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르드 족은 '중동의 집시'라고도 불립니다. 터키와 이라크, 시리아, 이란 등지에 흩어져 살고 있습니다. 전체 인구는 얼마나 되는 지 분명치 않지만 대략 2,500만명에서 3,000만명 정도로 보고 있습니다. 일부 자료는 3,800만명 또는 최대 4,000만명이 된다고 보기도 합니다. CIA의 WORLD FACTBOOK에 따르면 터키(인구 약 8,180만명) 인구 중 18%, 이라크(약 3,260만명) 인구의 15-20%, 이란(약 8,080만명) 인구의 10%라고 돼 있습니다. 이밖에 시리아(약 1,800만명)에서 9.7%의 여러 소수 민족 중 하나로 표기돼 있고, 아르메니아(약 306만명) 인구 중 1.1%가 쿠르드 족 계열이라고 명시돼 있습니다. 이 자료를 대략 계산해 보면 3,000만명 전후가 됩니다. 다른 지역에 흩어진 쿠르드 족 까지 합치면 아마 그 이상이라는 추정이 가능합니다.
쿠르드 족은 원래 터키 동부와 이라크 북부 지역 등지를 중심으로 살아온 산악 민족입니다. 역사에 여러 차례 등장하지만 근세 들어 공식적으로 독립한 적은 없습니다. 1차 대전 이후 윌슨 미국 대통령의 민족자결주의 원칙에 힘입어 잠깐 독립 기대감이 있었지만 터키 아타 튀르크 정권에 밀려 무산됐습니다. 이후 쿠르드 족은 각 나라로 갈렸습니다. 그래서 그 나라 안에서 독립을 요구하거나 자치권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인물이 압둘라 오잘란입니다. 터키에 있는 쿠르드 노동자당의 지도자입니다. 반정부활동을 하다 1999년 체포됐습니다. 아직도 수감돼 있지만 그래도 쿠르드 족의 상징으로 남아 있습니다.
쿠르드 족은 이라크에서도 여러 차례 탄압을 받았습니다. 1988년에는 후세인이 독가스를 사용해 쿠르드 족의 한 마을 주민 5천여명을 집단 학살한 일도 있습니다. 이 사건은 결국 후세인 몰락의 원인이 됐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나마 이라크에서는 북부 지역을 중심으로 2005년 쿠르드 자치 정부가 설립됐습니다. 그런데 이라크 안에서도 쿠르드 족에 대한 이미지는 좋지 않습니다. 제가 2003년 이라크 전쟁 당시 바그다드에 갔었는 데요, 당시 취재팀의 가이드는 바그다드 대학생이었습니다. 아버지가 바그다드 대학교 교수였는 데 어머니가 쿠르드 족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가이드는 어머니가 쿠르드 족인 데도 "쿠르드는 믿을 수 없고, 더럽다"라고 표현 하더군요. 어머니인 데도 그러냐고 물으니 그건 별개이지만 여하튼 자기는 쿠르드 족을 싫어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아마도 이라크인들에게 쿠르드 족이 그리 좋은 인상을 주지는 못한 것 같습니다. '중동의 집시'라는 표현이 있을 정도로 떠돌아다녀야 했던 민족의 비극이기도 하겠지만 아마도 주변국에서도 그리 환영받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비극적 역사 속에서 최근 들어 쿠르드 족에게는 긍정적인 흐름이 보이고 있습니다. 먼저 이라크 내부의 문제입니다. 이슬람 국가를 표방하는 IS가 세력을 넓히고 있습니다. 후세인 사후 시아파가 집권하면서 수니파가 상대적으로 홀대를 받았고, 그 반발로 IS가 일부 지역을 중심으로 지지를 받고 있습니다. 중앙 정부는 IS를 견제하기 위해, IS는 중앙 정부를 무너뜨리기 위해 북부의 쿠르드 자치정부의 협력이 절실합니다. 6월에는 미국의 케리 국무장관이 수도인 아르빌을 방문해 쿠르드 자치정부에 이라크 안정을 위해 협력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협력의 대가로 더 많은 권한을 이양받도록 해 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만큼 국제 사회에서도 인정받기 시작한 것입니다.
시리아에서는 내전이 지속되는 가운데 쿠르드 자치정권을 세우자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아직 이런 움직임에 대해 국제 사회는 물론이고, 같은 쿠르드 족 안에서도 비판적인 목소리가 높습니다. 비극적인 내전 상황에 의존하는 것은 명분상 그리 좋아 보이지는 않습니다.
쿠르드 족을 오랫동안 탄압해 온 터키 정부에서도 조금씩 다른 분위기가 느껴지고 있습니다. 8월 대선을 앞두고 에르도안 총리가 쿠르드 족에 유화 제스처를 보내고 있습니다. 쿠르드 족에 대해 평화를 위한 교섭을 다시 시작하자는 것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터키 인구의 18%를 차지하는 쿠르드 족이 반대하면 대선에 큰 지장이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AP 통신에 따르면 이런 제안에 대해 수감돼 있는 오잘란도 "역사적인 진전"이라며 긍정적으로 평가했습니다. 앞으로 추이를 지켜봐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데 1차 대전 이후로만 따져도 백년 가까운 갈등이 쉽게 해결될 수 있을까요? 쿠르드 족이라지만 너무 오랫동안 떨어져 살다 보니 서로 공통점 보다는 이질감이 더 많은 경우가 생겼습니다. 종교도 각각이고, 심지어 언어도 다양하게 갈렸습니다. 이라크만 해도 북부 지역의 자치정부가 하나로 통일되지 못하는 실정입니다.
여기에 더 큰 문제는 지정학적 요소입니다. 이라크 북부지역은 세계적인 유전지대입니다. 그야말로 석유 위에 떠 있다는 표현이 나올 정도인 데요, 그래서 쿠르드 자치정부가 힘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반면 이라크 정부가 이런 거대한 석유 이권을 쉽게 넘겨주리라고 기대한다면 지나치게 나이브한 판단이겠지요?
여기에 수십년간 독립 투쟁을 하는 과정에서 생긴 앙금도 풀어야 할 숙제입니다. 쿠르드 족 내부에서도, 각국 국민들과도 갈라지고 원수가 되기도 했습니다. 쿠르드 족으로서는 우리야말로 가장 큰 피해자라고 주장하겠지만 그들의 손에 죽은 다른 희생자들도 분명히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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