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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멀쩡한 집 뜯어고치는데 한 해 5조 낭비

[월드리포트] 멀쩡한 집 뜯어고치는데 한 해 5조 낭비
중국 베이징에서 거주하는 집에 요즘 난리가 났습니다.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드릴과 망치 소리로 요란합니다. 사실 소리는 문제가 아닙니다. '드르르륵' 하는 괴성에 맞춰 온 집이 마구 떨립니다. 오후 5시 넘어 소리가 멎어도 두개골 속의 뇌는 계속 진동하며 두통을 일으킵니다.

한국에서도 이런 일을 겪습니다. 다만 대부분 일주일을 넘기지 않습니다. 일주일만 참아야지 하다가 최근 안내문을 보고 경악했습니다. 아파트 관리사무소가 엘리베이터에 붙여놓은 안내문의 내용인즉 9월 2일까지 공사가 계속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거의 두 달 가까이 이런 아사리판에서  살아야 합니다. 말이 내부 공사지 사실상 집을 새로 짓나 봅니다.

그런데 베이징에서 이런 일은 저만 겪는 것이 아닙니다. 원래 여름방학 철에는 중국 대부분의 대도시가 인테리어 공사 소음으로 시끄럽다고 합니다. 여름휴가를 이용해 집수리와 이사를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자녀들의 전학 문제도 방학 기간 동안 해결해야 유리합니다. 그러니 이때 이사가 많고 새로 입주하기 전에 집을 고치는 것입니다.

문제는 단순히 벽지를 새로 바르고, 페인트를 칠하고, 장판을 까는 수준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아예 구조를 바꾸는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벽을 부숴 문을 내고, 방을 늘리고, 주방과 화장실 시설을 다 뜯어낸 뒤 새로 놓습니다. 집을 거의 새로 짓는 수준입니다. 그러니 소음이 어마어마합니다.

문제는 오래되고 낡은 집만 내부 수리를 하는 게 아니라는 점입니다. 인테리어를 한 지 2~3년도 안된 집도 으레 뜯어고칩니다. 심지어 지금 막 새로 지어 분양한 아파트나 빌라도 상당수는 내부 장식을 모두 바꿉니다.

현지 언론이 한 인테리어 업체를 상대로 취재한 내용입니다.

-요즘 일이 많습니까?
"지난 6월부터 모든 직원이 단 하루도 쉬지 못하고 작업을 벌이고 있습니다. 우리 회사 내 모든 팀이 총동원된 상태입니다."
-6월부터 지금까지 공사를 몇 군데에서 했나요?
"한 100군데 했죠."
-대부분 신축 아파트의 내부 장식을 새로 하는 것이죠?
"그런 것도 있지만 3분의 1은 이미 돼있는 인테리어를 뜯어내고 새로 고치는 수요죠."
-그런 경우 신축 아파트에서 작업하는 것보다 비용이 비싸죠?
"물론이죠. 한 2~3만 위안(약 3~5백만 원)쯤 더 들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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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관계 당국이 조사한 결과 지난해 한 해 동안 이렇게 멀쩡한 내부 장식을 뜯어고치느라 낭비된 비용이 3백억 위안, 우리 돈 5조 원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중국은 청소년 기금으로 도시 근교 빈민가나 시골에 학교를 지어주는 '희망학교' 건축 사업을 벌이고 있습니다. 이런 '희망학교' 하나를 짓는데 50만 위안, 8천 1백만 원 넘게 들어갑니다. 내부 장식으로 낭비되는 돈이 '희망학교' 60만개를 세울 수 있는 액수에 필적한다고 중국 언론들은 개탄합니다. 어마어마한 돈이 집의 내부 장식을 새로 바꾸는데 들어가고 있습니다.

중국인들도 돈이 남아돌아 갖다 버리는 것도 아닐 테고 왜 이런 낭비를 할까요? 중국 언론들이 분석한 이유를 소개합니다.

① 모델하우스와 달라도 너무 달라요.

원래 중국의 아파트는 대부분 내부 장식을 전혀 하지 않은 채 분양합니다. 아파트의 통합 이용시설을 마련하고 골조에 전력과 각종 관을 설치한 뒤 시멘트를 발라놓은 상태로 입주자에게 넘깁니다. 그러면 입주자는 내부 장식은 물론 난방 시설까지 스스로 준비합니다.

그런데 최근 중국에서도 이른바 '풀 옵션' 아파트가 늘고 있습니다. 바쁜 젊은이들이 스스로 인테리어를 할 시간을 내기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아파트 개발업자가 일괄적으로 인테리어를 하면 대량 구매가 가능하고 한꺼번에 공사를 할 수 있어 단가도 떨어집니다.

문제는 이런 '풀 옵션' 아파트의 모델하우스가 실제와 달라도 너무 다르다는 점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왕왕 겪는 일입니다만, 모델하우스에 낚이는 경우입니다. 모델하우스에는 각종 주방 시설과 화장실 시설을 해외 유명업체의 명품들로 설치합니다. 지붕도 높습니다. 원래 있어야 할 문을 없애 방이 한층 넓어 보입니다.
그런데 막상 입주하려고 가 본 '내 집'은 전혀 다릅니다. 각종 설비는 무늬만 해외 명품입니다. 천장은 훨씬 낮습니다. 심지어 키가 1미터 80센티미터 이상이면 욕조 안에서 일어서는 것이 불가능한 경우도 있습니다. 집 구조마저 다릅니다. 동선에 대한 연구를 했나 싶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렇게 모델하우스와 심하게 차이가 날 경우 하자보수를 요구하거나 민사소송을 걸어 배상받습니다. 중국은 아직까지 그런 법 규정이나 제도가 없습니다. 울며 겨자 먹기로 스스로 고쳐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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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관련 규제가 이상해요.

경직적인 법 규제도 문제로 지적됩니다. 중국은 지역 정부마다 '풀 옵션' 아파트에 대해 강제적으로 지켜야 하는 표준을 마련해놨습니다. 본래 목적은 입주자를 보호하기 위해서겠죠. 그런데 이런 규제가 오히려 발목을 잡습니다.

지역마다 차이가 있지만 상당수는 창과 문의 양식, 도배지 성능, 스위치나 콘센트의 갯수, 조명기구의 밝기부터 하수 관로의 굵기, 방수 성능까지 일일이 규정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규정들이 현실과 동떨어진 경우가 많습니다.

방에는 콘센트가 남아돌지만 거실에는 모자라 쩔쩔 매야 합니다. 나는 안온하면서 은은한 분위기의 조명을 원하는데 부동산 개발업자는 규정 탓에 이런 요구를 전혀 반영할 수 없습니다. 하수관의 굵기는 규정했지만 품질은 규제하지 않아 지어진지 얼마 지나지 않아 새는 일이 다반사입니다.

부동산 개발업자들은 변화하는 고객의 요구에 맞추고 싶지만 그럴 경우 준공검사를 받지 못할 가능성이 십중팔구라고 호소합니다. 양보다 질로 승부하고 싶지만 규정 탓에 어쩔 수 없다는 변명도 합니다.

③ 개성이 없어요.

같은 유교 전통을 배경으로 하면서도 중국인은 우리보다 개성을 더욱 중시합니다. 비교적 남과 비슷하게 꾸며놓기를 바라는 우리와 달리 중국인들은 나만의 개성을 반영해서 인테리어 하기를 바랍니다.

그러다보니 남이 살던 집을 사서 입주하거나 월셋집을 새로 구하면 내 취향에 맞춰 내부 장식을 바꾸려 합니다. 낡아서 수리가 필요한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말 그대로 취향의 문제입니다.

특히 부동산 개발업자가 한꺼번에 인테리어를 한 아파트의 모습에 중국인들은 질색합니다. 옆 집, 앞 집, 윗 집과 똑같은 모습이라니 참을 수가 없습니다.

새 아파트를 고치는 대부분의 이유가 여기에 해당됩니다.

④ 고쳐서 비싸게 세를 놓아요.

서울도 그렇습니다만, 베이징을 비롯한 중국의 대도시 집값은 일반 서민들에게 도달 불가능한 수준에 올라섰습니다. 어쩔 수없이 월세를 구합니다. 매년 월셋값은 빠르게 뛰고 있습니다. 집주인들은 그냥 올리기에 눈치 보이니 수리를 합니다. 세입자들도 이런 분위기 탓인지 그냥 입주하는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반드시 이런저런 수리를 요구합니다.

1년 반 전 베이징에서 집을 구하는 과정에 별다른 수리를 요구하지 않자 집주인이 살짝 놀라는 표정을 짓던 기억이 납니다. 오히려 흠집이 많은 마룻바닥을 수리하지 않아 미안하다며 거듭 사과하더군요. 그때는 '왜 이러나' 싶었지만 지금에서야 이해가 갑니다.

하지만 멀쩡한 집을 수리해 월세를 올리고 있는 현재의 추세는 악순환인것이 분명해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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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여름은 베이징의 더위와 공사 소음의 이중고에 시달려야하나 봅니다.
그나마 위안인 것은 공사 인부들이 시간만큼은 칼같이 지킨다는 점입니다. 정확히 오전 9시에 울리기 시작하는 드릴 소리는 낮 12시에 멈춥니다. 점심시간 뒤 다시 오후 2시 정각에 시작돼 5시면 끝납니다. 주말에는 공사하지 않습니다. 조용합니다.

아침 일찍 출근해 저녁 늦게 들어오는 저는 사실 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저 방학이라 학교에도 가지 않고 집에서 지내야 하는 아이들과 이들을 보살피는 아내만 죽어납니다.

중국이 집수리와 관련해 좀 더 합리적인 관행을 만들어내기만 기대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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