 배우며 유년시절을 보낸 그에게 노동은 인간의 존엄성이었다.

이후 평생 봉사와 희생의 삶을 서약한 그는 군부독재, 빈곤, 마약, 폭력 등 조국 아르헨티나의 슬픈 역사를 지켜봐야만 했다. 그는 항상 아르헨티나의 가장 힘들고 어려운 사람들과 함께 있었다. 범죄자, 마약 중독자, 노숙자의 발을 씻어주고 입 맞춰주었고 빈민촌의 방황하는 젊은이를 만났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함께 울어주었다.

그는 사제가 되고 나서부터 직접 뛰어다니며 아르헨티나의 젊은이들에게 노동을 외쳤다. '가난한 이들을 위한 가난한 교회'를 외치며 가난을 해결하기 위한 사회 참여를 중요하게 다루었다. 그 결과 높은 실업률로 인해 생겨났던 까르또네로(폐지 줍는 사람)들이 노동협동조합을 만들어 스스로 일할 수 있게 되었으며 그들은 그런 그를 잊지 못하고 있다.

군사독재 시절 침묵으로 협조한 것이 아니냐는 비판에 단 한마디도 변명하지 않았다. 그러나 수만 명의 무고한 시민들이 체포되고 살해당하는 참혹한 현실에서 교황이 위험을 무릅쓰고 구해준 사람들의 생생한 증언을 들을 수 있었다.

"교황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지금 여기 살아 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 젊은 사제 베르골리오가 자신이 지금 얼마나 위험한 일을 하는지 알고 있는지. 오히려 우리는 그를 걱정했었다. 그는 말없이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하신 분이었다."

지난 6월, 프란치스코 교황의 한국방문이 확정되었다. 많은 사람은 그의 방문에 환호하였고 그날을 기다리고 있다. 이번 방한에서는 아픈 역사를 가진 위안부 할머니들과 세월호 사고 유가족과도 만나 우리의 과거와 현재의 아픔을 위해 기도할 예정이다.

가난, 질병, 전쟁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사랑하는 거리의 교황 프란치스코는 말한다. "우리는 정당한 시스템을 원하고 외쳐야 합니다. 우리 모두가 살 수 있는 시스템 말입니다. 돈이 아닌 사람이 중심에 있어야 합니다. 그런 세상을 위해 가톨릭 교회가 거리로 나가 일하기를 원합니다."

SBS 스페셜은 교황이 태어나고 활동한 아르헨티나와 그가 있는 로마 바티칸 현지 촬영을 통해 전 세계인이 왜 교황에 열광하는지 그 이유를 생생하게 취재했다.

(SBS 뉴미디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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