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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후쿠시마 코피' 논란, 일본 사회의 터부를 찔렀다

[월드리포트] '후쿠시마 코피' 논란, 일본 사회의 터부를 찔렀다
지난 보름 동안, 일본은 만화 '맛의 달인'의 이른바 '후쿠시마 코피' 논란으로 뜨거웠습니다.

원전 재가동 문제로 국론이 쪼개진 상황과 겹치면서, 후쿠시마 방사선 피폭 문제는 논란을 부르기에 충분했습니다. 더구나 단행본만 1억 권 넘게 팔릴 정도로 대중적인 사랑을 받는 유명 만화 '맛의 달인'이 이 문제를 정면으로 다뤘다는 점에서 휘발성은 더 컸습니다.

일본 정부는 발칵 뒤집혔습니다. 관방장관, 환경장관, 부흥장관, 소비자장관. 장관만 4명이 연일 '유감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아베 총리도 지난 주말 후쿠시마 시찰에서 "근거없는 풍문에 정부가 단호히 대응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힐 정도였습니다.

원전 재가동에 찬성하는 우파 성향 언론들도, 후쿠시마 주민들의 걱정과 반발을 대대적으로 보도하면서 '맛의 달인 때리기'에 나섰습니다. 방사선 피폭이 발생한 것은 사실이지만, 코피를 쏟을 정도는 아니라는 전문가들의 반응도 적절히 섞었습니다.

반면 원전재가동에 반대하는 진보성향 언론과 시민단체들은 "의혹을 입에 담지도 못하느냐"며 '맛의 달인 감싸기'에 적극 나섰습니다. 몸 상태가 이상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을 '기분 탓'이라고 찍어눌러서는 안 된다는 게 요지였습니다. 역시 후쿠시마 주민 반응을 다뤘는데, 이번에는 "잊혀져 가는 후쿠시마의 방사선 피폭 문제를 다시 일깨워줬다"는 긍정적인 반응을 중심으로 보도했습니다.

'언론과 표현의 자유' 대 '그에 따르는 사회적 책임'

지난 보름간의 논란은 이런 프레임 속에서 진행됐습니다.

일단 '맛의 달인' 측이 한발 물러섰습니다. 어제(19일) '맛의 달인'을 싣는 '빅코믹스피리츠' 최신호가 나왔는데, 10페이지에 걸친 특집기사에서 '맛의 달인' 측은 "문제제기의 의의는 있었다"면서도 "표현방식을 재검토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맛인 달인'은 예정됐던 대로 당분간 휴재에 들어간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특별기사를 꼼꼼히 읽어보면, '맛의 달인' 작가 가리야 데츠씨의 생각은 여전히 조금 다른 것 같습니다. 특별기사에 나타난 작가의 입장을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건강에 이상을 느끼고 있는데도 '기분 탓'이라는 말만 들을 수 있을 뿐, 자신의 증상을 입 밖에 내는 것조차 불가능한 사람들, '후쿠시마 풍문피해를 조장하는 무신경한 사람들'로 낙인찍혀 심한 비난을 받은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었다"

"'소수의 목소리니까' '인과관계가 없는 걸로 됐으니까' '다른 사람을 불안하게 하는 건 좋지 않으니까'라는 이유로 이들의 목소리를 싣지 않는 것은 잘못이다"   


'빅코믹스피리츠' 편집부는, 가리야 데츠씨의 이런 판단을 존중해서 '맛의 달인'을 게재했다고 밝혔습니다. "작가의 생각을 세상에 전할 의의가 있다고 편집책임자로서 판단했다"고 썼습니다.

더구나 작가 가리야 데츠 씨는 후쿠시마산이라는 이유로 방사선 검사에 안전 판정을 받아도 팔리지 않는 이른바 풍문피해를 계속 비판해 왔다는 점에서, '맛의 달인'이라면 이런 목소리를 다뤄도 좋겠다고 판단했다는 게 편집부의 설명입니다.

여기까지 읽고 나자, 이번 논란의 프레임이 제게는 조금 달리 보였습니다.

'사회적 터부는 건드리지 않는 일본적 사고방식' 대 '만화 장인의 고집(고다와리, こだわり)'

WAN(여성행동네트워크) 우에노 이사장은 "3.11 동일본 대지진은 너무도 고통스러워서, 아예 없었던 일처럼 여기고 싶은 게 일본 사람들의 솔직한 심정이다"라고 지적한 적이 있습니다. 일본 사람들에게 3.11은 지우고 싶은 기억입니다. 지금 남기고 싶은 것, 아니 남겨야 하는 것은 '고난을 이겨내는 일본'입니다.

이런 사회적 합의(?)에 순응하고, 민폐(메이와쿠, めいわく)를 끼치지 않는 게 일본적 사고방식이고 일본적 미덕일 겁니다. '맛의 달인'은 '잘 정리되고, 차근차근 극복해 나가고 있는 동일본 대지진'이라는(어쩌면 '이어야 하는') 일본 사회의 터부를 정면으로 건드린 셈입니다.

반면 작가 가리야 데츠 입장에게서는, 자신의 작품을 치우침없이 완성하고 싶은 작가적 고집이 엿보입니다. 수의 많고 적음이나 완벽한 과학적 인과관계 보다는 '그런 사람이 그곳에 있다는 사실'을 반드시 그리고 싶은...

후쿠시마 방사선 피폭 상황의 진실이 어떠한지는 여전히 잘 모릅니다. 직접 취재를 하지 못한 탓에 확실히 말씀드리지 못하는 측면도 있고, 또 무엇보다 피해가 현재 진행형이라는 사실도 있습니다.

지난 일요일 교도통신은 후쿠시마현 아동 50명이 갑상선암 확진 판정을 받았다는 소식을 전했습니다. 동일본 대지진 당시 18세 이하였던 후쿠시마 아동 29만 명을 상대로 검사한 결과입니다. 의심 아동도 39명입니다. 일반적으로 10대 갑상선 암은 100만 명에 1~9명 꼴이니까, 분명히 기준치를 상회합니다.

그럼에도 일본 환경성은 다른 지역 발생률과 차이가 크지 않다며, 방사선 피폭으로 갑상선암이 특히 많이 발생한 것으로 볼 수 없다는 견해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후쿠시마 코피' 논란은 일단락된 게 아니라 수면 아래로 잠복했을 뿐입니다.
문제를 직시하려는 또 다른 고집(고다와리, こだわり)을 가진 사람이, 일본사회의 터부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일은 언제든지 다시 나타날 수 있는 상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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