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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소년 영웅' 대대적 띄우기로 中 달라질까

[월드리포트] '소년 영웅' 대대적 띄우기로 中 달라질까
중국에 소년 영웅들이 탄생했습니다. 올해 17살로 우리로 치면 고3 수험생들입니다. 이들에 대한 중국 사회의 박수와 환호는 거의 신드롬 수준입니다. '옛 중국의 진정한 의협심을 되살렸다'며 이구동성으로 찬사를 보내고 있습니다. 단순히 칭찬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두 명은 거의 인생이 바뀌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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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소년을 영웅으로 만든 것은 장시성 이춘시에서 일어난 한 사건이었습니다.

이들은 5월31일 오후 2시 반 이춘시의 시내버스를 타고 가던 길이었습니다. 늦봄 오후의 나른했던 분위기는 한 남성이 갑자기 흉기를 꺼내들고 주변 승객들을 공격하면서 무참히 깨졌습니다. 이른바 '묻지마 칼부림'이었습니다.

버스 기사는 승객들을 대피시키기 위해 급히 갓길에 차를 세우고 버스 문을 열었습니다. 하지만 범인이 문 앞을 가로 막고 있어 큰 인명피해를 낼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 때 버스 뒷자리에 앉아 있던 이정융 군과 류옌빙 군이 벼락같이 뛰어나왔습니다. 그리고 칼춤을 추는 범인에게 달려들었습니다.

이성을 잃고 마구 칼질을 하는 범인에게 맨손으로 대항한 것은 사실 무모했습니다. 실제 이들은 모두 큰 부상을 입었습니다. 이 군은 온몸 곳곳에 자상과 골절상을 입었습니다. 류 군은 머리와 등을 칼에 찔렸습니다. 그런데도 이들은 용감하게 범인으로부터 칼을 뺏었고 범인은 차에서 내려 허겁지겁 달아났습니다.

이 '묻지마 칼부림'으로 5명이 다쳤지만 다행히 생명을 잃은 사람은 없었습니다. 이들 덕분에 대형 참사를 피한 것입니다.

크게 다친 이 군과 류 군은 이춘시 인민병원으로 후송됐습니다. 이 군은 오른 쪽 갈비뼈가 부러지고 왼손의 힘줄이 끊어졌습니다. 류 군의 경우 두개골에 금이 갔습니다. 칼이 조금만 더 깊이 머리를 파고들었다면 생명을 잃을 뻔 했습니다.

이들은 중상을 치료하느라 지난달 7일부터 시작된 가오카오, 중국판 수능에 참석하지 못했습니다. 대학 입시에 응해볼 기회가 날아간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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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의 용감한 행동은 중국 언론에 대서특필 됐습니다. CCTV를 비롯해 중국의 대부분 방송이 버스 내 폐쇄회로 화면을 통해 이들의 활약상을 반복해서 전했습니다.

중국의 대표적 관영매체인 인민일보는 1면 중앙에 이들이 치료 받는 모습을 촬영한 사진을 실었습니다. 대학 입시를 목전에 둬 그 누구보다 몸을 사릴 수밖에 없는 처지에 오히려 목숨을 던져 다른 사람을 구했다며 찬사를 보냈습니다.

장시성 정부와 공안, 교육 당국의 고위 간부들이 줄줄이 이들을 위로하러 찾아왔습니다. 각계각층에서 위문 글과 금품을 전했습니다.

뿐만 아니었습니다. 더욱 극적인 인생역전이 이들을 찾아왔습니다. 중국 교육부가 이들에게 완전히 치료를 받은 뒤 가오카오를 따로 치를 수 있는 특전을 베풀었습니다. 영어 듣기 시험은 면제해줬습니다.

사실 그조차도 필요 없었습니다. 칭화대를 비롯해 중국의 명문 대학들이 이들에게 특별 전형으로 입학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겠다고 나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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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최근 무사히 중국판 수능, 가오카오를 치렀고 모두 지역의 명문 대학에 입학 허가를 받았습니다. 이 군은 장시 경제대학에, 류 군은 난창 대학에서 학비 전액을 면제 받을 뿐 아니라 졸업할 때까지 생활비를 보조받게 됐습니다.

이춘시의 용감한 시민상도 받았습니다. 한 달 넘게 이들의 일거수일투족은 매일 언론 지면을 장식했습니다. 일약 장시성 최고의 유명인이 됐습니다.

이들의 행동은 물론 대단했습니다. 찬사를 받아 마땅합니다. 그럼에도 중국 사회가 조금 호들갑스럽다는 느낌도 없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면 중국의 이런 반응이 이해됩니다. 아시다시피 중국은 극도의 개인주의 풍조에 개탄하고 있습니다. 부관셴스(不關閑事), 즉 '남의 일에 절대 관여하지 마라'는 경구는 금과옥조로 여겨집니다.

이런 사회 분위기를 두 소년 영웅을 앞세워 바꿔보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돕는데 나서는 것은 '손해'만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행운'을, 그것도 엄청난 이익을 볼 수 있다는 사실을 각인시키려는 것입니다.

고대 중국의 사상가 한비자는 '신상필벌'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이런 고사를 들었습니다.

"월나라 왕이 오나라를 공격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백성들이 목숨을 걸고 용감하게 싸울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핵심 참모에게 물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되겠냐고. 그 참모는 궁궐에 불을 지른 뒤 목숨을 던져 불을 끄는 사람에게는 큰 상을 내리고 몸을 피하는 사람에게는 엄한 벌을 내리라 충고했습니다. 월 왕은 이를 실행에 옮겼습니다. 이후 궁궐에 불이 나자 한 명도 빠짐없이 불을 끄기 위해 목숨을 걸고 나섰습니다. 월 왕은 전쟁에서 자신의 생명을 걸고 싸우면 큰 상을 내리고 살기 위해 후퇴하는 자는 엄벌을 내리겠다고 천명했습니다. 월나라의 군대는 모두 목숨을 걸고 싸워 오나라를 이길 수 있었습니다."

한비자의 후손답게 중국은 최근 의협심을 발휘하는 영웅들을 추켜세우고 큰 상을 내리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을 도운 사례는 크든 작든 대대적으로 보도합니다. 이들에게 상과 함께 많은 특혜를 부여합니다.

고대 한비자의 비책이 정말 통할까요? 앞으로는 중국인들이 ‘부관셴스’ 대신 위험을 무릅쓰고 다른 사람을 돕고 나설지 두고 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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