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사국 간 견해차와 국제사회의 따가운 시선 등으로 창설까지 우여곡절을 겪은 옛 소련권 경제공동체 '유라시아경제연합'(EEU)이 29일(현지시간) 닻을 올렸다.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카자흐스탄의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벨라루스의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대통령 등 3국 정상이 29일(현지시간) 카자흐 수도 아스타나에서 EEU 창설 조약에 서명했다.
EEU는 3국 의회의 비준 절차를 거쳐 내년 1월부터 가동에 들어갈 예정이다.
옛 소련권에서 상품, 서비스, 자본, 노동력 등의 자유로운 이동이 가능한 유럽연합(EU) 형태의 경제공동체가 첫발을 내딛게 된 것이다.
회원국들은 2025년까지 완벽한 의미의 경제공동체를 구축한다는 일정을 세워두고 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사태에 따른 서방의 대(對) 러시아 제재와 회원국들의 경제규모 차이 등으로 EEU의 성공적인 정착 가능성을 판단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강한 러시아의 부활을 꿈꾸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적극적으로 밀어붙여 온 EEU는 1993년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카자흐스탄 대통령의 제안으로 처음 논의가 시작됐다.
당시 옛 소련에서 독립한 후 풍부한 자원을 바탕으로 고도성장을 꿈꾸던 카자흐는 역내 경제권 통합에 앞장섰다.
이후 푸틴 대통령이 뜻을 함께하며 2012년 러시아, 카자흐, 벨라루스 3국이 EEU 창설을 위한 준비 단계로 관세동맹(단일경제공동체)을 출범시켰다.
푸틴은 3국에 다른 옛 소련 소속 국가들을 끌어들여 진정한 의미의 옛 소련권 경제공동체인 EEU를 출범시킬 계획이었다.
하지만, EEU의 핵심 멤버가 될 것으로 기대됐던 우크라이나가 옛 소련권이 아닌 유럽 경제권과의 통합을 추진하면서 EEU는 첫발을 내딛기도 전에 무산될 위기를 맞았다.
친(親) 러시아 성향의 빅토르 야누코비치 전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지난해 말 옛 소련권과의 경제협력 중요성을 역설하며 그동안 추진해 오던 EU와의 포괄적 협력협정 체결을 중단하면서 한동안 우크라이나가 EEU로 돌아올 것이란 기대가 높아지기도 했다.
그러나 이후 친서방 세력인 야권의 저항 시위에 밀려 야누코비치는 결국 실각했고 우크라이나는 다시 유럽으로 돌아섰다.
더불어 러시아와 관세동맹을 체결한 카자흐도 루블화 약세에 따른 자국 경제의 손실과 관세동맹 협정이 세계무역기구(WTO) 협정과 상충하는데다 자국의 WTO 가입이 늦어지자 러시아에 볼멘소리를 냈다.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은 작년 10월 벨라루스 수도 민스크에서 열린 옛 소련권 6개국의 유라시아경제공동체(EurAsEC) 회의에서 "WTO 가입은 카자흐에 매우 중요한 문제지만, 먼저 협약을 맺은 관세동맹 탓에 WTO 가입이 쉽지 않다"며 노골적인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카자흐는 올해 2월 루블화 약세를 이유로 자국통화인 텡게화의 달러당 환율을 20%나 올렸으나, 이 탓에 물가급등에 따른 소비심리 위축 등으로 현재 경제가 몸살을 앓고 있다.
그동안 EEU 창설에 공동보조를 맞춰온 벨라루스 또한 막판에 딴죽을 걸고 나섰다.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은 지난달 29일 민스크에서 열린 EEU 창설 준비 회의에서 "국익에 손해를 보면서까지 EEU 창설 조약에 서명할 생각은 없다"며 제동을 걸었다.
이들 역내 국가 못지않게 국제사회의 반응도 푸틴의 고민을 깊어지게 했다.
미국과 유럽 등 서방은 러시아가 EEU 구축 후 궁극적으로 이를 단일통화를 쓰는 연방제 단일국가 형태의 유라시아연합(EAU)으로 발전시킬 것으로 전망하며 옛 소련 부활 시도라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푸틴이 그같은 주장에 대해 "사실이 아니다"고 강하게 반박했지만 의혹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이러한 우여곡절 끝에 EEU가 드디어 출항에 나섰다.
당초 우크라이나까지 포함된 인구 약 2억 명, 국내총생산(GDP) 약 2조 6천억 달러의 거대 단일시장을 이루려던 계획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관련국들의 엇갈린 이해관계를 보듬고 출발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적지 않다.
또 아르메니아, 키르기스스탄이 가입 초읽기에 들어간 상황이고 역외 국가인 터키, 뉴질랜드, 인도, 베트남 등이 관심을 보이며 중국 또한 EEU와의 협력을 검토하고 있어 일부에서는 EU에 맞설 거대 경제통합체가 될 것이라는 낙관론도 제기되고 있다.
러시아 하원 독립국가연합(CIS·옛 소련권 국가 모임) 위원회 위원장 레오니트 슬루츠키는 이날 "EEU가 21세기 세계 정치·경제 시스템에서 강력한 플레이어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EEU의 의미를 크게 보지 않는 평가도 있다.
독일 방송 '도이체 벨레'(DW) 유럽 국장 인고 만토이펠은 EEU 창설이 옛 소련을 연상시키긴 하지만 유럽에 어떤 위협도 되진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EEU는 옛 소련권 국가들을 단일 경제공동체로 묶기 위한 러시아의 여러 차례에 걸친 시도 가운데 하나"라며 "우크라이나가 빠진 EEU는 사산아(死産兒)나 마찬가지이며 유럽이 우려할 이유가 없다"고 주장했다.
막 닻을 올린 EEU의 성공 여부는 푸틴 대통령이 주변국 및 EEU에 관심을 보이는 국가들에 순수 경제공동체로서의 EEU의 가치를 얼마나 설득할 수 있느냐에 따라 성패가 판가름날 것으로 예상된다.
(알마티·모스크바=연합뉴스)
'기대반 우려반' 옛 소련권 경제공동체 출범
러·카자흐·벨라루스 '유라시아경제연합'(EEU) 조약 서명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동영상 기사
동영상 기사
동영상 기사
동영상 기사
동영상 기사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