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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학교 담장 앞 인분 테러…누가, 왜?

[월드리포트] 학교 담장 앞 인분 테러…누가, 왜?
중국인들은 대륙인답게 참 무던하고 참을성이 많습니다. '만만디'를 제대로 느끼게 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지난해 어느 날 출근길이었습니다. 베이징 도심을 관통하는 창안대로는 언제나 막힙니다. 그런데 그날은 유별났습니다. 다른 차선은 조금씩이라도 차량이 앞으로 움직이는데 한 차선만 꼼짝도 못하고 서 있었습니다. 바로 옆 차선으로 옮겨 서서히 앞으로 나아가 보니 막힌 차선 한가운데 승용차 한 대가 서 있었습니다. '고장인가?' 생각하며 가까이 다가갔다가 지나치다가(?) 기함했습니다. 조수석 차문이 활짝 열려있고 한 여성이 2~3살쯤 돼 보이는 유아를 차 밖으로 팔을 뻗쳐 내놓은 뒤 소변을 보게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더 놀란 것은 이에 대한 중국인들의 반응이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같은 일이 벌어졌다면 주변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했을까요? 당장 뒷 차 운전자가 뛰어나와 문제의 여성에게 욕을 했을 것입니다. 주변 차량들도 경적을 울리며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을 터입니다. 반면 중국인들은 누구 한 명 뭐라 하는 사람 없이 느긋하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뛰어나와 항의하는 운전자는커녕 경적 소리 한 번 없었습니다. 정 급한 차량은 옆 차선으로 어렵게 끼어들어 돌아갔습니다. 그래도 여성에게 한 마디 불평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 바쁜 출근길에 말입니다.

반대로 중국인이 한번 욱하면 상상을 초월하는 반응이 나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동안 무던하게 쌓아오던 분노와 울분이 화산처럼 폭발하는 듯합니다. 뭐가 씌인 듯 격렬하게 반응합니다. 중국인들의 그런 기질을 떠올리게 하는 일이 랴오닝성 선양시 한 음악학교에서 벌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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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흘전 선양시의 한 음악학교에 인분을 실어 나르는 차량 한 대가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학교 담장을 따라 100미터 구간에 인분을 잔뜩 뿌려놓고 떠났습니다. 난리가 났습니다. 끔찍한 악취에 학교 학생들은 모든 창문과 문을 꼭꼭 닫아야 했습니다.

새어 들어오는 냄새를 막기 위해 창문틀에 테이프를 바르기까지 했습니다. 학교 주변을 지나는 행인들은 코를 감싸 쥐고 종종 걸음을 쳐야 했습니다. 주변 주민들의 신고가 관할 행정관서와 파출소에 폭주했습니다. 누가 이런 엄청난 테러를 자행 했을까요?

범인과 그 동기는 몇 시간 지나지 않아 바로 드러났습니다. 사정을 안 학교 안팎은 기절초풍했습니다. 학교 담장에 인분 테러를 한 장본인이 바로 학교 당국이었기 때문입니다. 이유는 노점상을 쫓기 위해서였습니다.

이 학교의 많은 학생들이 점심시간에 교내 식당을 이용하기보다 학교 밖 노점상들의 음식을 즐겼습니다. 학생들이 철제 난간에 까맣게 달라붙어 틈새로 돈과 음식을 주고받는 광경은 매우 익숙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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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측은 이런 상황이 대단히 마뜩지 않았습니다. 노점상들의 음식이다 보니 위생을 담보할 수 없었습니다. 실제 노점상 음식을 먹고 배탈을 겪은 학생도 있었습니다.

학교는 관할 청관(우리나라의 노점 단속반에 해당)에 여러 차례 신고했습니다. 하지만 그때  뿐이었습니다. 단속이 있은 뒤 하루만 지나면 어김없이 노점들은 다시 나타났습니다. 그렇다고 청관이 매일 지킬 수도 없었습니다. 도로 교통에 더 심각한 피해를 끼치는 노점을 단속하기도 바쁘기 때문입니다.

결국 학교 당국이 선택한 극약 처방은 스스로에게 인분 테러를 가하는 것이었습니다. 기가 막힌 냄새에 학생들은 담장 쪽으로 접근할 수 없었고 노점들은 음식 장사를 할 꿈도 꾸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사연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중국 네티즌들이 들썩였습니다. 학교 측의 입장을 옹호하는 글을 찾기 어려웠습니다. 학교의 비상식적인 처사를 맹비난하는 글은 봇물을 이뤘습니다.

학교의 대응이 상식 이하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노점상을 쫓고 싶다고 제 발등을 찍는 일이 가당키냐 하냐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정 위생이 걱정스러우면 지역 사회와 함께 노점상의 위생개선을 지도, 관리하면 되지 않느냐고 지적했습니다. 학교 주변의 질서가 문제가 되면 노점상들이 영업을 할 수 있는 공간을 따로 정해 정비하면 되지 않느냐고 꼬집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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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학교 측의 비교육적 행태가 도마 위에 올랐습니다. 학교는 학생들에게 단순히 지식을 전수하는 공간이 아닙니다.

지역 사회인으로서, 국민으로서, 세계인으로서 바람직한 가치관과 태도, 어울려 사는 지혜를 가르쳐주는 곳입니다.

그런데 마음에 들지 않는 상황을 해결하겠다며 이런 극단적인 방법을 강행하는 학교의 모습에서 학생들이 무엇을 배우겠느냐고 비난했습니다. 대화와 양보를 통해 갈등을 해소하기보다 과격한 수단으로 다툼을 부추기는 습성만 배우지 않겠느냐고 꾸짖었습니다.

결국 학교 당국은 신문에 광고까지 내서 지역 사회에 사과했습니다. 물의를 일으킨 데 대해 백배사죄했습니다. 아울러 담장 앞에 뿌려놓은 인분을 깨끗이 치우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여기에 대한 한 네티즌의 댓글이 인상적입니다. '담장 앞을 치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학교 당국자들의 머리와 마음을 깨끗이 치우는 일이 더 시급해보입니다.'

감정에 치우쳐 선택하는 극단적인 방법은 당장에는 효과를 볼 수 있을지 모르지만 더 큰 분란을 일으킵니다. 격랑이 이는 감정의 파고를 잠재우고 잔잔한 수평선 위를 넘어보면 이성적인 바른 길이 보입니다.
하지만 머리로는, 말로는 쉽게 이해되지만 실제 행동에 옮기기는 너무나 어렵습니다. 저조차도 거의 매일 욱하는 마음에 격한 말을 뱉거나, 과한 행동을 한 뒤에 후회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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