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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나 다시 돌아갈래!" 부패 공직자의 절규

[월드리포트] "나 다시 돌아갈래!" 부패 공직자의 절규
이창동 감독의 영화 ‘박하사탕’은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가슴을 저릿하게 만듭니다. 극중 주인공은 첫 장면에서 오랜만에 모인 옛 공장 동료들의 나들이를 망쳐놓습니다. 그리고 철로 위에서 자신에게 달려오는 기차를 향해 외칩니다. “나 다시 돌아갈래!”

이후 영화는 역순으로 과거를 거스르며 주인공이 밟아온 삶의 궤적을 들여다봅니다. 결과를 미리 아는 채 그 원인이 되는 사건에서 주인공의 잘못된 선택을 지켜봅니다. 그래서 더 마음이 아픕니다. 어쩌다 타락의 길로 걸어 들어가게 되는지, 원래는 얼마나 순수하고 아름다운 청년이었는지 알게 되면서 심중에는 스산한 바람이 붑니다.

최근 중국에서 화제가 된 한 부패 공직자의 인생유전은 영화 ‘박하사탕’을 떠올리게 합니다. 높은 이상과 각고의 노력을 앞세워 약관의 나이에 국유 기업의 부사장에까지 올랐던 한 남자가 타락하고 비참한 행로를 밟는 모습이 사뭇 영화 속 주인공을 닮았기 때문입니다.

이 남성의 삶을 그래서 ‘박하사탕’ 식으로 풀어보겠습니다.

2014년 7월 : 비참한 결말

올 41세인 황화(가명)씨는 판결을 듣기 위해 법정에 섰습니다. 혐의는 공금 횡령입니다.

황 씨는 이미 모든 혐의 사실을 인정했습니다. 장기 실형 선고를 피할 수 없어 보였습니다. 하지만 고통스러웠던 도피 생활이 끝나 오히려 홀가분했습니다.

“피고인 황화 씨에게 징역 10년에 벌금 10만 위안을 선고합니다.” 판사의 선고를 듣는 순간 황 씨의 얼굴은 쏟아지는 눈물로 뒤덮였습니다.

“죄 값을 치르고 새로 시작하고 싶습니다. 제가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너무나 후회됩니다. 다시 시작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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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0월 : 도피 생활 11년 만의 체포


황 씨는 돈이 절실했습니다. 더 이상 이렇게 살 수 없었습니다. 새로운 사업을 위한 자금을 구하기 위해 자신이 과거에 돈을 꿔줬던 친구의 식당을 찾아갔습니다.

황 씨를 본 친구는 얼굴부터 구겼습니다. 돈을 갚을 생각이 전혀 없어보였습니다. 두 사람은 옥신각신 했습니다.

그 순간 황 씨는 친구가 한 눈을 파는 사이에 계산대에서 몰래 돈을 집어 달아나는 한 사람을 발견했습니다. 황 씨는 즉시 도둑을 쫓았습니다. 다행히 친구와 함께 그 도둑을 잡았습니다.

하지만 생각지 않았던 일이 벌어졌습니다. 황 씨는 상황 설명을 위해 출동한 경찰과 함께 파출소로 가야 했습니다. 그리고 신분 확인을 하는 과정에 지명수배 중인 도망자임이 드러났습니다. 황 씨는 그 자리에서 체포됐습니다.

11년간의 도피 생활이 이렇게 허무하게 끝났습니다.

2009년 초 : 무일푼의 식당 종업원으로

황 씨에게는 오랜만에 맛보는 행복이었습니다. 아내와 헤어진 뒤 새로운 사람을 만나리라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더 앞뒤 안 가렸나봅니다.

자신에게 남아있던 돈을 몽땅 투자해 여자 친구의 부모와 함께 양계장을 차렸습니다. 인생의 마지막 사업이라는 심정으로 매달렸습니다. 하지만 닭들은 전염병으로 죽어나가고 일껏 생산한 계란과 닭고기는 사료 값조차 건지기 어려운 헐값이었습니다. 1년 만에 갖고 있던 돈 5만 위안(8백여만 원)을 모두 날렸습니다.

이제는 무일푼이 됐습니다. 처음에는 잘 대해주던 여자 친구의 부모들도 점점 보는 눈길이 안 좋아졌습니다. ‘사지 멀쩡하면서 왜 직장을 구하지 않냐’는 성화가 갈수록 심해졌습니다. 여자 친구와 부모는 황 씨가 도망자 신세인 것을 몰랐습니다.

황씨는 어쩔 수 없이 여자 친구의 동생이 운영하는 식당에 종업원으로 일하기 시작했습니다. 숙식을 제공받는 조건으로 한 달 월급이 1천 위안, 우리 돈 16만 원에 불과했습니다.

황 씨는 자신의 전락이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잠들 때마다 이 악몽이 깨기를 기도했습니다. 하지만 눈을 뜨면 월급 16만 원짜리 음식점 종업원일 뿐이었습니다.

2003년 9월 : 믿었던 죽마고우의 배신

도망자 황 씨는 자신의 고향으로 스며들었습니다. 불안한 나날이었습니다. 하지만 들고 나온 40만 위안을 바탕으로 죽마고우인 고향 친구와 함께 사업을 시작할 때까지는 나름대로 자신감에 넘쳤습니다. 새 삶을 잘 꾸려나갈 수 있다는.

먼저 26만 위안을 들여 승용차를 샀습니다. 사업을 위해 기동력이 필요해서였습니다. 자신의 이름으로는 차를 살 수 없어 친구의 명의를 빌렸습니다. 그것이 화근이었습니다. 황 씨가 도망자 신세인 것을 알게 된 친구는 얼마 뒤 몰래 그 승용차를 팔아 돈을 챙겼습니다.

황 씨는 친구에게 달려갔습니다. 격렬한 언쟁을 벌였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친구를 고소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습니다. 자신은 도망자 신세였기 때문입니다.

결국 동업을 접고 자금 회수에 나섰습니다. 8~9만 위안을 겨우 건졌습니다. 속으로 천불이 났지만 어디 하소연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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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8월 : 다가오는 종말


황 씨로서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었습니다. 상급 감독 기관이 갑자기 회사의 자금 상황에 대한 감사에 착수했습니다.

황 씨는 두려움에 사로잡혔습니다. 빼돌린 공금을 메워놓을 방법이 없었습니다. 발각되는 순간 자신의 인생은 끝날 것 같았습니다.

황 씨는 결국 타락하는 김에 끝까지 가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오히려 공금 40만 위안, 우리 돈 6천5백여만 원을 추가로 빼돌렸습니다. 여러 차례 계좌를 옮겨 돈 세탁을 한 뒤 자신의 비밀 계좌로 입금했습니다. 그해 9월 황 씨는 이 돈을 들고 잠적해버렸습니다. 가족까지 버려두고. 주변 사람들은 경악했습니다. 황 씨가 그럴 줄 몰랐습니다.

그해 10월 경찰은 황 씨에 대한 조사에 나섰고 다음해 9월 공식 지명수배 했습니다.

1999년 : 약관에 거둔 성공이 덫으로

26살의 나이에 국유기업의 부사장 자리에 오른 황 씨에게 세상은 장밋빛이었습니다. 황 씨는 지역 언론에 ‘소년 등과’, ‘청년 인재’라며 오르내렸습니다. 황 씨는 일약 유명 인사가 됐습니다.

우쭐했습니다. 가슴에 바람이 잔뜩 들어갔습니다. 돈을 물 쓰듯 하기 시작했습니다. 수입이 지출을 따라가지 못했습니다.

공금에 손을 대기 시작했습니다. 회사의 재무에 있어서는 자신보다 더 잘 아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게다가 회사의 2인자였습니다. 자신을 감시하고 감독할 사람은 아예 없는 셈이었습니다.

갈수록 대담해졌습니다. 가져가는 공금의 액수가 눈덩이처럼 불어났습니다. 장부를 이리저리 조작해 횡령 사실을 감췄습니다. 황 씨에게 불안감이 없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미 깊이 빠져든 수렁에서 다시 나올 방법이 없었습니다.

1997년 : 꿈 많은 농촌 지도자

1973년생인 황화 씨는 농촌 출신입니다. 넉넉지 못한 집안 사정에도 악착 같이 공부했습니다. 중학교를 졸업한 뒤 대학에 갈 형편이 되지 않자 농업 전문학교에 진학했습니다.

그래도 황 씨에게 꿈이 가득했습니다. 중국의 농촌을 획기적으로 바꿔 더욱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겠다는 이상을 품었습니다.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와 농업 부문의 공무원으로 첫 발을 내디뎠습니다.

1997년 약혼자의 고향인 장쑤성 치둥시의 한 농공 복합 회사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그곳에서 약혼자와 결혼하고 딸도 얻었습니다.

황 씨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했습니다. 점차 인정을 받았습니다. 숫자에 대한 감각이 탁월해 재무 담당자로 발탁됐습니다. 회사도 쑥쑥 성장했습니다. 그 지역의 대표적 국유기업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황 씨는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있다는 희망으로 매일 매일이 즐거웠습니다.

중국 부패 공직자4

무엇이 꿈 많고 이상에 넘치던 한 전도유망한 청년을 망쳐놓을 것일까요? 지나친 고속 성장? 흥청망청한 사회 분위기? 허술한 제도? 신의 없는 주변 사람들?

아마도 이 모든 것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결정적인 것은 황 씨 본인의 선택이었습니다. 매순간 갈림길에서 올바름보다는 일신의 영달을 택했습니다. 한 번 잘못된 방향으로 나가기 시작하면서 되돌리기가 점점 더 힘들어졌습니다.

결과는 끝없는 타락과 삶의 고통이었습니다. 아이러니 합니다. 쉽고 편하게, 화려하게 살고 싶어 양심을 팔았는데 결국 반대로 나아가게 됐다는 사실 말입니다.

영화 ‘박하사탕’의 주인공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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