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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16만 원의 도움이 만 배의 보은으로

[월드리포트] 16만 원의 도움이 만 배의 보은으로
동화에서는 흔히 접하는 이야기입니다. 보은 말입니다. 작은 친절을 베풀었는데 엄청난 보상을 받습니다. 우리 전래 동화에도 있습니다. 자신의 새끼를 구해준 선비를 살리기 위해 까치는 머리로 종을 들이받습니다.

하지만 현실에서 이런 일은 참 드뭅니다. 일단 도움의 손길 자체가 희귀합니다. 미담이라며 뉴스에 나올 정도입니다. 보답을 받는 일도 많지 않습니다. 세상이 너무 바쁘고 각박해졌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중국에서 동화 같은 일이 벌어졌습니다. 젊은 시절 힘들고 어려울 때 1천 위안, 우리 돈 16만 여원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25년 후 1천만 위안, 16억 원 넘는 막대한 보은을 했습니다.

순성룽 씨는 장쑤성 시골 출신입니다. 집이 너무 가난해 중학교만 나오고 바로 사회에 뛰어들어야 했습니다. 1987년 15살에 순 씨는 쉬저우에서 이발소를 하는 형의 가게에 몸을 맡겼습니다. 머리를 감아주는 일을 했습니다.

그곳에서 단골손님이었던 24살 장아이민 씨를 만납니다. 둘은 형, 동생 하는 사이가 됐습니다. 죽이 잘 맞았습니다. 하지만 순 씨는 얼마 있지 않아 멀리 저장성 원저우시에 농민공으로 일하러 갔습니다.

몇 개월 뒤 장씨는 원저우시로 출장갔습니다. 길에서 우연히 순 씨와 마주쳤습니다. 둘은 반가운 마음에 근처 식당에서 함께 식사를 했습니다. 잘 지내냐는 장 씨의 인사에 순 씨의 얼굴이 어두워졌습니다. 일이 잘 풀리지 않고 힘들다고 하소연했습니다. 장 씨는 마음이 아팠습니다. 순 씨의 손을 꼭 잡으면서 제안했습니다.

"그럼 쉬저우로 다시 와. 내가 도와줄게."

며칠 뒤 순 씨는 쉬저우로 가는 열차에 몸을 실었습니다. 초라한 옷가지를 챙긴 보따리 하나가 전부였습니다. 당시 형도 이발소를 접고 다른 도시로 옮긴 상태라 쉬저우에 아는 사람이라고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장 씨의 약속만 믿고 갔습니다.

정말로 나타난 순 씨를 장 씨는 뜨겁게 반겼습니다. 그 다음날로 1천 위안, 약 16만원을 은행에서 찾아 순 씨 손에 쥐어줬습니다. 순 씨와 함께 다니며 시장 상가 한 구석을 임대하도록 힘써줬습니다. 이발 도구와 재료를 마련하는 일도 도왔습니다. 장 씨는 당시에 한 밸브 공장에서 월 90위안(약 1만4천6백 원)을 받는 월급쟁이였습니다. 순 씨에게 자신의 1년치 봉급에 맞먹는 큰 돈을 선뜻 내준 것입니다.

이발소를 차린 순 씨는 따로 사람을 고용할 형편이 아니었습니다. 혼자 이발소를 운영하다보니 가게를 비워놓고 점심을 먹으러 갈 수가 없었습니다. 장씨는 매일 점심시간마다 자신이 일하는 공장의 식당에서 밥을 싸서 순씨의 이발소로 가져다줬습니다. "젊은 친구가 살아보려고 애쓰는 게 너무 짠했어요. 동생처럼 느껴졌죠. 그래서 도와주고 돌보게 됐죠."

하지만 순 씨의 이발소는 경영이 지지부진했습니다. 결국 순씨는 이발소 문을 닫고 군에 입대했습니다. 장아이민 씨와 소식이 끊어진 것이 이때입니다. 순 씨는 제대한 뒤 갖은 역경과 풍파를 겪었습니다. 그리고 이역만리 스페인으로 일자리를 구해 떠났습니다.

처음에는 식당 종업원으로 일했습니다. 노점 행상을 시작했습니다. 악착같이 일해 조금만 무역업을 하게 됐습니다. 눈물겨운 노력 끝에 사업은 점점 커지기 시작했고 마침내 스페인 교민 사회에서 알아주는 사업가로 성장했습니다.

성공하고 나서도 순 씨는 장아이민 씨의 도움을 잊지 않았습니다. 어떻게든 은혜를 갚고 싶었습니다. 2008년 순 씨는 드디어 쉬저우를 찾아왔습니다. 18년만이었습니다. 도시의 모습은 완전히 바뀌어 있었습니다. 예전에 자신이 이발소를 냈던 시장은 물론 그 거리 자체가 없어졌습니다. 장아이민 씨의 행방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여기저기 다니며 장 씨의 소식을 수소문 했지만 아무런 소득도 얻지 못하고 되돌아가야했습니다.

2010년 업무차 중국을 방문한 길에 다시 쉬저우를 들렸습니다. 장 씨가 일했던 공장과 집이 있었던 동네를 돌아다녔지만 장 씨의 행방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2012년 7월 순 씨는 작심하고 쉬저우를 다시 찾아왔습니다. 이번에는 시간을 충분히 내서 반드시 장 씨를 찾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쉬저우의 모든 거리와 골목을 훑었습니다. 하지만 장 씨와 관련된 어떤 단서도 얻을 수 없었습니다. 순 씨는 경찰에 찾아가 사연을 설명하고 도움을 부탁했습니다. 경찰이 조사한 결과 쉬저우에 사는 장아이민은 140여명이나 됐습니다. 나이와 각종 조건을 따져 가장 가능성이 높은 1명의 주소를 얻었습니다.

잔뜩 기대를 하고 해당 주소로 찾아갔지만 또다시 실망해야만 했습니다. 이미 장아민 씨는 다른 곳으로 옮긴 뒤였습니다. 어디로 이사를 갔는지 확인할 수가 없었습니다. 순 씨는 결국 포기하고 스페인으로 돌아갈 비행기 표를 예약했습니다.

돌아가는 날 오전 경찰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찾고 있는 장아이민 씨로 보이는 남성의 전화번호를 확보했다는 것이었습니다. 떨리는 마음으로 전화를 건 순 씨는 꿈에도 잊지 못하던 장 씨의 음성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장 씨는 바로 순 씨가 머무는 호텔로 달려왔습니다.

호텔 문 앞에서 만난 장 씨와 순 씨는 한눈에 서로를 알아봤습니다. 25년만의 해우. 두 사람은 서로 끌어안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처음에는 의아해하던 주변 사람들은 두 사람의 사연을 듣고 감탄처럼 말했습니다. "완전히 연속극의 한 장면이네."
우상욱 취파

장씨는 2011년까지 한 기계공장에서 일하다 퇴직했습니다. 이후 친구와 자그마한 상점을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순 씨는 25년전 빌린 1천 위안에 대한 보은으로 장 씨에게 집 2채를 선물하려 했습니다. 장 씨는 극구 사양했습니다. "보답을 바라고 도와준 것이 아니네. 찾아와준 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한데. 또 풍족하지는 않아도 먹고 살만 해."

고민하던 순 씨는 1천만 위안을 들여 농장을 세웠습니다. 스페인에서 자신이 경영하는 업체를 통해 포도와 올리브 등을 들여와 포도주와 올리브유를 생산하도록 했습니다. 사장으로 장 씨를 앉힌 뒤 농장을 완전히 맡겼습니다. 순 씨의 보답을 완강히 거절하던 장 씨도 이 아이디어는 마음에 들었습니다. "순 씨와 함께 일을 할 수 있는게 좋았습니다. 제가 힘껏 노력하면 순 씨를 도와주는 셈도 되고요."

순 씨도 대만족이었습니다. "이익을 얻자고 하는 사업이 아니죠. 그저 형과 함께 소통하고, 교류하고, 계속 유대를 맺기 위한 수단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함께 사업을 하기로 했습니다."

2년째를 맞은 농장은 날로 번창했습니다. 순 씨는 쉬저우에 오는 일이 잦아졌습니다. 사업을 위해서 뿐 아니라 장 씨를 만나기 위해서이기도 합니다. 순 씨와 장 씨 두 사람만이 아니라 두 가족 전체가 한 집안처럼 됐습니다.

얼마 전 장 씨가 허리를 삐끗해 한동안 자리보전을 해야 했습니다. 소식을 들은 순 씨는 스페인에서 한달음에 달려와 내내 장 씨를 간호했습니다. 화장실에 부축해 데리고 가는 것도 순 씨가 도맡았습니다. "장 씨는 비록 남남으로 만나 알게 된 사람입니다. 하지만 이제 제게는 친형님만큼 소중한 분입니다."

중국인들은 마음을 잘 열지 않습니다. 의심도 많아 여간해서는 다른 사람을 믿지 않습니다. 하지만 일단 마음을 주면 목숨을 내줄 만큼 의리를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도원결의의 주인공 유비와 관우, 장비의 후손답습니다.

어렵고 힘들 때 마음을 다해 도운 1천 위안이 25년 후에 만 배의 보은으로 되돌아오는 동화 같은 이야기가 그래서 현실에서 일어났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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