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격필살의 무예 실력, 범인에게 단 한 순간도 자비를 허용치 않는 냉정한 마음, 조각 같은 몸매를 수놓은 훈장 같은 상처들….
지욱(차승원)은 강력계 형사라면 누구나 탐낼 만한 조건을 갖춘 탁월한 실력의 형사다. 조직폭력배들을 소탕하는 과정에서 몇몇 물의(?)를 빚었으나 반장과 주임 검사는 그를 두둔하는 데 바쁘고 후배 진우(고경표)도 친형 대하듯 따른다.
이처럼 평판 좋은 전설적인 경찰이라는 외피를 입고 있지만, 사실 지욱의 내면은 그의 훈장 같은 상흔만큼이나 상처투성이다. 남몰래 화장해야 하고 거들을 입어야 하는 여성이 그의 내면에 똬리를 틀고 있기 때문이다.
늘 다른 성(性)을 꿈꾸며 자신과 남들을 속인 채 살아왔던 지욱은 조직폭력배의 우두머리 허 회장(송영창)을 검거하는 데 성공하지만 그의 독사 같은 동생 허곤(오정세)에게 '진짜' 정체를 간파당한다.
'로맨틱 헤븐'(2011) 이후 장진 감독이 3년 만에 선보인 장편 영화 '하이힐'은 아드레날린 넘치는 남자인 줄 알았던 형사가 실은 트랜스젠더를 꿈꾸는 '여성적' 남자라는 상상에서 출발한 누아르 장르의 영화다.
흔히 누아르 영화의 주인공은 대개 약점을 지니고 있고, 그 때문에 파국을 맞이하기 마련. 주인공 지욱도 그런 약점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하이힐'은 누아르적인 공식에 꽤 충실한 작품이다.
그런데 사회적 통념에 반하는 성전환자를 누아르의 주인공으로 내세웠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기존 누아르와 다른 길을 간다. 누아르의 주인공들이 대개 아드레날린을 뿜어내는 마초적인 속성을 지녔기 때문이다. 여기에 동성애 문제라는 묵직한 사회 드라마까지 입혔다. 소재적으로나 장르적으로 풀어내기 어려운 이야기였던 셈이다.
일단 이런 무거운 소재를 전혀 무겁지 않은 화술로 풀어나가는 장진 감독의 노련미는 돋보인다. 깨알 같은 유머들이 영화 곳곳에서 튀어나온다. 허 회장이 사우나에서 지욱을 처음으로 만나는 회상 장면, 경찰들의 육두문자가 빗발치는 경찰서 장면, "비가 무지 오던 날이었는데 옷조차 젖지 않는" 지욱의 전설적인 무술실력 등에 대한 일화가 배꼽을 잡게 한다. 지욱이 처음으로 여자옷을 입고 엘리베이터를 향해 걸어갈 때의 순간처럼 좋은 장면들도 몇몇 있다.
장진 감독은 십 여 편의 영화를 찍으면서 선보였던 코미디와 휴먼드라마적인 요소들을 작심한 듯 이번 영화에 다 쏟아부었다. 이처럼 다양한 식재료를 넣어서 비빔밥을 만들어냈지만, 그 맛이 썩 훌륭한 편은 아닌 듯하다.
우선 장진 스타일의 독특한 유머는 군데군데 웃음을 주지만 영화의 전체적인 맥락에 어울리지 못하고 겉도는 느낌이다. 잔인한 장면들도 캐릭터의 분노, 혹은 아픔과 혼연일체 되듯 연결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 폭력이 과하다 싶게 여겨지는 이유다. 성전환자를 꿈꿀 수밖에 없는 지욱의 마음을 내비치는 장면도 부족했다. 지욱의 몸에 난 깊은 상처만으로 어느 정도 짐작해 볼 수는 있지만 좀 더 명시적인 장면이 아쉽다.
6월3일 개봉. 청소년관람불가. 상영시간 124분.
(서울=연합뉴스)
장진 스타일의 누아르 '하이힐'…차승원 연기 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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