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구적 작전 수행 중 전사..'
아프가니스탄에서 전사자가 발생했음을 알리는 보도자료다. 짧은 서너 줄을 읽어 내려가는 동안 등골이 오싹해진다. 아! 미국이지.. 이런 전장의 비보를 전하는 뉴스는 거의 없다. 아침 뉴스에서 앵커가 한 마디 하고 지나가는 것을 단 한 차례 봤을 뿐이다.
치누크가 추락했다든가, 격추됐다든가 하는 경우가 아니면 뉴스로 다루지 않는다. 그 슬픔은 오롯이 아들딸, 남편, 아빠의 전사 통보를 받고 또 그 뒤 군번줄을 끌어안고 오열할 전사자 가족들의 몫이다.
그렇게 조용하던 전쟁 소식은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한껏 증폭된다. 5월 마지막 주 월요일 '메모리얼 데이'다.
애리조나에서 보훈병원 치료를 기다리던 참전 군인이 기다리다 지쳐 숨졌단다. 병원은 실적 때문에 대기 시간을 짧게 보이게 하려고 이중 명부를 작성했고 이제나 저제나 차례를 기다리던 가족들은 오랜 인내 끝에야 연락을 받았다는 것이다. 이미 숨을 거둔 뒤에야..
메모리얼 데이를 목전에 두고 정치가 작동하기 시작했다. 공화당을 주축으로 한 의원들은 신세키 보훈장관을 청문회에 불러 앉히고 즉각 사퇴를 요구했다. 그러자, 오바마는 백악관 브리핑 룸으로 달려와 기자들 앞에서 '선 조사 후 문책'을 다짐했다.
그리고는 메모리얼 데이 연휴 첫날인 토요일 극소수 일행과 함께 비밀 여행을 떠났다. 행선지는 아프가니스탄 바그람 공군기지였다. 미국의 '커맨더-인-치프' 최고사령관은 공군 점퍼 차림으로 행가에 올라 웅변을 토했다. 그리고, 3천 5백여 장병들 앞에서 '사랑스런' 마지막 멘트를 날렸다.
"여러 분 모두와 악수를 할 것입니다. 여러 분과 다 셀카를 찍기는 어렵겠지만 악수를 하겠습니다. 시간이 많이 걸릴 테니 참고 기다려 주세요."
장병들은 온갖 스마트 기기를 꺼내 들고 그런 대통령의 모습을 놓치지 않으려고 셔터를 눌러 댔다. 급반전이었다. 오바마도 전쟁에 무관심하지 않다는, 전장에 보낸 장병들 생각에 잠 못 이루고 전사상자 가족들의 고통을 함께 하고 있다는 메모리얼 데이 메시지였다.
그리고 그 날이 왔다. 여느 메모리얼 데이와 다르지 않다. 알링턴 국립묘지에선 전사자 유가족들과 참전 용사들이 참석한 추모식이 열렸다. 오바마는 연설 도중 6.25 전사자 부인인 96살의 클라라 갠트 여사 이야기를 소개했다. 신혼 초 신랑을 머나먼 전장에 보내 놓고 63년을 기다린 끝에 남편은 유해가 돼 돌아왔단다. 안타까운 유해 귀환 소식은 작년 12월 서부 LA 지역 언론 뿐 아니라 CBS뉴스 등을 통해 미 전역에 알려졌다.
오바마의 말끝에 중계 카메라가 갠트 여사를 비추자 환호와 박수가 쏟아졌다. 눈물이 울컥한다. 슬퍼할 일인가 기뻐할 일인가? 비극인가 희극인가?
미국 메모리얼 데이 '잔치'에는 그런 눈물과 박수가 혼재돼 있다. 엄숙함과 장중함 속에 축제의 느낌이 묻어난다. 3일 연휴를 가족들과 휴양지에서 보내는 이들도 많고, 백화점의 메모리얼 데이 세일은 손꼽히는 쇼핑 기회이기도 하다. 각자 다른 방식으로 기념하고 추모하는 셈이다.
기자가 사는 마을인 버지니아 주 폴스 처치에서도 기념식이 열렸다. 아침부터 마을 주민들이 많이 나왔다. 합주단은 '주여! 미국에게 축복을(God Bless America)'같은 곡을 연주했다. 식장 주변엔 한바탕 장이 섰다. 노점 상인들은 바비큐와 소시지를 구웠다. 늘어선 천막마다 생활용품과 장신구 같은 것들이 눈길을 끌기에 바쁘다. 메모리얼 데이의 절정인 퍼레이드를 보려고 길가엔 주민들이 일찍부터 자리를 잡고 진을 쳤다.
이런 축제의 풍경은 미국 전역에서 펼쳐진다. 수도 워싱턴 DC 시내도 마찬가지였다. 워싱턴을 가로지르는 콘스티튜션 애비뉴에서 성대한 퍼레이드가 열렸다. 재향군인과 각 군을 대표하는 의장대, 50개 주를 대표하는 학생 고적대 등의 행진이 이어졌다. 연도의 시민들은 환호했다. 지국 사무실로 돌아오는데 어디선가 미국 국가를 실은 색소폰 선율이 울려 퍼진다. 지하철 역 입구에 선 거리의 악사도 선곡에 신경을 쓴 모양이다.
전쟁하는 나라 미국의 언론은 어떤 모습일까? 워싱턴포스트를 들쳐보니 대문짝만한 전면 광고가 한눈에 들어온다. 노스럽 그루먼과 보잉, 록히드 마틴이 나란히 각각 메모리얼 데이 특집 전면 광고를 실었다. 미 국방의 중심 펜타곤 일대에 포진한 굴지의 군수 기업들이다. '잊지 않겠다'는 평범한 문구 뒤에 숨은 메시지는 무엇일까?
워싱턴포스트와 뉴욕타임스를 비교해 보니 메모리얼 데이를 바라보는 시선 차이가 느껴졌다. 워싱턴포스트는 지난해에 그랬듯이 올해도 메모이얼 데이 전후로 특집 기사들을 많이 실었다. 하루 전엔 재활에 몸부림치는 상이용사 이야기를 실었다. 이날은 오바마의 아프간 깜짝 방문을 1면 머릿기사로 올렸고, 참전 용사 사진도 큼직하게 실었다.
뉴욕타임스는 많이 달랐다. 1면 머리에 오른 것은 중동에 평화를 호소하는 교황의 큼직한 사진이었다.. 사진 크기와 위치가 워싱턴 포스트와 비교된다. 아래에는 캘리포니아에서 일어난 비극적인 총격 사건 속보를 전했다. 오바마의 아프간 방문 사진은 구석으로 밀렸다. 전쟁이 화두인 날 평화를 갈구하는 편집이다.
오바마는 이제 미국 사상 가장 긴 전쟁을 끝내려 한다. 전임 대통령이 대책 없이 벌여 놓은 전쟁에서 얻은 것은 무엇이고 잃은 것은 무엇일까? 그 손익 계산엔 평범한 미국민들도 고개를 절레절레한다.
메모리얼 데이가 지나고 이제 내년 '축제'까지 또 그렇게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지나갈 것이다. 그리고 이따금 펜타곤에서 날아오는 이메일이 가슴을 짓누를 것이다. 누군가의 아들딸이자 남편, 아버지인 장병 누군가가 아프가니스탄 어딘가에서 항구적 작전 수행 중 전사했다는 짧은 이메일이..
동영상 기사
동영상 기사
동영상 기사
동영상 기사
동영상 기사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