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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정곡을 찌른 '피케티 신드롬'…반론은 있는가?

주류경제학을 흔드는 책 '21세기 자본' 열풍

[월드리포트] 정곡을 찌른 '피케티 신드롬'…반론은 있는가?
미국의 현충일인 전몰장병 기념일, '메모리얼 데이' 연휴로 이어진 지난 주엔 선명한 대비를 보이는 뉴스들이 있었다. 수요일(21일)에는 시카고 근처의 맥도날드 본사 앞에서 큰 시위가 벌어졌다. 2천 명 가까운 노동자들이 시간당 최저임금의 인상을 요구하며 벌인 시위였다. 최근에 벌어진 미국내 시위로는 흔하지 않게 경찰과 충돌이 벌어졌고 139명이 연행됐다고 AP는 전했다. 이들의 주장은 단순명료하다. 현재의 시간당 임금, 시급 9.08 달러(9천3백원)를 15달러로 올려달라는 것이다.

시위 이틀 뒤, 경제잡지인 포브스에는 전혀 다른 분위기의 기사가 실렸다. '미국에서 연봉과 복지혜택이 가장 좋은 직장은 어디인가?'라는 제목이었다. 1위에 오른 미국 대표 IT기업 구글의 기술직 직원 초임은 12만 8천 달러, 우리 돈으로 1억 3천만원 정도였고, 페이스북과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은 이보다 약간 낮지만 비슷한 수준을 보였다. 좋은 직장 2위로 꼽힌 대형할인점 '코스트코'의 경우에 직원 시간당 초임이 12달러, 선임인 계산대 담당 직원이 16달러였다.

이 두가지 뉴스를 직접 연결해 비교하기는 어려울 듯 하다. 하지만 넓은 지구촌에서 동시에 일어나고 있는 모습들이다. 심각한 일자리 부족이 장기간 이어지면서 미국내 소수인종이나 체류신분이 불안정한 사람들은 저임금의 패스트푸드 매장 일자리조차 아쉬운 상황이다. 일자리가 귀하다보니 업체는 경제논리를 내세워 현실을 악용하고 있다. 이것이 현대 자본주의의 냉혹한 속성이다.

영문 번역으로 재점화된 '피케티 신드롬'

지난 3월 미국에서 번역 출간된 책 한권이 신드롬에 가까운 열풍을 일으키고 있다. 파리경제대학 교수인 43살의 소장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이다.  프랑스에선 지난해 8월에 출간됐지만 영어 번역본이 나오면서 단숨에 40만권이 팔렸고 아마존 베스트셀러가 됐다. 600쪽이 넘는 엄청난 분량의 책이 이런 인기를 보이는 것도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다.

피케디 교수의 이론의 핵심은 쉽게 말해 '돈이 돈을 버는', 즉, 자본이 돈을 버는 속도가 노동이 돈을 버는 속도보다 너무 빠르다보니 부의 불평등은 계속 심화된다는 것이다. 결국 개인이 평생 버는 소득보다 상속받은 부가 개인의 운명을 결정하게 되고 이런 흐름이 계속되면서 세계 경제가 상속 엘리트들이 물려받는 부의 의해 지배되는 '세습자본주의'로 돌아가고 있다는 논리이다. 지금도 주요 선진국의 경제성장률은 연 1~1.5%에 머물고 있지만 자본 이익률은 4~5%나 된다. 그는 현재의 세계경제구조라면 자본수익률이 경제성장률보다 영원히 높을 수 밖에 없다고 단언하고 있다. 결국 자본가들의 경제력과 임금소득자의 경제력 격차는 갈수록 벌어질 수 밖에 없다는 암울한 전망을 담고 있다. 주목할 것은 이런 그의 분석이 철저히 데이터에 근거하고 있다는 점이다. 피케티는 미국, 영국, 프랑스, 인도 등 20개 국가의 300년에 걸친 자료를 분석했다. 두번의 세계대전과 대공황과 같은 특정시기를 제외하고는 소득 불평등은 꾸준히 심화돼왔으며 지금의 결과를 낳았다고 말하고 있다.

'글로벌 부유세'논란..주류학계의 흠집내기
 
더 충격을 준 것은 그가 제시한 해법이다. 소득 상위 1%의 부자들에게 개별 국가를 넘어 세계적으로 함께 '글로벌 부유세'를 도입하자고 주장한다. 부동산과 금융자산에 10%의 부유세를 물리고 더 나아가 최고 80% 가까운 누진적 세금을 부과하자는 것이다. 과격하다는 평가 속에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폴 크루그먼'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가 "최근 10년 이래 가장 중요한 경제학 책"이라고 극찬했고, 오바마 대통령이 백악관으로 초대해 소득 재분배에 대한 조언을 듣기도 했다. 출판사인 미 하버드대 출판부 사상 한 해 동안 가장 많이 팔린 책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이른바 '피케티'신드롬이다.

당연히 보수층과 주류 경제학자들의 반론과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피케티의 이론은 각 국가들의 세금제도의 변화와 상속제도 등을 간과하고 있다." "세계 여러 정부가 공조할 수 있겠느냐는 점에서 현실성이 없다. 이데올로기적 장광설로 가득하다."는 반발이 거세다.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는 통계분석의 오류를 지적하고 나섰다. 일부 데이터를 입력하면서 실수가 있었으며 통계 처리과정에서 일부 자료를 임의로 변경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피케티 교수는 담담하다. "일부 자료의 입력에 문제가 있었을 수 있지만 그것들이 책의 결론에는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책을 낼 때부터 자신이 수집한 자료를 온라인으로 모두 공개했던 그였다.

어쩌면 피케피 교수의 파격적 주장을 학계가 계속 인용하고 논쟁의 주제로 삼는 것은 정곡을 찔렀기 때문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주류 경제학에서는 감히 펼칠 수 없던 논리, 현재의 세계경제를 보노라면 언뜻 머릿 속에 떠올릴 수 있는 것들을 가감없이 이론으로 펴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뉴욕타임스 등 진보성향이 강한 언론에선 반론과 비판을 보수진영의 '흠집 찾기'로 보는 양상이다. 폴 크루그먼은 "FT가 몇가지 분명한 오류를 발견하긴 했지만 피케티의 주장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라고 선언했다.

 더 이상 숨길 수 없는 '부의 편중'

그럼에도 신자유주의의 유효성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이른바 '메인스트림'학자들은 뭔가 이 반짝스타를 평가절하하고 싶은 욕구가 왕성해보인다. 뉴욕타임스의 컬럼니스트 데이빗 브룩스의 글이 그 중 하나이다. "중도와 보수는 부의 편중이 가져오는 문제를 인정해야한다. 그리고 피케티의 주장처럼 성장과 저축, 투자를 징벌하기보다 이를 보상해주는 상반된 어젠다를 지지해야한다. 상류층을 끌어내리는게 아니라 빈곤층을 끌어올리는 것이 불평등 해소에 더 효과적이었다는 점이 역사적으로 입증됐다고 강조해야한다. 이렇게 성난 진보주의에 맞서야한다." 

필자는 또 한번 피케티의 손을 들어줄 수 밖에 없었다. 브룩스의 논리는 그럴 듯 하지만 다시 읽어보면 우리가 어디서 많이 듣던 얘기가 아닌가? 피케티 신드롬은 미시적으로는 주류 경제학계의 아집과 단결을 흔드는 손이고, 거시적으로는 심각하지만 심각하게 다뤄지지 않는 세계 공통의 양극화 문제 논쟁에 불을 붙인 사건인 셈이다. 피케티의 저서'21세기 자본'은 묘하게도 신자유주의의 본부격인 IMF와 세계은행이 불평등의 해법을 찾느라 고심하고 있는 시점에 나왔다. IMF는 세계적인 양극화를 극복할 방법을 찾고 있다. 양극화가 너무 심해서 많은 이들이 고통받기 때문이라기 보다는 그것 자체가 성장의 발목을 잡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격하고 이상적인' 피케티의 논리와 근거자료들을 우회해갈 방법을 찾기는 힘들어보인다. 정작 "나는 맑스주의자가 아니며 자본주의를 싫어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피케티 교수가 그들에겐 당황스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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