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권을 빼앗긴 민족의 아픔과 나라 사랑하는 마음이 배어있는 애국가. 한국인의 심금을 울리는 애국가는 아직까지 작사자가 누구인지 공식적으로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1945년 해방 당시 임시정부가 발행한 애국가 악보에는 '실명 작사'로 표기돼 있습니다. 1955년 국사편찬위원회는 애국가의 작사자를 밝히고자 위원회를 결성하고 애국가 작사자 조사 자료를 펴냈지만, 이 자료에는 '작사자 미상'이라 명기돼 있습니다.
그동안 애국가 작사자 리스트에는 윤치호, 안창호, 김인식, 최병헌, 민영환 등이 이름을 올렸습니다. 이 가운데 윤치호설과 안창호설이 가장 유력하게 거론됐습니다. 국사편찬위에서는 11대 2로 윤치호 단독 작사설이 유력했으나, 만장일치가 아니라는 이유로 작사자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윤치호가 작사자라는 설을 뒷받침하는 자료는 많습니다. 1908년 발행된 찬미가, 1910년 미주지역의 신한민보라는 교민 신문에 실린 국민가, 1931년 세계명작 가곡집-무궁화 등이 있습니다. 반면 안창호라는 설에 대해서는 몇몇 사람들의 증언과 정황 정도만이 근거로 제시됐습니다.
애국가 작사자가 윤치호라고 주장하는 전문가들은 1955년 국사편찬위가 친일파로 규정된 윤치호를 애국가 작사자로 공인하지 않기 위해 일부러 결정을 회피했다고 말합니다. 애국가는 임시정부가 공식적으로 국가로 삼았고 현대사의 주요 국면에서 나라를 대표하는 노래로 불려왔는데, 작곡자가 친일파인 안익태에 작사자도 친일파 윤치호라는 것이 확인되면, 당장 국가를 바꾸자는 주장이 대두될 것을 우려했다는 것입니다.
한때 애국계몽운동에 앞장선 구한말 최고의 지식인이자 105인 사건으로 옥고를 치른 민족지도자였던 그는 전향을 조건으로 석방됐고, 석방 이후 친일파로 변모했습니다.
일각에서는 친일파로 비난을 받던 윤치호가 애국가의 작사자가 자신이라는 것을 숨기려 했다는 주장을 제기합니다. 지난 2월에는 미국 에모리 대학교 도서관에서 윤치호가 1945년 9월 친필로 써서 자손에게 남긴 애국가가 발견되기도 했습니다. 이를 두고 해방 정국 친일행위에 대한 심판과 처단 분위기에 위기감을 느낀 윤치호 일가가 애국가 작사로 면죄부를 받으려 했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이번 주 '그것이 알고 싶다'는 애국가 작사자가 아직까지 미상인 채로 남아 있는 배경을 추적합니다.
(SBS 뉴미디어부)
[그것이 알고싶다] 누가 썼는가? 애국가 작사 미스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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