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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주민 참여가 바꾼 지역 살림

지방자치 개혁 과제 '주민참여 예산제' 성공하려면

[취재파일] 주민 참여가 바꾼 지역 살림
얼마전 새 임기를 시작한 민선 6기 지방자치는 올해 도입 20년째를 맞아 성년이 됐습니다. 하지만 우리 지방자치제도가 그만큼 성숙했다고 보기 어려운 게 현실입니다. 여전히 지방자치는 중앙정치에 예속된 측면이 강하고, 곳곳에서 터져나오는 지방의원, 지방자치단체장들의 비리에 주민들의 기대는 땅에 떨어진 지 오래입니다. 선거법 위반이나 비리로 물러난 단체장과 지방의원이 민선 5기에만 56명이나 되고, 다시 뽑는 데 373억 원의 국고가 들어갔습니다. 심지어 한 광역의원이 청부 살인 혐의로 수사를 받는 지경까지 이르렀습니다.

고쳐야할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겠지만, 성년을 맞은 민선 지방자치의 개혁 과제 중 일환으로 서울 은평구의 '주민참여예산제'에 주목했습니다. 주민참여예산제는 말그대로 주민이 지자체의 예산을 짜고 집행하고, 감시하는 데 적극 관여하는 제도를 말합니다. 대다수 지방자치단체가 도입했지만 제대로 운영되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은평구의 주민참여예산제는 학계에서도 모범적인 사례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2010년 '주민참여예산제'를 조례로 만들고 2011년 전국에서 처음으로 주민이 제안한 사업을 '투표'로 정하는 등 이 분야에서만큼은 여느 지자체보다 발빠른 행보를 보이고 있습니다.

은평구에는 지난 1월 소형 제설장비 1대를 3천500만원을 주고 구입했습니다. 대형 제설장비가 올라가기 어려운 주택가 좁은 골목길 제설을 위한 건데, 2013년 주민투표 1위 사업이었습니다. 2012년에는 불광천변 화장실이 주민투표 1위를 차지했습니다. 평소 산책길로 많은 주민이 이용하는 불광천 변에 화장실이 없어 주민들이 불편을 겪었는데 화장실 건립 후 이런 불편이 해소됐습니다. 두 사업 모두 주민들이 제안한 것으로, 공무원끼리 모여앉아 예산을 편성했다면 채택되기 어려운 사업들이었습니다.

은평구 내에는 공무원 조직과 별도로 주민참여위원회를 두고 있습니다. 산하에 참여예산시민위원회를 두고 자치행정, 문화경제, 노인여성, 장애인 등 분과를 두고 있습니다. 또 동별로도 지역회의체를 만들었습니다. 이 지역협의체가 동별로 2~3개씩의 사업을 제안하면 1년에 한번씩 주민 총회를 열어 어떤 사업을 우선 시행할지 투표를 합니다. 2011년 첫 투표를 했고, 2012년에는 모바일 투표를 도입해 참여율을 높였습니다. 투표를 하는 주민 투표일은 주민들이 모여 사업 경쟁을 벌이는 축제의 장이 되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어디에 어떤 게 필요한지 가장 잘 아는 주민들이 직접 사업을 제안하니 호응도도 높다고 합니다. 과거 자치단체가 독자적으로 예산을 편성할 때는 지역 토호 세력의 입김에 휘둘리기 쉬웠지만, 이런 폐해를 줄일 수 있다는 게 장점입니다.

주민의 참여는 제안에만 머물지 않고 불필요하거나 급하지 않은 예산을 줄이는 역할도 합니다. 지난해 은평구가 추진하려던 역촌동 주민센터 리모델링 사업에는 애초 4억3천만원이 책정됐지만, 당장 주민이 이용하는 데 불편함이 없다는 주민 의견에 따라 전액 삭감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주민들의 의견을 반영해 불필요하거나 급하지 않은 예산을 삭감한 액수가 2011년부터 지난해까지 250억원에 달한다고 은평구청은 설명했습니다.

주민참여예산제가 성공적으로 정착되는 데에는 장애물도 많습니다. 주민 참여로 절차가 복잡해지고 업무가 가중된다는 공무원의 불만이 있을 수 있고, 직능단체나 통장들만 참여하는 반쪽 제도로 전락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또 예산을 심의할 수 있는 고유 권한을 지닌 지방의회의 권한을 침해할 수 있다는 점도 장애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이 모든 장애물을 뛰어넘으려면 무엇보다 단체장의 의지가 중요합니다. 황도연 은평구 참여예산위원장은 "자치단체장이 참여예산제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갖고 주민들을 믿고 전폭적으로 지지해줘야 제도가 정착할 수 있다"고 조언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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