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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안중근 유묵 '경천' 천주교 품으로

[취재파일] 안중근 유묵 '경천' 천주교 품으로
 지난 3월, 8시 뉴스 시간을 앞두고 문화부 기자들이 바빠졌습니다. 안중근 의사의 유묵 '경천'이 경매에 나오는 날이었습니다. 경매 시작 가격이 7억원이었습니다. 유묵으로는 사상 최고가에 낙찰될 거란 기대가 높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가격이 너무 높아서였을까요, 경매는 유찰됐습니다. 기자들도 부랴부랴 기사를 고쳐 써야했습니다. 

 '경천'이 뭐길래 7억원이나 할까요. (게다가 감정가는 7억 5천만원이었습니다) 글씨를 다시 한 번 천천히 살펴보게 됐습니다. 경천(敬天)은 '하늘을 공경하라'는 뜻입니다. 짧지만 강렬한 필치가 한눈에 들어옵니다. 그 옆에는 손도장이 있는데, 네번째 손가락 마디를 잘라낼 당시의 결연한 의지도 느껴집니다. 이 유묵은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고 뤼순 감옥에 갇혀있던 1910년에 썼습니다. 감옥에 있던 안중근 의사가 '일본인의 부탁'을 받아 쓴 붓글씨였기에 후대에까지 온전히 전해질 수 있었던 겁니다. 1910년 3월 사형선고를 받기 전까지 안중근 의사가 남긴 유묵은 60여점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모두 일본인들의 부탁으로 쓴 것입니다. 일본인들 역시 안중근 의사를 살인범이 아니라, 평화주의자로 인식했음을 엿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이렇게 해서 안중근 의사의 유묵은 대부분 일본인들이 소장하고 있었습니다. 지금은 국내 박물관이나 개인이 이를 어렵게 들여와 현재 국내에는 20여점이 있습니다. 그 중 '경천'은 부산 자비사의 주지 삼중 스님이 1994년 국내로 들여온 작품입니다. 삼중 스님은 안중근 의사의 정신을 기리기 위한 사업을 해오고 있었고, 제주도에서 전시회를 열어 이 유묵을 일반에 공개하기도 했습니다. 얼마 전 한 TV 프로그램에 나와 감정을 의뢰하기도 했는데 그때 감정단은 '안중근 의사의 정신은 가격을 정할 수 없다'며 '0원'이 나와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런 '경천'이 20년 만에 경매에 나왔습니다. 삼중 스님이 오랜 고민 끝에 이 작품을 경매에 부쳤을 때는 안중근 의사의 뜻을 이어받을 수 있는, 이 유묵을 잘 관리할 수 있는 누군가가 나타날 것이란 기대가 있었을 것입니다. 스님도 노령인데다, 개인 자격으로 혼자 유묵을 관리하는 것도 쉽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경매가 유찰된 뒤 스님 뿐 아니라 많은 이들이 새 주인이 나타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희소식이 들려왔습니다. '경천'을 서울 잠원동성당에서 5억여원에 구입했습니다. 이를 곧 천주교 서울대교구에 기증할 예정입니다. 안중근 의사는 독실한 천주교 신자였다고 합니다. 황해도 지역 전도에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한 것을 두고 당시 조선 가톨릭 교구에서 안중근 의사의 신자 자격을 박탈했습니다. 지난 2010년에야 신자 자격이 복권됐습니다. 그동안 천주교계가 꾸준히 노력해온 결과물이었습니다. 

 '경천'은 안중근 의사의 종교적 신념도 담겨있는 유묵입니다. 경매 이후 한달 쯤 지나 잠원동성당의 주임신부는 신자들과 함께 이 유묵을 사기로 결정했고, 삼중 스님께 구입 의사를 전했습니다. 삼중 스님도 오랜 고민 끝에 천주교계의 뜻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경천'을 천주교 서울대교구에 기증해 오는 2017년 완공 예정인 서대문 순교성지 박물관에 전시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다음달 초 '경천'은 기증식을 통해 우리 앞에 또한번 모습을 드러낼 것입니다. 천주교의 성지에서, 안중근 의사의 결연한 의지가 다시 한번 우리의 가슴에 감동을 줄 것으로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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