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이 장갑차를 군용이라고 여기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강을 건널 때 쓰는 부교 설치 장비도, 레이저를 기반으로 한 훈련 장비도 민간용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일본 사람들입니다. 장갑차는 위장 색을 칠했고, 군복을 입은 마네킹을 전시해 놓고, 누가 봐도 뻔히 군사용인데 ‘안전’ 용품이라고 주장합니다. 세계 최대 무기 전시회인 ‘유로사토리’에 참가한 일본 기업 대표가 한 말입니다.
유로사토리는 1992년부터 2년에 한 번씩 프랑스 파리 근교에서 열리는 전시회입니다. 전세계 50개국 이상에서 참가하는 대형 무기 거래 시장이기도 합니다. 지난 4월 일본 아베 정권이 47년만에 무기수출 금지 규제를 풀자마자 일본 기업이 이 전시회에 참가한 겁니다. 일본기업의 세계 무기시장 첫 진출이라는 의미에서 일본의 행보를 취재하기 위해 전시회를 찾아갔습니다.
한참을 기다린 끝에 일본 기업들을 대표한 ‘크라이시스 인텔리전스’ 측과 겨우 인터뷰를 할 수 있었습니다. 일본 대표는 주최측인 프랑스가 일본 기업의 참가를 먼저 요청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주최측이 밝힌 올해 관심사 가운데 하나가 ‘시민 안전과 긴급 대응’이므로 일본측 주장이 아주 엇나간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이후 일본이 갖고 있는 재난 구조나 구호 관련 기술력을 높이 평가하는 분위기가 형성돼 있었기 때문입니다.
프랑스 언론은 일본의 전시회 참가에 대해 “일본이 무기 시장에 돌아왔다”고 보도했습니다. 유로사토리 전시회를 주관한 대표자의 말을 인용해 “일본의 관심은 당장 무기를 사고 파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유럽 등 세계 방위산업에서 협력망을 구축하고 지인을 만드는데 있다”고 전했습니다. 돈보다는 네트워크 구축이 절실하다는 거죠. 일본은 1967년 무기수출 3원칙을 적용하면서 세계 무기 시장과 거리를 둬 왔습니다.
공산국가나 유엔이 금지한 국가, 국제분쟁이 있는 나라에는 무기를 팔지 않겠다는 원칙이었습니다. 분쟁이 있는 곳에 무기가 있으니 무기 수출을 금지한 셈입니다. 아베 정권이 이 원칙을 ‘방위장비 이전 3원칙’으로 변경했습니다. 분쟁국이나 유엔 결의를 위반한 나라에는 수출하지 않지만, 국제평화와 일본 안보에 기여하고 이전되는 장비의 적정한 관리가 가능하다면 수출한다는 겁니다.
일본은 무기시장 재진출을 통해 50년 가까이 물 밑에서 움직였던 국제 안보 네트워크를 수면 위에 올려 놓고 싶어 합니다. 실제로 일본 정부는 무기 수출 원칙을 바꾸자마자 영국, 호주, 프랑스 정부와 방위장비 개발을 위한 협력 방안을 적극 모색하고 있습니다.
일본은 군사 네트워크 구축과 협력이 잘 추진되면 돈은 저절로 따라 올 것이라고 보는 것 같습니다. 전시회에서 만난 한국 군수 관계자는 “일본의 기술력이 높기 때문에 일정 분야에서는 금세 방위 선진국을 따라 잡을 것이다”라고 예상했습니다. 한국 방위산업체들과도 치열한 경쟁이 불가피하다고 말했습니다.
일본 기업이 지금은 무기를 가리켜 안전 장비라고 둘러대지만, 무기를 무기라고 말할 때는 국제 안보협력의 토대가 구축되고 있다는 신호일 겁니다. 가뜩이나 영토와 역사 인식 갈등으로 동북아 정세가 불안한 가운데, 일본의 ‘군사적 보통국가’ 행보는 동북아 안정의 또 다른 위협 요소가 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