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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누군가 우리 집에 살아요"…대륙의 양상군자

[월드리포트] "누군가 우리 집에 살아요"…대륙의 양상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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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에 낯선 사람이 숨어 살고 있다.' 지난해 여름 개봉한 스릴러 영화 '숨바꼭질'의 포스터 문구입니다. 보는 순간 등골이 오싹해집니다.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공간이라고 믿는 집안에 내가 모르는 위험 요소가 있다는 가정은 생각조차 하기 싫습니다.

영화 '숨바꼭질'은 시나리오상 허점이 많다는 지적에도 불구하고 꽤 괜찮은 흥행 성적을 올렸습니다. 이런 오싹한 상황 설정이 납량물로 위력을 발휘했다는 평가입니다.

영화 '숨바꼭질'은 실화에 바탕을 둬 개연성을 높이고 충격 효과도 배가했습니다. 몇 년 전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초인종 암호 괴담'과 '뉴욕 아파트 동영상' 등입니다.

빈집털이범들이 아파트 초인종 옆에 식구 수나 빈집 여부를 암호로 표시해놓는다는 것이 '초인종 암호 괴담'의 내용입니다.

'뉴욕 아파트 동영상'은 뉴욕 한 아파트 주인이 집안에 음식물이 자꾸 없어지자 몰래 카메라를 장치했는데 웬 남자가 벽장에서 나와 음식물을 뒤져서 먹는 장면이 찍혔다는 것입니다. 사실이라면 모두 모골이 송연해지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세상만사 안 일어나는 것이 없는 중국에서 '숨바꼭질' 괴담이 현실로 벌어졌습니다. 3개월 동안이나 남의 집에 몰래 숨어 살며 돈과 음식을 훔치던 도둑이 잡힌 것입니다. 중국판 '숨바꼭질'의 전모는 이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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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쑤성 쿤산시에 사는 왕모 씨는 얼마 전부터 집안에서 돈이나 물건이 자꾸 없어진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집의 모든 시건장치는 이상이 없었습니다. 누가 뚫고 들어온 흔적도 없습니다. 가족 중 아무도 그 물건을 만진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감쪽같이 사라졌습니다.

지난 달 29일 새벽 집으로 돌아온 왕 씨는 집 문을 열다가 이상한 점을 발견했습니다. 분명히 밖에서 잠그고 나갔는데 문이 열려 있는 것이었습니다.

왕 씨는 경찰에 신고했습니다. 출동한 경찰이 집안에 들어가 샅샅이 뒤졌지만 아무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철수하려던 경찰은 우연히 부엌 천장을 바라봤다가 구멍이 뚫려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사다리를 놓고 올라가 확인한 결과 20대 남성이 숨어있었습니다. 집안에 도둑이 살고 있었습니다.

문제의 도둑은 장시성 출신 쩡모 씨였습니다. 쩡 씨는 올 3월 주머니가 텅 비자 무작정 유랑걸식에 나섰습니다. 우연히 쿤산시 왕 씨가 사는 건물에까지 왔다가 처마 밑에서 한 사람이 겨우 드나들 수 있는 구멍을 발견했습니다.

기어 올라가보니 천장과 지붕 사이에 공간이 한 사람 머물기에 넉넉했습니다. 비와 바람을 피하기에 적당했습니다. 당장 그 고미다락에 입주했습니다. 물론 무단으로.

좀 지내다보니 쩡 씨는 밑에 천장을 뜯어내면 왕 씨의 집인 303호와 옆집인 304호를 쉽게 드나들 수 있다는 점을 깨달았습니다. 그때부터 쩡 씨의 도둑질이 시작됐습니다.

303호와 304호가 비기만 하면 내려가서 돈과 크고 작은 귀중품을 훔쳤습니다. 배가 고프면 음식을 꺼내 먹고 심지어 요리도 했습니다. 화장실도 무상으로 이용했습니다. 제 집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훔친 금품이 2천 위안 어치, 우리 돈 33만원에 달합니다.

이런 생활이 3개월을 넘기자 쩡 씨의 긴장이 풀렸나봅니다. 왕 씨가 없는 틈을 타서 내려와 집 안팎을 드나들다 그만 열어놓은 문을 다시 잠그는 것을 깜빡 했습니다. 이 실수가 없었다면 왕 씨는 얼마나 더 오래 쩡 씨와 동거 아닌 동거를 했을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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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보니 중국에서 이와 같은 사건이 처음이 아니었습니다. 지난 2007년 10월에도 저장성 자싱시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한 훠궈(중국식 샤브샤브) 음식점 종업원인 진모 씨는 우연히 건물 밖 대형 네온사인 뒤에 숨겨진 구멍을 통해 층 사이의 공간에 들어갈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진 씨는 당장 훠궈집을 그만 뒀습니다. 다른 곳에 직장을 구하지도, 다른 거처를 찾지도 않았습니다. 바로 층간 공간에 살림을 차렸습니다.

진 씨 역시 천장을 통해 자신이 일하던 훠궈집은 물론 다른 가게 서너 군데를 제 집처럼 드나들었습니다. 먹고 입고 생활하고 돈을 버는 것 모두 이 가게에서 해결했습니다.

진 씨 역시 경찰에 잡히는데 3개월이 걸렸습니다. 그때까지 훔친 금품이 6천 위안, 거의 1백만 원 어치에 이릅니다. 얼마나 무시로 드나들었는지 언제 무엇을 훔쳤는지 전혀 기억을 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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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도 쓰이는 중국의 사자성어 가운데 '양상군자'라는 말이 있습니다. 말 그대로 번역하면 '대들보 위의 군자'로 도둑을 점잖게 일컫는 말입니다.

중국 후한 시대 진식이라는 학자가 있었습니다. 성격이 온화하고 청렴결백해서 높은 신망을 받았다고 합니다. 진식이 태구현의 현감으로 일할 때였습니다. 집에 돌아와 보니 도둑이 대들보에 몸을 숨기고 있는 것을 알아챘습니다. 진식은 즉시 가솔을 모두 불러 모아 놓고 훈계를 했습니다.

"악인이라도 원래 처음부터 나빴던 것은 아니다. 착한 천성을 타고 났는데 나쁜 습관에 물들어 그만 악의 길로 빠지는 것이다. 저기 대들보 위의 군자도 마찬가지다."

이 말을 들은 도둑은 즉시 뛰어내려와 진식 앞에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었습니다. 진식은 오히려 도둑에게 비단을 주며 다시는 나쁜 일을 하지 말라고 권했습니다. 이 일이 알려지면서 태구현에는 더 이상 도둑이 없었다고 합니다. 이 고사에서 '양상군자'라는 사자성어가 나왔습니다.

이런 전통 때문인가요? 중국판 '숨바꼭질' 범인들은 모두 대들보 위, 즉 천장에 몸을 숨겼습니다. 진식은 '군자'라는 명칭까지 붙여서 점잖게 훈계했다지만 저로서는 꿈에서도 마주치기 싫은 '도둑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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