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담 : 김훈 소설가
▷ 한수진/사회자:
엊그제 6월 22일이죠. 남한산성이 유네스코가 지정하는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습니다. 남한산성은 통일 신라 시대 때 처음 지어지기 시작해서 이제 1,500년 가까운 역사를 지니게 되었고요. 조선시대 최대 치욕으로 얼룩졌던 병자호란, 바로 그 병자호란의 상처가 담겨있는 역사의 현장이기도 합니다. 남한산성이 세계 문화유산에 지정된 것을 기뻐하면서, 이 시대에도 여전히 큰 메시지를 전해주고 있는 우리 남한산성 이야기 잠시 좀 해보려고 합니다. 김훈 작가가 몇 해 전 <남한산성>이라는 동명의 소설을 펴냈는데요. 60만 부 이상이 판매될 만큼 큰 관심을 끈 바 있었습니다. 관련해서 김훈 소설가와 이야기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 김훈 소설가:
네, 김훈입니다, 안녕하십니까.
▷ 한수진/사회자:
선생님, 남한산성이 세계 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는 소식 들으셨을 텐데요, 어떠셨어요?
▶ 김훈 소설가:
역사가 사람의 상처를 용해하고 녹여내는 힘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400여년이 지나니까 그런 고난의 자리가 자랑의 자리로 바뀌어 가는군요.
▷ 한수진/사회자:
남한산성이 세계 문화유산으로 보존될 정도로 충분히 인류사적인 가치가 있는 성곽임에는 틀림없는 거겠죠?
▶ 김훈 소설가:
그렇죠. 그것은 물론 오래되었고, 그 성곽이 가지고 있는 물리적 구조, 그것이 가치가 있는 거지만 그것보다 더 가치가 있는 것은 거기에 얽힌 스토리죠. 인간의 고통과 슬픔, 거기에 저항할 수밖에 없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운명이 거기서 들끓으면서 폭발해 나온 것이죠. 그런 의미에서 정말 중요한 인류사적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 한수진/사회자:
남한산성에 얽혀있는 숱한 역사적 사건 가운데서도 가장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역시 병자호란 이야기일 텐데요. 선생님의 소설 <남한산성>도 병자호란 당시 이야기죠?
▶ 김훈 소설가:
그렇죠. 저의 소설은 병자호란의 전 국면을 다루지는 않았고 산성 안에서 벌어진 40여 일 간의 이야기입니다. 임금이 그쪽으로 피난을 가니까 사대부들이 다 따라 들어왔죠. 그 고립무원의 성곽 안에서 인간은 무슨 생각을 하고 무슨 말을 하고 어떤 미래를 설정할 수가 있었나, 그런 일들을 써놓은 것이죠.
▷ 한수진/사회자:
이 소설 집필하시기 전후해서 남한산성을 많이 다녀오셨을 것 같은데요?
▶ 김훈 소설가:
네, 제가 자전거 타기를 좋아해서 자전거 타고도 많이 가고 그랬어요. 특히 비참한 대목이 서문인데요, 문이 네 군데가 있는데, 인조 임금이 항복하러 갈 때 서문으로 나갔죠. 서문을 보면 초라한 문이에요. 임금이 드나들 수 없는 문이죠. 말을 타고 지나갈 수 없는 문입니다, 머리가 부딪쳐가지고. 서문의 주춧돌 같은 것들을 만져보면서, 내가 결국 이런 어려움을 뚫고 나갈 수밖에 없겠구나, 하는 다짐을 하고 그랬죠.
▷ 한수진/사회자:
일국의 왕인데 큰 문으로 나갈 권리조차 얻지 못했다는 거예요. 선생님, 병자호란 일어나서 인조 임금이 황급하게 남한산성으로 피신을 가게 되는데 이 병자호란이 일어나기 45년쯤 전에 임진왜란이 있었던 거잖아요. 그렇게 고생을 해놓고도 어떻게 보면 조선 조정이 딱히 교훈을 얻지 못했던 것 같아요?
▶ 김훈 소설가:
임진왜란 때는 어쨌든 명나라 군대가 와서 많은 도움을 주었죠. 명나라에 대한 사대, 그것이 우리나라에 정통적인 삶의 태도로 자리 잡은 것이죠. 명의 보호 속에 있는 한 우리 안보는 별 문제가 없겠다, 그런 안일한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그것이 광해군 때 와서는 대륙에서 청의 세력이 커지기 시작하니까 광해군은 양쪽에서, 말하자면 요새 말로 양다리를 걸치면서 명청 사이에 조정자 역할을 하면서 위기를 넘겨왔던 것이죠. 그러는 와중에 대륙에서 청의 세력이 점점 커지니까 조선의 명에 대한 사대외교는 그런 시련에 부딪친 것이고 그것이 결국 병자호란 같은 참극으로 나타난 것이죠.
▷ 한수진/사회자:
1년 중 가장 추운 동지섣달 한 겨울에 식량이나 군사들도 변변치 않은데 남한산성으로 들어가서 50일 가까이, 전투를 벌였다기보다는 농성을 했던 셈이잖아요. 그런데도 당시 임시조정은 서로 말다툼만 했다고 해요, 정말 기가 막힌 일이죠?
▶ 김훈 소설가:
사실은 그 이후에는 별로 할 일이 없었을 거예요. 왜냐하면 남한산성이라는 곳이 임금이 애초에 기획을 해서 들어간 곳이 아니고 임금은 강화도로 가려고 했어요. 강화도로 가는 길목을 이미 적들이 점령했기 때문에 방향을 틀어서 남한산성으로 들어간 것이거든요. 남한산성에는 아무런 준비가 없고 기획이나 미리 준비된 전략 같은 것이 없이 허겁지겁 들어간 것이죠. 거기서 50일을 버틴 것인데 그 안에서는 군사를 동원해서 적을 공격 한다거나 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죠. 인간은 현실적인 방편이 없을수록 말은 더 격렬해지게 마련이죠.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 말이 더 극한을 향해서 가는 것이죠.
▷ 한수진/사회자:
그러니까 이른바 주전파, 주화파의 싸움이 벌어지지 않습니까?
▶ 김훈 소설가:
그것이 어떤 주전, 주화가 대척점에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하나의 역사적인 현실에 그런 모순적인 측면이 함께 존재할 수가 있는 것이죠. 거기서 벌어지는 말, 말들의 난무, 비극적인 운명인데 어쨌든 인간에게 중요한 것은 주전이냐 주화냐가 아니고 그 성에를 들어가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죠. 산성으로 들어가서 세계와 차단되고 문을 빗장으로 걸어 잠그고 그 안에서 살겠다고 하는 것은 그것은 인간의 살길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저는.
▷ 한수진/사회자:
선생님이 쓰신 많은 작품에 보면 주제의식이라고 할까요. ‘인간은 어떻게든 살아야 한다’ 선생님 인간은 흥정을 하든 타협을 하든, 심지어는 노예가 되어서라도 어떻게든 살아나야 하는 걸까요?
▶ 김훈 소설가:
흥정과 타협이라는 것은 비굴이나 부도덕은 아닐 거예요. 흥정과 타협이라는 것은 인간이 세상을 살아가는 하나의 방편이죠. 그리고 나는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라는 세상을 이루고 있는 삶의 모습 있잖아요. 이 문명 전체, 모습. 이것은 흥정과 타협의 산물로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것이죠. 명분과 의리의 결과로서 이것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삶의 현실은 흥정과 타협의 결과로 존재하는 것이죠. 그것이 인간의 삶의 현실인 겁니다. 이것은 굴욕이나 치욕을 능동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이야기는 아니에요. 주전이냐 타협이냐 보다도 현실이 훨씬 중요하다는 것이죠. 현실, 현실이라는 것은 인간의 생활입니다. 인간의 일상이 더 중요한 것이죠. 주전이냐 주화냐 이런 질문은 현실 앞에서는 좀 무의미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한수진/사회자:
이렇게 힘든 시대, 그야말로 난세에 가장 고통 받는 것은 아무래도 일반 백성들 아니겠어요. 그래서 선생님 책 서문에서도 그런 말씀 하셨던 것 같은데요. ‘나는 아무 편도 아니다. 다만 고통 받는 자들의 편이다.’ 이런 말씀을 쓰셨던 기억이 나는데 정말 지도자들이 한 번은 새겨들어볼 필요가 있어 보이는 말이네요.
▶ 김훈 소설가:
남한산성에 나오는 백성들은 왕권이나 정치권력과는 별로 관련 없는 사람들이에요. 그 사람들은 성 안에서 전부터 살던 사람들이죠. 성안에 농토, 생활의 터전을 성 안에 갖고 살던 사람들인데 임금이 그쪽으로 들어오니까 살 길이 막막하게 된 것이죠. 임금이 들어오니까 청나라 군대가 따라와서 성을 포위하니까 백성들도 살 길이 없는 것이죠. 백성들은 정치권력과 아무런 별 관련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나라에 위기가 처하면 모든 것을 바쳐야 하고 결국 마지막 책임을 져야 하는 게 백성들의 삶의 모습이죠.
▷ 한수진/사회자:
시대가 바뀌어도 이 고통의 눈물이라고 해야 될까요. 쉽게 사라지지 않는 것 같아요. 올 봄에도 저희가 정말 가슴 아픈 큰일을 우리 사회가 겪지 않았습니까. 세월호 여파 지금 온 국민들 가슴에 커다란 상처로 남아 있는데 어떻게 우리가 극복해야 할까요?
▶ 김훈 소설가:
그것은 세월호는, 우발적인 사고가 아닙니다. 부도덕한 자본과 무능한 정치권력의 합작품이죠. 이 슬픔을 한으로 만들지 말고 이 슬픔을 분노로 만들고 분노를 현실을 바꾸는 동력으로 삼아야 하는 것이죠. 우리가 정말 이런 끔찍한 지경에서 한 발짝이라도 앞으로 나갈 수 있느냐, 하는 것이 우리의 모든 고민이 되어야 하겠죠.
▷ 한수진/사회자:
선생님 오늘 남한산성이 품고 있는 여러 가지 역사적인 함의, 또 오늘의 이야기까지 이어서 해봤는데요. 선생님 사실 지금 한반도를 둘러싼 국세 정세도 여전히 만만치 않잖아요. 일본 극우로 치닫고 있고 중국도 그렇고요. 우리가 어떤 교훈을 좀 얻어야 할까요?
▶ 김훈 소설가:
강대국들, 그리고 적대하는 세력들. 둘러싸인 이 동북아에서 그들 틈에서 살아야 하는 것이죠. 우리는 다시는 남한산성으로 들어가서 성문을 걸어 잠그고 세계와 절연하는 일이 없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쨌든 강대국, 이 적대 세력들 틈에서 살아야 하는 것이죠. 저는 명분이나 의리보다도, 이념보다도 우리가 살아남는데 필요한 것은 책략이라고 생각합니다, 책략, 전략. 명분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방편, 이런 것들이 중요한 것이죠.
▷ 한수진/사회자:
선생님이 쓰신 남한산성 마지막 장면을 인터뷰로 맺고 싶은데요. 삼전도 굴욕 끝나고 인조 임금 다시 궁으로 돌아갑니다. 그리고 새 봄이 오는데 극중 인물 ‘서날쇠’라는 일반 백성이 들판에 똥물을 뿌리는 장면 정말 가슴이 먹먹했던 장면인데요. 그 장면에서 선생님 꼭 하고 싶으셨던 이야기 직접 듣고 싶습니다.
▶ 김훈 소설가:
서날쇠는 백성이고 그 사람은 성 안에 원래부터 살고 있던 백성인데 그 사람은 주전파도 아니고 주화파도 아니고 지식인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니에요. 이 사람은 그냥 농사짓는 백성입니다. 그런데도 많은 공로를 세웠죠. 전쟁이 끝나니까 임금도 물러가고 청명도 물러가고 성안에는 다시 백성들의 일상이 돌아온 것이죠. 그 일상 들판에 똥물을 뿌리면서 다시 봄의 농사를 준비하는 백성의 모습을 그렸습니다. 생활의 재건, 그리고 생활은 영원하다는 것, 삶은 영원하다는 것, 그런 것들을 말하려 했던 것이죠. 그 거름을 뿌리는 것, 들판에 거름을 뿌리는 백성이 우리의 희망이라는 말을 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 한수진/사회자:
굴욕을 이겨내고 새로운 희망을 뿌리고 또 새싹이 돋게 만드는 그런 거름을 뿌린다는 말씀이시군요, 선생님. 오늘 말씀 정말 잘 들었습니다. 남한산성이 세계 문화유산에 등재된 것을 기념해서 남한산성에 얽힌 역사적인 의미 돌아봤습니다. 지금까지 김훈 작가와 말씀 나눴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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