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형의 사소하게] 대통령의 눈물로 향한 어떤 시선

이주형 기자 joolee@sbs.co.kr

작성 2014.05.21 09:36 수정 2017.02.14 19:12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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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사 만 3년이 안된, 초짜 기자 시절의 얘기다. IMF 직후라 온 나라가 어려웠다. 당시 나는 '김동길의 선데이매거진'이란 주간 시사매거진 프로그램을 제작하고 있었는데, 한번은 봉천동 달동네에 사는 한 가정의 이야기로 약 20분 길이의 리포트를 만들었다.

변변한 놀이터 하나없는 달동네에서 어린 남매 둘을 데리고 힘겹게 살아가는 나이많은 홀어미 앞에 닥친 현실은 비정(非情)했다. IMF로 인한 실업, 그리고 곧 시작될 마을 재개발로 인한 주택 철거.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하는 심정으로 집집마다 일일이 방문하며 찾아낸 사연인데다 그 집의 처지도 딱해 꼭 '감동적인' 방송으로 만들어 보고 싶었다.(는게 당시의 내 심정이었다)  

촬영 둘째날이던가, 작고 어둡고 쿰쿰한 방에서 시작한 인터뷰가 길어지고 있었다. 인터뷰는 어느 순간부터 제자리를 맴돌았다. 기자는 새로운 팩트보다는 인터뷰이의 눈물을 원했다. 한 시간 가까이, 어쩌면 잔인한-당시로서는 '감동적인' 방송을 위한- 질문이 계속됐지만 아주머니는 끝내 눈물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기자는 포기하지 않았다.

눈물이 진심과 진실을 보여준다는 생각에 사로잡혀있던 기자는 이튿날 다시 달동네를 찾아가 인터뷰를 더 했다. 한동안 차분히 말을 잇던 아주머니의 눈가에 눈물이 고이더니 어느 순간 주루룩 흘러내렸다. 아니, 흘려주었는지도 모른다.

그 사이를 놓치지 않고 카메라가 아주머니의 눈가로 '줌-인(zoom-in)'했음은 물론이다.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나고서야 깨달았는데, 그것은 비정(非情)한 장면이었다.

호의에서 시작했지만 선정적일 수 있는 장면이었다. 이론이 있을 수 있지만 어쨌거나 '지금의 나'는 다소 그렇게 느낀다. 그것은 일종의 '연출'이었을까?

어제 박근혜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에 대한 대국민 담화에서 눈물을 흘렸다. 기자 질문을 받지 않는 '담화'형식이었기 때문에 지난 시절의 나처럼 눈물을 사실상 강요했던 사람도 없었으니 스스로 무엇인가에 북받쳐흘린 눈물이었을 것이다. CNN과 NHK도 곧바로 화면을 받아 방송할 정도로 이 장면은 눈길을 끌었다.

그런데, 담화 후반부 박 대통령이 눈물을 흘리는 순간 카메라가 움직였다. 박 대통령의 얼굴로 이른바 '줌-인(zoom-in)'을 한 것이다. 보통 이런 형식의 대통령 담화나 기자회견에서는 '줌-인'같은 카메라 '조작'(가치중립적인 의미로)을 하지 않는다. 기껏해야 동시에 찍고 있는 또다른 카메라로 잡은 다른 각도의 장면을 편집해 내보낼 뿐이다. 그것은 그 사람의 말 이외에 다른 어떤 것에도 주목하지 말라는, 그래서는 안된다는 영상적 선언인 것이다.

'줌-인'이라는 기법은 사람의 눈이 보는 방식이 아니다. 그나마 사람 눈과 닮은 카메라 기법은 고개를 돌려 '팬(pan)'하거나 고개를 끄덕여 '틸트-업/다운(tilt-up/down)'하는 것이다. 피사체와 카메라 사이의 현실적 거리감을 파괴하여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특정한 정서적 효과를 불러일으키는 '줌-인'은 어떤 의미에서는 시각적 강요이고 폭력이다. '대통령의 눈물에 주목해달라'는 메시지인 동시에 말의 내용보다는 감정에 호소하는 영상 언어인 것이다.

다른 일도 아닌 세월호 참사라는 엄중한 사안에 대한 엄중한-다시말해 감정적 접근보다는 고도의 이성적 접근이 필요한- 대통령 담화 생중계 방송에서 어떻게하여 대통령 눈물로 향한 '줌-인'이 구사되었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다만 그 '줌-인'이 17초에 이르도록 길었으며, 이번 중계는 방송사 풀(pool) 중계로 순번에 따라 이루어졌다는 사실만 전해들었다.

어느덧 만 20년 가까이 언론사밥을 먹었다. 그동안 이런 형식의 담화에서 대통령을 향한 카메라 '조작'(다시한번 말하지만 가치중립적인 의미로 썼다. 정 뭣하면 '기법'이라고 하자)이 구사된 것은 처음 본 것 같다. (내 기억에는 없다. 주변의 몇몇 고참 카메라 기자들에게 물어봐도 본 적이 없다고 한다)

그 때 그 인터뷰를 한 지 20년 가까워오는 지금, 초짜 기자 시절의 빛바랜 화면을 다시 꺼내보면 아주머니의 눈물, 그리고 느릿느릿하면서도 집요했던 '줌-인', 그 장면에서 아직도 얼굴에 미열이 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