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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고가 차량에만 유리?…자차보험 자기부담금 형평성 논란

[취재파일] 고가 차량에만 유리?…자차보험 자기부담금 형평성 논란
차량은 소유한 운전자라면 자동차 종합보험에 들 때 대물, 대인배상과 별도로 내 차 수리를 위한 ‘자기 차량 손해 담보’(일명 자차보험)에 대부분 가입합니다.  실제로 자차보험료는 차량 가액에 따라 차이가 나긴 하지만 전체 보험료 중에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  저 역시 종합보험료 96만원 중에 49만원이 자차보험료입니다.  이렇게 적잖은 보험료를 자기차량 수리에 대비해 내고 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보험 가입자 입장에서 불합리한 점이 한두가지가 아닙니다. 그 중에서도 ‘자기부담금’ 제도는 형평성 측면에서 문제가 심각합니다 .

직장인 김 모 씨는 몇 달 전 야간운전을 하다 보도블럭을 미처 보지 못해 들이받았습니다.  자동차 보험에 가입했기 때문에 별도의 비용 없이 차를 수리할 수 있겠지 라고 생각했지만 오산이었습니다.  전체 수리비가 169만원이 나왔는데 이 가운데 80%인 130만4천원만 보험처리가 되고 나머지 20%인 32만6천원은 직접 부담해야했습니다.  차량 수리비의 20%를 차주가 부담하도록 한 자기부담금 규정 때문입니다.  김 씨는 보험에 가입할 때 무심코 지나쳤던 자기부담금이 이렇게 많을 줄을 몰랐다며 기자에게 하소연했습니다.  보험료는 보험료대로 내고 자기부담금을 수십만 원씩 또 부담하고, 수리비가 200만원 넘게 나오면 3년 동안 보험료가 10% 이상 할증되는 구조로 만들어놔 차주의 부담을 이중, 삼중으로 가중시키고 있다는 겁니다. 김 씨 뿐만 아니라 실제로 자기 차량 수리를 해본 차주라면 똑같이 느끼는 대목입니다. 

자기부담금을 수십만 원씩 내는 것도 억울한데 더 큰 문제가 있습니다.  고급차나 외제차에 비해 상대적으로 수리비가 적게 나오는 중소형차 소유주에 부담이 더 크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볼까요?  수리비가 2백만 원을 넘으면 보험료가 할증되는 자차보험에 가입했을 경우(보험 가입자의 84.6%가 이 옵션을 선택, 2013년 기준) 차주가 부담하는 자기부담금은 전체 수리비의 20%이지만 최저 20만원~최대 50만원까지 한도가 설정돼 있습니다.  까닭에 A차량의 자차 수리비가 60만원 나왔다면 A차량 소유주가 부담해야할 자기부담금은 60만원의 20%인 12만원이 아니라 최저액 20만원에 미달하기 때문에 8만원을 더 내야 합니다.  반면 B차량의 수리비가 천만 원 나왔다면 이 차주는 20%인 2백만 원을 자기부담금으로 내야하지만 최대금액이 50만원이기 때문에 이 금액만 부담하면 됩니다.  상대적으로 수리비가 많이 나오는 고급 대형차, 외제차에 유리할 수밖에 없는 구조인 겁니다.  보험개발원이 분석한 자차보험금 금액계층별 현황을 보면 2013년 수리비 100만원 미만 사고는 전체의 67.4%로 해마다 비율이 조금씩 줄어드는 반면, 수리비 250만 원 이상 사고는 2011년 6.8%에서 2013년에는 8.5%로 되레 증가했습니다. 고가의 고급, 외제차 비중이 늘고 있는 것과 무관하지 않은 대목입니다. 결국 중소형 차주의 부담을 가중시키는 자기부담금 제도의 모순을 고치지 않으면 형평성 논란은 더욱 커질 전망입니다.

그렇다면 현행 자기부담금 제도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요?  예전에는 자차 수리를 할 경우 5만원만 차주가 부담하면 됐는데, 어느 순간부터 이렇게 자기부담금이 커지게 된 걸까요? 2009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자동차 종합보험을 취급하는 손해보험사의 영업적자가 2009년 1조5천억 원에 달해 더 이상 영업이 불가능하다고 하자 국토부와 금융위 등 관련 정부 부처와 업계가 모여서 영업적자를 줄이는 방안을 모색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2011년부터 차주의 부담을 늘린 새 자기부담금제가 시행된 겁니다.  이 제도가 시행되고 나서 무분별한 자차 수리가 줄어든 건 사실입니다.  손해보험사의 자동차 보험 부문 영업적자도 1조5천억 원에서 5~6천억 원대로 뚝 떨어졌습니다.  하지만 보험사의 적자 구조를 매워주기 위해 서민들의 호주머니 사정은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자차 수리비가 260만 원 나온 이모씨의 경우,  자기부담금 50만원을 부담하고도 수리비가 2백만원을 넘기 때문에 3년간 보험료 할증을 각오해야 합니다.   이를 막으려면 이씨는 10만원을 자비로 추가 부담해야 합니다.  이럴 경우 총 수리비 260만원 가운데 60만원이 이씨의 부담이 됩니다.  보험을 왜 들었는지 곱씹어봐야 하는 대목입니다.

최근 자동차 정비업계가 자기부담금 제도를 개선해 달라고 금융당국과 손해보험업계에 요청을 했습니다.  차주가 부담하는 자기부담금을 보험사가 아닌 정비업계가 직접 받도록 되어 있다 보니 부담금을 둘러싸고 차주와의 마찰이 끊이지 않는다는 겁니다.  또 정비업계는 정당하게 받아야할 수리비를 받지 못하는 사례가 많다고 주장합니다.  실제로 보험사는 전체 자차 수리비 가운데 부품값 등을 뺀 나머지 공임을 정비업체에 지급하는데 자기부담금을 제외한 금액만 줍니다.  결국 자기부담금을 받지 못하면 정비업체는 일부 공임을 못 받는 셈이 됩니다.  또 다른 문제는 많은 정비업체들이 자차 수리비가 많이 나오는 차량에 대해서는 자기부담금을 깎아주거나 아예 면제해주고 있는 반면 수리비가 적게 나오면 악착같이 받으려 한다는 겁니다.  한 정비업체 관계자는 “보험사가 자기부담금 관련해 보험 가입자로부터 욕먹기 싫어서 정비업체로 책임을 전가시켰다.”며 갑의 횡포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보험사들도 할 말은 있을 겁니다.  일부 정비업체가 그동안 과잉 수리로 수리비를 부풀리는 행위를 했고, 일부 차주들은  안 고쳐도 될 차량을 고치거나 수리 대가로 정비업체로부터 뒷돈을 받는 모럴해저드가 발생했다는 겁니다.  또 사고가 나는 15%의 보험 가입자가 자기부담금을 더 내는 대신 사고가 안 나는 85%의 가입자에게는 보험료 인하 혜택을 줄 수 있다는 점을 고려했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2011년 새 자기부담금 제도를 시행하고 나서 자동차 부문 영업적자가 줄었는데도 보험사들은 자차보험료를 인하하지 않았습니다.

새 자기부담금 제도를 시행한지 3년이 흘렀습니다. 이런 부작용과 문제점들을 보완하는 작업이 시급합니다.  특히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 중소형 차주의 부담을 가중시키는 현행 할인할증 제도와 자기부담금 제도는 차종간 형평성을 고려해 보완대책을 마련해야 합니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자차 수리비가 많이 나오는 경우 차주의 자기부담금 비율을 더 늘리고, 소액 수리비의 경우 자기부담금을 면제해주거나 낮춰주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제안합니다.  특히 수리비에 따라 자기부담금 비율을 차등화하는 방안도 고려해볼만 합니다.  금융위와 금감원 등 관련 기관과 보험업계, 소비자단체, 정비업계가 지혜를 모아 자기부담금의 형평성을 높이는 방안을 하루빨리 마련할 것을 촉구합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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