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겨울 어느 날 밤, 미국 버지니아에 사는 38살의 광부 제레미야 히튼 씨는 7살짜리 딸 에밀리가 진지한 목소리로 이렇게 물어보자 “그럼, 물론이지”하고 대답했습니다. 히튼 씨는 딸의 꿈을 깨고 싶지 않아 당장 대답은 그렇게 했지만, 뭐 뾰족한 수가 있는 건 아니었습니다. 어디 가서 왕국을 세울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나라 세울 빈 땅이 있는 것도 아닌데...
그러다 ‘혹시 지구상에 아직 빈 땅이 남아 있는 건 아닐까?’하는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히튼 씨는 인터넷으로 한참 검색했습니다. ‘가만, 남극은 어떨까? 아무도 안 살잖아.’ 하지만 남극은 어떤 나라도 영토적 주권을 주장할 수 없다는 ‘남극조약’이 발목을 잡고 있었습니다. 할 수 없이 남극은 포기했습니다.
하지만 에밀리를 공주로 만들어주려면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계속 검색하다 눈에 들어온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아프리카의 이집트와 수단 사이에 주인 없는 땅으로 버려져 있는 ‘비르 타윌(Bir Tawil)’이란 황량한 사막이었습니다. ‘비르 타윌’은 면적 약 2천 제곱킬로미터로 제주도보다 조금 넓은 땅인데, 국제법상 아무도 주권을 주장하지 않는 ‘무주지(無主地)’로 남아있었습니다.
그래서 히튼 씨는 비행기를 타고 이집트로 날아간 다음, 차를 몰고 직접 이곳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에밀리의 7번째 생일이 되는 지난 6월 16일, 자녀들과 함께 디자인한 파란색 ‘국기’를 땅에 꽂고 새로운 나라의 건국을 선포했습니다. 멋지게 기념사진도 한 장 찍었습니다. 국기의 아래쪽 별 세 개는 히튼 씨의 세 아이들을 상징하는 거라고 합니다.
가족들이 상의해 결정한 국명은 이름하여 ‘북수단 왕국(Kingdom of North Sudan)’입니다. 수단의 북쪽에 있는데다, 몇 년 전에는 ‘남수단’이 수단에서 독립해 나왔으니 이번엔 ‘북수단’이 생겨도 괜찮다고 생각했을까요.
이렇게 해서 ‘북수단의 왕’이 된 히튼 씨는 공주가 되고 싶은 딸 에밀리에게 작은 왕관을 만들어 준 뒤 ‘에밀리 공주’로 서임했습니다. 에밀리의 친구들에게도 앞으로 ‘에밀리 공주’로 불러달라고 꼭꼭 부탁했습니다. 에밀리의 두 오빠, 12살짜리 저스틴과 10살 케일럽은 왕자가 됐습니다.
히튼 씨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아이들의 소망과 꿈이 실현될 수 있도록, 말 그대로 내가 지구 끝까지라도 찾아갈 것이라는 점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습니다. ‘딸바보’ 아빠의 눈물겨운 건국사(建國史)라고 해야 할까요.
그런데 요즘 같은 세상에 아무리 사막이라지만 아무도 주인이 없는 땅이 있다니,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여기엔 배경이 있습니다.
이집트와 수단의 지도를 보면 북위 22도선을 경계로 거의 직선으로 국경선이 그어져 있습니다. 양국을 식민 지배하던 영국이 1899년 만든 경계입니다. 지도 위에 자로 직선을 주욱 그은 다음 북쪽은 이집트, 남쪽은 수단이란 식이었습니다.
그런데 지도를 자세히 보면 두 군데에서 직선이 어긋납니다. 1902년에 영국이 고쳐 만든 경계선입니다. 이 때 옛 경계선과 새 경계선으로 둘러싸인 땅이 두 군데 나옵니다. 왼쪽의 작은 땅이 새로 ‘북수단 왕국’이 된 ‘비르 타윌’이고, 바다와 접한 오른쪽의 더 큰 땅은 ‘할라이브(Hala'ib)’입니다. 이때 비르 타윌은 이집트에, 할라이브는 수단이 관할하도록 했습니다.
문제는 영국이 물러나고 이집트와 수단이 독립한 다음 불거졌습니다. 할라이브는 비르 타윌보다 면적도 10배 이상 넓은데다 바다와 접해 있어 훨씬 가치가 높은 땅이었습니다. 이집트와 수단 모두 할라이브의 영유권을 주장하고 나서면서 이집트는 1899년의 직선 경계를, 수단은 1902년의 수정된 경계선을 주장했습니다.
두 나라 모두 할라이브는 자기 땅이고, 비르 타윌은 내 땅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셈입니다. 만약 섣불리 비르 타윌이 자기 땅이라고 주장했다가는 상대편이 주장하는 국경선이 옳다고 인정하는 셈이 됩니다. 결국 한 쪽을 얻으면 한 쪽을 버려야만 했습니다.
현재 할라이브는 수단이 실효적으로 지배 중이지만, 비르 타윌은 수십 년 넘게 주인 없는 땅으로 남은 채 가끔 사막을 떠돌아다니는 유목민 베드윈 족만 간간이 이 황량한 사막을 지날 뿐입니다.
그런데 히튼 가족의 북수단 왕국이 정말로 온전한 나라로 대접받을 수 있을까요? 히튼 씨 본인은 이 문제에 대해 진지합니다. 가장 큰 이해 당사국인 두 인접국, 이집트와 수단과 교섭하는 것은 물론, 왕국 건설에 대한 지원을 위해 아프리카 국가들의 협의체인 아프리카연합(AU)와 접촉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또 ‘세계의 여러 배고픈 사람들을 돕고 싶다’는 아이들의 소망에 따라 혁신적 농업 생산과 재생 에너지가 주축이 되는 나라를 만들 계획이라고 합니다. 또 ‘어떤 나라 정부의 간섭으로부터도 자유로운 정보 공유의 장’으로 만들겠다는 청사진도 내놨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초미니 왕국’을 세우는 것은 영미권에서는 그리 드문 일이 아닙니다. 현실적으로 국제사회의 승인을 받지 못하는 이런 초미니 국가들을 ‘초소형국민체(micronation)’이라고 부르는데, 세계적으로 이미 몇 개의 초소형국민체가 독자적인 주권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영국해협 앞바다에 세워진 작은 인공요새를 탈취해 독립국이라고 주장하는 ‘시랜드 공국(Principality of Sealand)'이나, 호주 서부의 한 농부가 세금 문제로 연방 정부와 마찰을 빚다 홧김에 일가족을 이끌고 자신의 농장을 국가로 선언해 버린 ‘헛리버 공국(Principality of Hutt River)’ 등이 대표적입니다.
호주 출신 청년 세 명이 자기네 집을 나라로 선포해 만든, 이름만은 세계적으로 거창한 ‘아틀란티움 제국’도 있습니다. 이들 국가에 놀러 가면 ‘국왕’이나 ‘공작’이 입장권도 팔고, 친히 관광객들을 안내해 준다고 합니다.
무슨 아이들 장난 같은 짓이냐고 볼 수도 있지만, 이들 초소형국민체의 ‘왕’이나 ‘공작’들은 나름대로 진지합니다. 시랜드 공국의 경우 쳐들어 온 영국 해군에 맞서 총을 난사하며 격렬히 저항하기도 했고, 심지어 헛리버 공국 같은 경우는 호주 정부와 외교관계를 맺고 있을 정돕니다. 물론 그 밖의 다른 나라에서는 인정하지 않습니다.
이런 초소형국민체들은 주로 영미권의 국가들에서 많이 보입니다. 반면 동아시아 지역에서는 거의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일부에서는 국민이 국가에 종속돼 있다기보다 양자가 일종의 계약관계를 맺고 있다고 보는 사회계약론의 전통이 강한 영미권의 문화와, 아직까지 귀족 작위가 사회적으로 인정되는 영국 사회의 분위기가 이런 초소형국민체의 건설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보기도 합니다.
다시 북수단 왕국으로 돌아가 끝맺겠습니다. 딸을 위해 새 나라를 세운 히튼 씨는 낭만적인 동화의 문을 열고 나와 이제 현실적인 어려움과 맞닥뜨리고 있습니다. 국제사회의 인정을 받기란 쉽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자원이나 이권을 노리는 외부 세력이 개입할 여지도 있습니다.
하지만 히튼 씨는 끝까지 처음 나라를 세울 때의 마음을 잃지 않겠다는 생각입니다. 다이아몬드를 캐거나 석유를 시추할 계획 같은 건 처음부터 없었답니다. 아이들을 위해 세운 나라이니, 아이들의 뜻대로 인종이나 피부색에 관계없이 모든 세계 어린이들을 돕고 싶다는 목적으로 나라를 꾸려가고 싶다고 말합니다.
멋진 딸바보 아빠의 고군분투 건국 이야기가 동화책처럼 ‘그 뒤로도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로 끝맺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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