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민 감독은 신작 '명량'에서 사극의 트렌드를 거슬렀다. 이번 영화에서는 퓨전 사극이 아닌 정통사극에 가까운 연출 방식을 구사했다. 다양한 맛의 양념을 치거나 조미료로 자극적인 맛을 내려고 하지 않았다. 핵심을 '명량해전'으로 잡고 그것을 향해 정주행했다.
이순신. 아마도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위인일 것이다. 초등학교 다니는 어린 아이도 이순신이라는 명사에 '위대한 장군'이라는 수식어를 반사적으로 붙일 만큼 대다수에게 학습화된 인물이다.
널리 알려졌다는 건 더 이상 새로울 것도 흥미로울 것도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최종병기 활'로 흥행 감독의 대열에 올라선 김한민 감독은 '명량'을 통해 우리가 몰랐던 이순신의 내면을, 그리고 명량대첩의 치열한 현장을 살려냈다.
영화의 중심은 명량대첩 그 자체다. 역사에 약 8시간 만에 막을 내린 것으로 기록된, 왜군은 전멸하다시피 하고 조선의 배는 단 한 척도 피해를 보지 않은 이 드라마틱한 해전을 이순신은 어떻게 시작해 어떻게 마무리 했는가라는 물음표에서부터 영화는 출발했다.
김한민 감독에게는 역사라는 더없이 훌륭한 텍스트가 있었다. 영화보다 더 드라마틱한 스토리로 남겨진 각종 기록은 '명량'의 토대였다. 김한민 감독은 기존 영화나 드라마에서 그려진 판타지 영웅의 이미지가 아닌 인간적 고뇌와 심리적 불안을 담은 입체적 캐릭터로 이순신을 그려냈다.
이순신의 캐릭터를 만드는데 있어 참고했던 것은 고인이 전쟁터에서 직접 쓴 '난중일기'였다. 전반부 한 시간은 임진왜란 중 누명을 쓴 채 파직당하고 백의종군한 이순신이 다시 삼도 수군통제사로 임명돼 명량해전에 나서기까지 갈등과 고뇌를 그린다.
드라마에서 가장 하이라이트에 이르는 부분은 전쟁에 대한 두려움에 떠는 부하들을 모아놓고 '생즉필사 사즉필생'(生卽必死 死卽必生)을 외치는 부분. 이 장면에서 최민식은 압도적인 카리스마로 "나는 바다에서 죽고자 이곳을 불태운다. 목숨에 기대지 마라.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요. 죽고자 하면 살 것이다"라고 부하들을 독려한다.
감독은 드라마의 공백을 이순신 장군이 전시상황에서 발휘했던 지략과 전술로 채웠다. 세계 전쟁사에서도 유례없는 드라마틱한 승리가 어떻게 이뤄졌는가에 대한 궁금증을 긴박감 넘치는 연출로 풀며 긴 해상전의 집중도를 높였다.
김한민 감독은 명량대첩을 전술을 펼친 시간순으로 배열해 보는 이를 전쟁 상황 속에 놓았다. 이 같은 설정이 취한 것은 명량대첩의 승리가 조류의 흐름을 전략으로 삼은 전쟁이기 때문이다.
명량대첩은 이충무공전서, 선조실록 등 사료에서 병력 기록이 다르다. 어떤 기록에서는 12척, 또 다른 기록에서는 13척, 왜군의 배 역시 330척과 133척 등 그 의견이 분분하다. 김한민 감독은 정확한 자료가 남아있지 않은 명량대첩을 그리는 데 있어 다양한 전문가들의 해석과 역사 자료를 바탕으로 당시 상황을 고려해 스토리를 완성했다. 전술의 구현 역시 명량 지역 조류의 흐름과 당시 날씨, 지형의 형태 등을 고려해 영화적 상상력을 가미했다.
'명량'은 시종일관 진지하다. 명량대첩 전후 이순신의 내면과 고뇌에 집중하다보니 비장미가 넘쳐흐른다. 충, 효, 민에 대한 메시지가 영화 전반을 지배하며 진중하고 근엄한 분위기를 조성한다.
'악마를 보았다'의 극악무도한 악역, '범죄와의 전쟁:나쁜 놈들 전성시대'의 비리 세관원 캐릭터를 완전히 지워버리는 새로운 최민식의 얼굴을 볼 수 있다.
영화는 이순신에 집중하면서 상대적으로 타 캐릭터는 보이지 않는다. 왜군의 장수로 분한 김명곤, 류승룡, 조진웅이 일본어를 구사하며 호연을 펼치지만 평면적 악역으로 그려진 데에 대한 아쉬움은 남는다. 이는 이순신 장군을 영화의 시작이자 끝으로 두고자 한 김한민 감독의 선택과 집중에 따른 결과로 보인다.
역사가 스포일러라고 했던가. '명량' 역시 그 점에서 자유로울 수 없지만, 이 영화는 결과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과정이 핵심이다. 교과서에 단 몇줄로 정리된 명전쟁이 누구의 손에 또 어떻게 탄생됐는가에 대한 생생한 묘사가 '명량'의 영화적 강점이다. 7월 30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상영시간 128분.
(SBS 통합온라인뉴스센터 김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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