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을 쓰다 보니 인터넷에 집착하게 되더라고요. 아내가 18개월 된 아이 교육에도 좋지 않으니 바꾸자고 해서 2G폰을 샀어요. 써보니 뜻밖에 편하던걸요"
휴대전화 기종을 아날로그로 바꿨다고 해도 그가 자신의 신작 '군도:민란의 시대'에 대한 평단의 관심과 대중들의 기대감을 모를 리 없다. 관객들은 하정우와 강동원이 만난 액션 활극이라는 이유로, 또 윤종빈의 신작이라는 이유로 이 작품을 오랫동안 고대해왔다.
그도 그럴 것이 평단의 극찬을 받은 데뷔작 '용서받지 못한 자'부터 뼈아픈 실패를 안겨준 '비스티 보이즈', 그리고 윤종빈이란 이름에 확신을 준 '범죄와의 전쟁:나쁜 놈들 전성시대'까지 그는 작품마다 고정 팬을 확보해왔다. 윤종빈 감독의 팬덤은 작품의 상업적 성공과 비례하지 않았다.
대표작은 전국 480만 관객을 동원했던 '범죄와의 전쟁'이지만, '용서받지 못한 자'와 '비스티 보이즈'에 반해 그를 신뢰하는 관객도 적잖았다. 윤종빈의 작품엔 그 어떤 영화감독도 보여주지 못한 개성과 색깔이 있기 때문이다.
'범죄와의 전쟁'을 통해 대중의 폭넓은 지지를 등에 업은 윤종빈은 차기작으로 '지리산 추설'이라는 조선 후기 현존했던 도적 떼들의 이야기를 다룬 '군도:민란의 시대'를 준비했다.
'군도'는 조선 철종 13년, 힘 없는 백성의 편이 돼 세상을 바로잡고자 하는 의적떼 군도와 삼남지방 최고 대부호 조윤의 대결을 그린 작품. 하정우, 강동원, 이경영, 마동석, 조진웅, 이성민, 윤지혜 등이 출연했다.
"언젠가 '조선의 군도와 땡추'라는 조선 시대 야담을 담은 책을 한 권 읽었다. 어릴 적 드라마에서나 보던 임꺽정, 장길산이라는 인물이 실존했다는 사실에 놀랐다. 더불어 그 당시 시대상과 민초들의 삶이 흥미로웠다. '범죄와의 전쟁'이 끝나고 제대로 된 오락 영화를 한 편 해야겠구나 싶었는데 마침 이 이야기가 생각나더라. 이런 이야기면 신나게 놀아볼 수 있겠다 싶었다"
'군도'는 윤종빈 감독이 작심하고 만든 오락영화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좋아하고 사랑했던 오락적인 모든 요소를 쏟아부은 작품'이다. 윤종빈 감독은 "전작들에서 사회의 어두운 면만을 다루다 보니 스스로 지친 감도 없지 않았다"며 "전작은 세상을 바로 보는 창으로 영화에 접근했다면 '군도'는 내 안에 있는 흥을 찾아보는 과정이었다"고 말했다.
윤종빈 감독은 자신의 유년시절에 있어 무협지와 홍콩 영화가 준 영향이 적지 않았다고 했다. '군도'에선 그 색채들을 하나하나 느낄 수 있었다.
"영화의 시작점이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영화에 담아보자'였다. 난 웨스턴 세대가 아니고 마카로니 웨스턴을 좀 본 정도였다. 엄밀히 말해 난 홍콩 무협 영화 세대다. 무협지, 순정만화, 장길산 같은 소설들 그런 영향이 '군도'에도 묻어나지 않았나 싶다. '군도'는 내가 좋아하고 사랑했던 것들의 종합선물세트가 되길 바랐다"
말을 타고 질주하는 군도 떼로부터 시작하는 영화는 마카로니 웨스턴의 향취에 무협지의 분위기도 교묘하게 묻어난다. 윤종빈 감독은 "한국 사극의 가장 큰 불만이 색이 중구난방이라는 것이었다. 색이 사방으로 튀면 사람이 안 들어오게 된다. 그래서 미술, 세트 등에 많은 공을 들였다. 우리가 제작한 세트가 30개가 넘었는데 아마 사극 역사상 가장 많은 수일 것"이라고 자부심을 드러냈다.
"이젠 같이 하는 게 새삼스러울 것도 없고, 오히려 같이 안 하면 큰일 날 것 같다. 매 작품 같이 하자고 작심하고 출연시키는 게 아니라, 내가 작품을 구상하면 형이 들어주고 "그거 재밌겠는데?"라고 한. 이후부턴 같이 이야기를 발전시켜가는 식이다. 그러다보면 어느 순간 나는 감독, 정우 형은 주인공이 돼있다. 난 정우 형이랑 작업하는 게 신난다. 함께 해온 오랜 시간이 있으니 지나고 나도 계속 이야기거리가 쌓인다. 작품을 같이 하면서 서로 커간다는게 훈훈하달까. 어느 순간은 짠할 때도 있다.
또 한 명 새로운 얼굴도 보였다. 군 제대 후 돌아온 강동원이었다. 강동원 오랜 팬이었던 윤종빈 감독은 그를 만나고 돌아온 뒤 시나리오를 완성했다. 조윤은 강동원이 아니면 안 됐고, 강동원은 조윤을 만나 그야말로 날개를 달았다.
그는 "강동원의 오랜 팬이었다"면서 "함께 작업해보니 기대 이상이었다. 특히 그가 보여준 장검 액션은 왜 그를 두고 '충무로 최고의 검 액션 1인자'라고 하는지 알겠더라"고 감탄스러워 했다.
'군도:민란의 시대'라는 제목을 들었을 때 관객이 기대하는 어떤 설렘과 흥분 같은 것이 분명 있다. 특히 윤종빈이라는 인물이 그려낼 조선 후기의 사회상과 군도를 통해 보여줄 어떤 메시지에 대한 기대도 상당했다. 하지만 이 부분에 있어 관객들의 만족도는 조금 달랐다.
"윤종빈의 '군도'에 대해 각자의 머리에 그려놓은 어떤 것이 있었던 것 같다. 일례로 한식을 생각했는데 막상 먹어보니 양식이었을 때의 놀라움이랄까. '군도'를 둘러싼 반응을 보면서 놀랐던 게 관객들이 나를 잘 모를 줄 알았다. 영화란 철저하게 배우를 보러 온다고 생각했는데, 나에 대한 남다른 기대가 있었던 것 같다"
"조윤이 극 중에서 "타고난 운명을 바꾸기 위해 생을 걸어본 자가 있느냐. 그자의 칼만 받겠다"라는 대사를 한다. 그게 어쩌면 우리 영화의 주제가 아닐까 싶다. 물론 일반적인 오락 영화의 패턴과는 조금 다르다는 것을 안다. 난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가치판단에 의한 행동, 이데올로기에 기인한 행동이 세상을 바꾸는 게 아니라 순수한 인간 밑바닥의 선이 세상을 바꾸는 원동력이라고 생각한다. 원수같은 조카지만 끝내 아기를 죽이지 못하는 조윤, 원수지만 죽였을 때 상투를 자르지 않는 도치의 행동을 통해 인간의 본능적인 선에 대해 언급하고 싶었다"
연장 선상에서 조윤을 이유 있는 악역으로 그린 것에 대해서는 "시나리오를 쓸때 선인과 악인을 구분하고 쓰지 않는다. 주제와 사연이 있었으면 했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가 세상을 살다 보면 누군가에게 화를 제공하기도 하고 받기도 하는데 단순한 선악구도가 형성될 수 있나 싶다"면서 "영화의 라스트신의 경우도 단순히 선악으로 대비되는 도치와 조윤의 대결이 아니라 대나무 숲이라는 세상으로 은유되는 공간에서 두 사람이 각자 자기 안의 번뇌와 싸우는 것으로 그리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윤종빈 감독은 "나는 아주 스트레이트하거나 한쪽으로 몰아주는 이야기는 할 수 없는 사람 같다. 그런 것을 믿지도 않고 동의하지도 않으니, 그건 내 세계관의 문제이기도 하다"면서 "내가 이번 영화를 하면서 또 하나 느낀 건 '난 철저한 오락영화는 할 수 없는 감독이구나'였다"고 했다.
생각해보면 윤종빈 감독의 영화에 절대 악은 없었다. 비루한 인간, 불쌍한 인간이 있을 뿐이었다. 감독은 그런 인물들에게도 연민의 시선을 놓지 않았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군도'가 윤종빈 감독의 세계관에서 아주 빗나간 영화는 아니라고 볼 수 없을 것이다.
"우리 시대가 지금이나 조선 시대나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 좌와 우의 대립으로 이어졌다. 그런 시대가 저물고 새로운 시대가 왔으면 하는 염원을 담은 신이다. 마지막 장면에서 도치가 애를 안고 뛰지 않나. 그것은 아이에 대한 모성 같은 감정도 있겠지만, 그 아이가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꿈꾸는 마음도 담고 있다"
'군도'을 향한 기대감은 엄청났다. 영화를 만드는 이들 만큼이나 기다리는 관객들의 작품을 향한 기대와 염원은 컸다. 흥행에 대한 감독의 부담도 적지 않을 터.
윤종빈 감독은 "상업영화 감독의 운명이라고 생각한다. 흥행에 대한 부담감을 늘 안고 있다는 것은 단점이지만 대신 상업영화는 많은 사람과 소통할 수 있다는 확실한 장점이 있다. 관객의 다양한 의견들을 즐기고 싶다"고 말했다.
'군도'는 개봉 첫날 전국 55만 명의 관객을 동원했고, 개봉 10일 만에 400만 고지를 점령했다. 이 영화에 얼마나 더 많은 관객이 열광할지, 또 어떤 다양한 평가들이 나올지는 조금 더 지켜볼 일이다.
(SBS 통합온라인뉴스센터 김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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