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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3천억 자산가 피살 사건…현장에 처음 간 기자가 본 당시 모습

[취재파일] 3천억 자산가 피살 사건…현장에 처음 간 기자가 본 당시 모습
"경찰, 3월 3일 강서구 XX동에서 발생한 3천 억 자산가 피살사건 주범 검거 및 구속"

"아, 잡았구나!"

쿵하고 가슴이 내려앉았습니다. 발생 넉달이 다 되어가는 시점인데다, 공공연히 ‘중국으로 빠져나갔는데 도주 경로가 파악 안된다더라’ ‘경찰이 수사하는데 벽에 부딪쳤다더라’ ‘영원히 못 잡을 확률이 높다’같은 말이 돌았던 터였기 때문입니다. ‘느닷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함께 들려온 소식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었습니다.

“피의자 팽씨 진술에 따르면 살인을 교사한 인물은 서울시의회 재선 의원 김형식(44)씨.
24일(팽씨 체포날과 같음) 아침 경찰에 긴급 체포돼 강서경찰서에서 조사받고 있음.
경찰, 김씨 체포 직후 사무실 압수수색.”

# 2014년 3월 4일 아침 7시

제가 남들보다 조금 더 각별히 이 사건에 관심을 갖게 된 건, 바로 지난 3월 4일, 이날 제게 벌어진 일 때문일 겁니다. 개인적인 이야기이긴 하지만, 이번 사건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일이라 일기처럼 써 보려 합니다.

이날 아침, 전 야근을 마친 채 귀가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기자들은 24시간 연속 근무 당직을 서며 밤샘 야근을 한 다음날엔 귀가하는, '오프(OFF)'상태가 되는데요. 3월 3일 밤이 바로 제 야근 근무날이었던 겁니다. 피곤하다는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몸상태였습니다. 어서 빨리 집에 들어가 자야지, 짐을 챙기고 있던 터에 평소 알고 지내던 사람으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이때가 바로 3월 4일 아침 7시였습니다.

"강서구 어디서 살인 사건이 일어난 모양인데, 벌써 만 24시간이 지났어. 이쯤되면 누가 죽였나, 각이 나올만 한데 전혀 아닌가 보더라고. 경찰이 많이 당황하고 있어. 죽은 사람은 머리에 뭘 맞았다나 보지? 노인이라고 하더라고."

여기까지였습니다. 언제, 어디서였는지도, 누가 살해된 건지도 알 수 없는 불완전한 이 정보를 어떻게 처리해야 하나 고민이 됐습니다. 잠을 못 자게 된 건 놔두고라도, 여기서부터 어떻게 알아봐야 하나가 문제였습니다. 경찰 쪽에 확인하자니, 용의자가 특정되지 않은 모양인데 알려줄 턱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수습기자였던) 후배 소환욱 기자가 어렵사리 수소문 끝에 3월 3일 새벽, 실제 강서구의 한 빌딩에서 60대 노인이 둔기로 머리를 다쳐 병원에 이송된 건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습니다. 주소를 알아냈으니, 반은 알아낸 셈입니다. 소 기자를 현장에 부르고 저 역시 이동했습니다.

아침 9시/

현장에 가 보니, 아침 일찍이라 주변은 쥐 죽은 듯 조용했습니다. 출근시간이 끝나가던 때라 지하철역 근처의 건물인데도 인기척 하나 느껴지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이틀 전, 살인사건이 일어났다고 믿을 수 없을 정도였던 터라 순간 '잘못 왔나' 생각이 들 때 쯤, 한 시간 먼저 도착해 있던 소환욱 기자가 건물 뒷편으로 인도했습니다. '과학수사대'라고 적힌 경찰 승합차 1대와 강력팀 경찰들이 타고 다니는 까만 승합차 1대가  주차장에 있었습니다.

"여기 맞나 보네. 경찰 많이 와 있니?"
"네, 선배. 강력팀 형사들이 분주하게 왔다갔다 하고 있습니다. 건물 세입자들한테도 무엇인가 물어보고 있길래 가까이 가서 들어보니, 주로 '죽은 XX 빌딩 주인이랑 어떤 사이였냐, 들은 소문 없냐' 같은 것들이었습니다."
"뭐? 빌딩 주인? 죽은 사람이 빌딩 주인이야?"
"네, 이 빌딩 주인이라고 합니다. 3층에 있는 본인 사무실에서 살해됐습니다."
"어? 아 이런... 건물이 이렇게 큰데, 지금 이게 통째로 건물 한 채 아니야?"
"네, 맞습니다. 거의 상가인데, 세입자만 30명 가까이 됩니다."

당시, 건물 내 화장실로 들어가 사복을 입고 탐문수사 중인 경찰들 몰래 후배와 나눈 대화는 대충 이런 내용이었습니다. 수사를 방해하면 안되기 때문에 잠시 현장에서 빠져 상황을 지켜보기로 했습니다. 1시간여 뒤, 경찰이 살해현장인 사무실 문을 굳게 걸어잠그고 이동한 뒤, 그제야 저와 후배기자는 주변인 취재를 시작했습니다. 

오전 10시/

이제 막 장사를 시작하려 가게 문을 열고 주방으로 들어가는 한 식당 주방장에게 다가갔습니다.   
"안녕하세요, SBS 류란 기자입니다. 바쁘실 텐데, 잠시."
"무슨 일이세요?"
"네, 불미스러운 일이긴 한데. 아침부터 죄송하긴 한데."

여러 생각이 들어 말을 못 꺼내고 있는데, 대뜸 그 분이 먼저 물어오셨습니다.

"여기 주인, 주인 때문에 온 거죠? 송XX 씨"
"네? 네 맞아요. 소문이 많이 나 있는 상태인가요."
"그런 건 아니고, 좋은 일 아닌데. 저희끼리도 쉬쉬하고 있지만. 경찰이 어제 저녁부터 계속 와서 묻고 갔어요.."
"아, 그랬구나. 주로 어떤 것 물었는지 여쭤도 될까요."
"뭐, 우리야 세 들어와 있는 거니까. 돈 가지고 주인이랑 싸운 적 없냐. 송씨가 평소 어떤 사람이었냐. 친하게 지냈냐. 최근에 누구랑 다투는 거 못 봤냐. 뭐 그런... CCTV 있는 지도 물어보고."
"CCTV요?"
"그게, 범인이 어느 가게 CCTV엔 찍혔나 보더라고요. 근데 얼굴을 가리고 있대. 경찰이 얼굴이 안 보인다, 그런 말도 하더라고."

빌딩 세입자들에겐 전날 저녁부터 소문이 나 있는 상태였습니다. 사건 발생이 3월 3일 새벽이었는데, 경찰이 주변 탐문수사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건 오후부터인 것 같았습니다. 세입자들은 공통적으로 '원한관계가 꽤 있었다' '돈 때문에 종종 사람들이랑 싸우는 모습을 목격했다' '그렇게 좋은 평을 듣는 사람은 아니었다' 같은 진술을 한 것으로 보였습니다. 경찰이 확인했다는 CCTV는 송씨가 살해된 사무실 바로 근처에 있는 가게 몇 군데에서 확보된 것이었습니다.

오전 11시 반/

어느 정도 개요는 취재가 됐다는 생각이 들어 캡선배에게 전화 상으로 보고했습니다. 현장엔 사복경찰이 주변 상가건물들까지 샅샅이 훑으며 탐문 수사 중이었습니다. 근처 빌딩에 있는 CCTV란 CCTV는 다 들여다 보는 모습이었습니다. 현장에서 빠져나와, 당일 피해자 이송을 맡았던 119 구급대와 강서구청, 빈소가 차려진 병원 등 취재를 시작했습니다. 구급대는 새벽 3시 반쯤 이송했는데, 피해자가 묵직한 둔기로 머리를 수십 차례 맞았으며, 현장엔 피가 흥건했고, 즉사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오후 2시/

장소 이동 중 차 안에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스마트폰으로 피해자의 이름을 검색해 봤습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서였습니다. 이름만으로 검색할 때는 몰랐는데, 강서구라는 지역과 함께 검색하자 놀라운 기사가 나왔습니다. 내용인즉슨, 피해자가 강서구에서 유명한 재력가라는 점, 과거에 각종 송사에 휘말려 법정다툼이 많았다는 것이었습니다. 2009년 사기죄로 8년형을 선고받았으나 지난 2010년 보석으로 풀려났다는 점은 법조기자의 도움으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피해자는 3천억 원대 자산가로 알려져 있을 정도로 엄청난 부자였습니다. 구청 한 관계자는 '일대 송씨 땅이 아닌 곳이 없다. 밟히는 모든 곳이 그분 소유지라고 보면 된다'라는 말까지 할 정도였습니다. 웨딩홀과 호텔, 빌딩 등 일명 '건물부자'였습니다. 한 마디로, 이 사건과 관계있을 것으로 보이는, 경찰이 용의선상에 올려놓고 한명씩 확인해야 할 사람들만도 수십, 많으면 백명이 넘어갈 상황이었습니다. 사건이 점점 커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아찔하고 걱정이 됐습니다.

경찰 관련


오후 4시 반/

경찰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SBS가 취재를 다녀갔다는데, 맞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알고 있는 것처럼 경찰은 '용의자가 특정되지 않았다. 수사에 어려움이 많다. 재력가가 여러 송사에 휘말려 있는 사람이라 장기화될 조짐이 보인다. 보도를 유보해 주면 안되겠냐'고 요청했습니다. 하지만, 이후 다른 한 언론사도 취재를 위해 현장에 들른 것이 확인됐고, 경찰은 결국 전 언론사에 간단한 사건 개요를 확인해 주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로부터 며칠간 언론사들은 경쟁적으로 속보를 쏟아냈습니다. '의문의 살인사건' '피해자는 수천억 원대 자산가'같은 제목이었습니다. 사람들은 그런 부자가 왜, 어떤 일로 이렇게 무참히 살해되었는가 궁금해하며 흥미를 보였습니다. 결국 '돈' 문제 아니겠냐,며 피해자의 불법 재산증식 과정에 대한 기사도 속속 쏟아졌습니다.

이날 현장에 처음 들렀을 때, 제가 느꼈던 음산함 같은 기운은 그야말로 근거 없는 저만의 느낌이긴 했지만, 이제 와 생각하니 결국 이 사건이 장기화될 것이라는 조짐을 느낀 것 아니었나 싶기도 합니다. 사건 직후, 경찰이 혼란스러워하고 있으며, 답답해하고 있다는 것이 강하게 느껴졌습니다. 나중에 들으니, 경찰이 용의자의 도주경로를 확인하고 특정한 시점은 사건 발생 보름이 지나서였습니다.

요즘같은 세상에 보름이라뇨.  그만큼 철두철미하게 계획된 살인이었습니다. 복면을 쓰고 건장한 체격을 가진 30~40대 남성, 이게 주변 가게에 찍힌 CCTV로 확인할 수 있는 정보의 전부였습니다. 택시를 여러차례 갈아탔던 이유도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수사를 방해할 목적으로 보이는 '불필요한 방식의 이동'이 큰 이유였습니다. 용의자는 누가 봐도 이상한 방식으로 이동하고 있었습니다. 건널목 한번 건너면 될 길을 뺑 돌아 괜한 곳에서 택시를 타고 다시 근처로 오는 식이었습니다. 현장엔 지문 하나 남지 않았고, 살해현장에 있었던 수백 만원 현찰은 한 푼도 건드리지 않았습니다.

경찰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이후에도 접촉하는 피해자 주변인들은 하나같이 '잡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을 들려줬습니다. 워낙 다툼이 잦았다는 겁니다. 사랑하는 가족과 지인을 잃은 주변인들의 슬픔을 생각하면 정말 죄송한 말씀이긴 하지만, 취재한 것으로는 그랬습니다. 경찰은 수사상황에 대한 인터뷰 요청을 계속 거절하며 방어적으로 나왔습니다. 그렇게 사건은 기자들에게 '영원히 미제로 남을 지 모르는'사례로 몇 차례 회자된 후 기억 속에서 사라졌습니다... (다음에 이어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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