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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문창극 후보자가 총리되면 제2의 독립운동 일어날 것"

[취재파일] "문창극 후보자가 총리되면 제2의 독립운동 일어날 것"
● 청문회 받아보겠다는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는 정치권에 새로운 고민거리를 안겨주고 있습니다. 재산 형성 과정이나 도덕성 문제 등 인사 청문 대상자의 단골 메뉴와 거리가 있는 역사 인식 문제가 화두로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여당은 청문회에서 본인의 해명을 들어봐야 한다는 입장이고, 야당은 국민이 받아들일 수 있는 수위를 넘은 만큼 자진 사퇴가 불가피하다는 쪽으로 입장을 정리했습니다. 문창극 후보자도 일제 식민 지배가 하나님의 뜻이라는 교회 발언이 알려진 다음 날인 지난 12일에는 "사과는 무슨 사과할게 있냐"며 자신의 발언에 문제가 없다는 걸 분명히 했습니다. 오히려 의혹을 제기한 언론사에 소송을 제기하겠다는 강경한 입장을 밝히기도 했습니다. 청문회는 안중에도 없는 듯 한 입장이었습니다. 하지만 사흘 만에 그동안의 문제 제기에 대해 일일이 답변하며 사과했습니다. 여론의 동향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자 육성 사과를 통해 조기진화를 시도한 걸로 풀이됩니다. 자진 사퇴는 없는 만큼 청문회를 통해 검증을 통과해보겠다는 겁니다.

● 문창극 후보자 해명, 역사학자 이덕일 씨에게 물어보니

식민 사관의 실체를 파헤치는데 노력해왔고, 대중적인 역사서로 친근한 역사학자 이덕일 한가람 연구소장에게 문 후보자 해명에 대한 견해를 물어봤습니다. 이 소장은 문 후보자의 해명은 일고의 가치가 없는 것이라고 잘라 말했습니다. 이미 공개된 영상과 칼럼에서 역사인식에 대한 심각한 문제가 드러났고 어제 해명마저 문제가 크다는 겁니다. 문 후보자가 총리가 되면 제2의 독립운동이 일어나게 될 거라는 의미심장한 전망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문 후보자의 역사 인식이 어느정도기에 이렇게 말하는 걸까요?

● 쟁점 1. <"조선 민족은 게으르다">

문창극 후보자는 동영상에 나오는 것처럼 조선민족은 게으르다고 한 말은 자신의 얘기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1894년 영국 왕립지리학회 회원인 비숍 여사의 기행문인 <조선과 그 이웃나라들>에 나오는 얘기를 인용했을 뿐이라는 겁니다. 자신의 발언은 조선 위정자들과 양반들의 행태와 처신을 지적한 것이고, 나라가 잘 되기 위해서는 위정자들이 똑바로 해야 한다는 취지로 발언했다고 강조했습니다.

이덕일 소장은 비숍 여사의 기행문을 과연 문 후보자가 제대로 본 건지부터 의문을 표시했습니다. 파리의 드골 공항이나 미국의 케네디 공항에 가도 노숙자가 있고, 지저분한 면이 있는데, 그런 일부분만 기술한 것을 뽑아서 프랑스와 미국이 더럽고, 그 국민들이 게으르다고 평가할 수 있냐고 반문했습니다. 오히려 비숍의 저서를 자세히 보면 한국의 훌륭한 부분을 같이 기술해놨다고 설명했습니다. 그걸 의도적으로 우리나라를 비하하는 것만 떼서 우리 민족이 더럽고 게으르다고 반복적으로 말한 것은 심각한 문제라고 평가했습니다. 오히려 이런 발상은 우리 민족은 게으르고 자발적으로 역사발전 능력이 없기 때문에 식민 지배를 필연적으로 받을 수밖에 없다는 일본 극우 역사관과 정확하게 일치한다고 설명했습니다.

문 후보자의 사과 기자회견에서 직접 언급되지는 않았지만, 강연 동영상에는 윤치호의 일기를 토대로 조선 민족이 게으르다는 점을 더 많이 강조하고 있습니다. 동영상을 직접 본다면 이 발언은 문 후보자가 단순 인용을 하는데 그치지 않는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오히려 조상들의 게으른 습성은 현재까지 전해지고 있다는 취지의 발언 했다는 걸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의혹이 제기된 이후 국무총리실 홈페이지에 링크돼 있는 마리아 행전 강연에서 문 후보자는 실제 이렇게 말합니다.

“(윤치호 일기를 설명하며) 조선 사람들이 일을 안 해. 왜 안하느냐 봤더니 그 당시 일당을 80전을 줬나봐요. 일당이 적다고 일을 안 해. 그러면 누가 일을 하냐. 그 당시에 중국 사람들이 많았던 모양이에요. 중국 사람들이 와서 다 일을 뺏은 거야. 이 사람이(윤치호) 와서 통탄을 하는 거야. 내가 너희들을 위해 일자리를 만들었는데 왜 이렇게 일을 안하느냐. 다 중국 사람들한테 뺏기는구나. 지금도 사실 마찬가지지요. 지금도 일자리 없다고 그러지만은 사실 눈높이만 낮추면 일자리가 얼마든지 있지 않겠어요? 그런데 지금 우리 젊은이들 웬만한 일자리는 안 가려고 해. 꼭 대기업 가야 되고. 나는 혹시 우리 피에 그런 게 내려오는 게 아닌가. 그런 생각도 들게 되더라고요."

이 말은 분명 조상의 게으름이 대물림됐다는 발언으로 들립니다. 비숍, 윤치호를 인용하지 않더라도 문 후보자는 동영상에서 우리 민족이 게으르다는 걸(혹은 과거에 게을렀다는 걸) 수차례 반복해서 주지합니다. 기독교가 들어와서 게으른 민족성이 개조됐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걸로 보입니다.

● 쟁점 2 : <"위안부 문제는 진정성 있는 사과를 요구한 것이다">

문 후보자는 위안부 발언으로 상처받은 분들에게 진심으로 죄송하다고 사과했습니다. 딸이 셋이나 있는 자신은 위안부 문제에 대해 누구보다 분명히 반인륜적인 범죄행위이며 더 참담하게 여기며 분개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진실 된 사과가 중요하지 물질적인 배상만 강조해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논란이 된 발언을 다시 짚어보겠습니다. 지난 2005년 3월 8일 중앙일보 칼럼과 지난 4월 서울대 강연을 통해서 문후보자의 위안부 관련한 발언은 확인 됩니다. 서울대 강연에서 문 후보자는 "우리 힘으로 위안부 할머니들을 감쌀 수 있어 일본으로부터 사과를 받지 않아도 된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칼럼에서는 이미 끝난 배상 문제를 다시는 거론하지 말자며 위안부 문제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 부분을 인용해보겠습니다.

"일본에 대해 더 이상 우리 입으로 과거문제를 말하지 않는 게 좋겠다. 해방된 지 60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과거에 매달려 있는 우리가 부끄럽기 때문이다. 우리 아들딸들에게 언제까지 그 굴레를 메고 살게 할 것인가. '일본이 진정한 반성을 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말을 한다. 반성은 일본인 자신의 문제요, 책임이다. 그만한 그릇밖에 안 되는 사람들인데 어떻게 하겠나. 당했던 우리가 오히려 넓은 마음으로 나가면 그들 생각도 달라지지 않겠는가. 아니 그들은 뻔뻔하더라도 국제사회가 우리를 더 평가해 줄 것이다. 보상 문제만 해도 억울한 점이 비록 남아 있더라도 살 만해진 우리가 위안부 징용자 문제를 우리 힘으로 해결하자. 이것이 진정한 극일(克日)이다."

이덕일 소장은 이 주장은 일본 극우파들의 관점이 고스란히 반영돼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위안부 할머니들은 국가차원의 일본의 사과를 요구하는 것이지, 물질적인 돈 몇 푼을 달라고 주장하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생존자들이 나이 90을 넘긴 분들이 수두룩한데 금전적인 보상이 있어도 무슨 소용이 있냐고 말했습니다. 오히려 우리정부가 이 문제에 대해 금전적인 배상을 요구하고 있다고 주장해 논의의 본질을 흐리고 진정한 사과를 회피하려는 일본 극우파들이나 할 법한 말이라는 겁니다.

● 쟁점 3 : <“일본 식민 지배는 하나님의 뜻”>

문 후보자는 이 부분을 일반적인 역사 인식이 아니라 교회 안에서 같은 믿음을 가진 사람들과 나눈 종교적 인식이라고 해명했습니다. 우리 민족에게는 시련과 함께 늘 기회가 있었다는 취지의 강연을 한 것이라는 겁니다. 시련을 통해 더 강해졌고, 그 시련을 통해 해방을 맞고 공산주의를 극복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 소장은 문 후보자가 역사뿐만 아니라 성서를 왜곡하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 주장은 강자의 입장에서 세상의 지배자의 폭력을 합리화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겁니다. 예수님의 삶 자체가 로마 식민지 시대에서 약자의 편에 서다가 결국 십자가에 못 박히는 희생을 몸소 보여준 것인데, 모든 것을 강자, 지배자의 편에 서서 하나님의 뜻이라고 주장한다면 그건 성서의 본뜻과는 한참 거리가 있다는 겁니다. 하나님의 뜻을 말했던 함석헌도 약자의 편에서 일제에 저항하며 민족 해방을 강조했는데, 문 후보자가 친일파인 윤치호만을 인용하며 일본의 식민 지배를 숙명처럼 받아들여야한다고 주장한 것은 역사관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 거라고 주장했습니다. 또 일제 강점기 당시 신사참배를 거부하다가 투옥된 기독교인들이 2천 명이 넘고 폐쇄된 교회가 2백 개가 넘는다고 합니다. 이들의 희생이 하나님의 뜻을 거스른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이 소장은 답했습니다. 성서의 십계명에는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는 계명이 있습니다. 이 소장은 문 후보자가 함부로 하나님의 이름을 아무 곳에나 갖다 붙이며 신의 뜻을 왜곡하고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 월드컵에 등장한 욱일승천기…문창극 후보자는 청문회서 어떤 답을 내놓을까

일본과 코트디부아르와의 월드컵 경기에서 우리 국민들은 일본이 골을 넣을 때 관중석에 욱일 승천기를 얼굴에 그려 넣거나 가슴에 새겨 넣은 일본 팬들을 목격했습니다. 아베 정권이 들어선 이후 일본 국민들도 자신들의 제국주의 시절을 그리워하며 주변국들을 능욕하는 일에 어떠한 부끄러움도 모르는 심각한 역사 인식 마비 상태가 일어나는 건 아닌지 걱정이 앞섭니다. 그런 일본이 문 총리 후보자에 대해 진정한 용기 있는 인물이 총리 후보자가 됐다고 반가워하고 있습니다. 일본 입장에서는 고노 담화를 난도질 하려는 찰나에 희소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어제 짧은 사과와 해명을 통해 모든 논란이 해소됐다고 생각하는 국민들은 거의 없을 거 같습니다. 오히려 장편의 동영상에 나타난 발언은 물론 오랫동안 썼던 기명 칼럼과 다른 취지의 해명을 한 배경이 무엇인지 궁금증이 더 커졌습니다. 역사학자들이 제2의 독립운동이 일어나게 될 것이라고 반발하는 조짐도 심상치 않습니다.

이제 공은 국회로 넘어오게 될 것 같습니다. 청문회 과정에서 문 후보자가 자신의 철학과 소신에 대해 어떤 대답을 내놓을지 궁금합니다. 청문회 자체가 파행이 되기보다는 관련 전문가들까지 나와 후보자의 역사 인식에 문제가 있다면 철저하게 검증해 국민들도 함께 판단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어쩌면 청와대나 여권 지도부에서 그동안 해왔던대로 '오더'를 통해 이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국민들이 갖고 있는 의구심이 청문회 과정에서 해소되지 않는다면 여당 의원들이 총동원돼도 이번 총리 인준은 통과가 쉽지 않아 보입니다. 이미 여권 내부에서도 공개적으로 문 후보자에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고, 전당대회를 앞두고 권력 지형도 급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청문회 강행을 주장했던 사람들에 대한 정치적인 후폭풍도 만만치 않을 겁니다. 과연 청문회 뒤에 문 후보자가 무사히 총리 인준을 통과했다는 기사를 쓸 수 있을지 정말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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