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SBS 뉴스 상단 메뉴

[취재파일] '권력'이 '참사'에 대처하는 방식

‘권력’과 ‘권위’의 상관관계

[취재파일] '권력'이 '참사'에 대처하는 방식
“영국은 국왕 때문에 민주주의가 발전했다.”

대학시절, 정치학 입문 교수의 말입니다. 유럽 근대 민주주의는 전제 군주에 대한 반작용으로 태동했습니다. 교과서에도 실려 있습니다. 적어도 제 상식선에서 왕정과 민주주의는 물과 기름입니다. 하지만, 교수의 말을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영국 민주주의는 국왕이 독점하던 ‘권위’와 ‘권력’ 가운데, 의회가 그 ‘권력’만 떼 가면서 시작됐다. 달리 말하면, 영국 의회는 권력을 가져온 대신, 권위는 국왕의 몫으로 남겨뒀다. 국민들은 지금도 국왕을 존경하지만, 의회를 존경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지금도 의회 권력의 수장은 TV 토론회에 걸핏하면 출연해 허구한 날 야당과 전문가에게 두들겨 맞는다. 방송은 이런 모습을 여과 없이 내보낸다. 권위를 제거한 의회 권력은 영국 민주주의의 뼈대가 됐다. 이게 바로 영국 민주주의의 힘이다.”

깍듯한 의전 서비스

참사 하루 뒤인 지난달 17일, 광주 공항에 도착해 사고 현장으로 향했습니다. 무안-광주 고속도로 톨게이트 한 쪽을 경찰이 막아섭니다. 2차선 도로, 톨게이트는 두 개 뿐이라 차들이 잠시 정체합니다. 빨리 가야 하는데 마음이 급합니다. 그런데, 톨게이트 주변 갓길에 검은색 차들이 여럿 서있습니다. 그간 취재 현장에서 봐 왔던 의전 차량입니다. 조금 있으면 높으신 분이 지나가 막아놨던 모양입니다.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여기만 그런 게 아니라 가는 길목 길목이 다 그랬다고 합니다. 아수라장 속에서도, 우리 권력은 경찰의 깍듯한 돌봄 서비스를 받고 있었습니다.

우리 사회는 권력과 권위가 상응하는 거라고 여깁니다. 의전은 권력이 권위를 과시할 수 있는 합법적인 방식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런 방식으로 아비규환에 입성했던 권력은 그간 겪어보지 못했던 상황에 직면하게 됩니다. 이런 깍듯한 의전의 모습, 마치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한 ‘역설적인 복선’과도 같았습니다.

## 첫 번째 장면

처음 도착한 곳은 목포 한국병원입니다. 참혹한 현장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아 입원 치료를 받거나, 희생된 분들이 안치된 곳입니다. 기자들이 워낙 많이 몰려있으니, 정치인들에겐 얼굴 홍보하기 이만한 장소도 없습니다. 권력은 먼저 병원 관계자와 10분 정도 얘기를 나누며 환자 상태를 보고 받습니다. 이어 유족을 찾아 조문합니다. 하지만 유족은 권력이 달갑지 않습니다. 그냥 가시라고, 다 필요 없다고 말합니다. 머쓱해하던 권력은 잠시 묵념을 하고 기자들 앞으로 걸어와 애도의 뜻을 밝히더니 검은색 차를 타고 유유히 떠납니다.

## 두 번째 장면

사고가 나고 이틀 뒤인 18일. 교육부 장관이 단원고 학생의 빈소가 마련된 안산의 한 장례식장을 찾습니다. 이 때 옆에 있던 장관 수행원이 유족을 향해 “교육부 장관님 오셨습니다.”라고 말합니다. 누가 봐도, 높으신 분 오셨으니 격식 갖춰달라는 표현입니다. 황당한 유족은 퉁명스럽게 말합니다. “그래서 저보고 어쩌라고요?”

팽목항_500


## 세 번째 장면

20일 저녁. 공무원 4명이 팽목항 상황실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으려다 실종자 가족과 유족에게 제지당합니다. 사흘간의 파견 근무를 마치고 직원들과 기념 촬영을 하다가 사단이 생겼습니다. 가족들은 거세게 항의했습니다. 결국 해당 공무원은 사표를 냈습니다. 청와대는 사표를 즉시 수리했습니다.

## 네 번째 장면

24일 장례 절차 지원을 위해 파견된 보건복지부 공무원들이 보건소 구급차로 퇴근한 사실이 알려졌습니다. 숙소로 가기 위해서였습니다. 팽목항을 들어가거나 빠져나오기 위해선 20분 이상 걸어야 합니다. 혹시 모를 응급 환자를 위해 차량 진입이 통제됐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대부분 걸어 다녔습니다. 급하면 뛰어 다녔습니다. 이들은 구급차를 타고 다녔습니다.

권위의 타성에 젖은 권력의 자화상

일련의 사건들 때문에 권력은 평소 겪기 어려운 면박이란 걸 당했습니다. 구설에 올랐고, 부적절한 처신이다, 황당한 실수다, 비난이 거셌습니다. 하지만 현장에서 권력들을 지켜봐왔던 제 경험상, 이건 단순 실수가 아니었습니다.

“장관님 오셨습니다.”는 촌극은 권위의식에 젖어 있던 고위 공직자의 타성과, 눈치 없이 이를 기계적으로 적용했던 권력의 수하가 있었습니다. 그간 권력이 국민 앞에서 아무런 거리낌 없이 해왔던 권위의 확인 과정, 쉽게 말해 의전의 반복학습이 자연스레 흘러나온 결과물이었습니다.

‘기념사진 촬영’도 마찬가집니다. 관치 우월주의, 권위 행정, 전시행정 앞에서 실종자 가족에 대한 공감 능력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권위에 중독된 사람들에겐 공감 능력은 권위를 깎아 먹는 행동입니다. “어려운 사람들 일일이 상대하다보면 호구로 안다.”는 말은 권력에게 암묵적인 격언과도 같습니다. 자의든 타의든 권력은 권위란 이름으로 공감 능력을 숨기면서 살았고, 그렇게 행동했습니다.

구급차라고 다를까요. 구급차 주관 부서인 보건 복지부 공무원들이, 바로 그 구급차를 타고 숙소까지 퇴근했습니다. 딴 이유 없습니다. 지금까지 그렇게 해왔기 때문입니다. 일종의 관성입니다. 날카로워진 국민 정서를 인식하지 못할 정도로 권위 의식의 중독성은 강했던 겁니다.

권위에 중독된 권력, 그 비효율성

이게 단순히 무례로 끝났다면 차라리 다행입니다만, 극단적인 비효율로 치닫기도 했습니다.

24일 오전, 범정부 대책위가 브리핑에서 “민간 잠수사 가운데 들어가지도 않고 사진만 찍고 간 잠수사가 있다.”고 불쾌감을 나타납니다. 사실 사고 초기부터 정부와 민간 잠수사들 사이에서 불협화음은 계속됐습니다. 이틀 뒤 브리핑에선 한 민간 잠수사가 정부 브리핑 현장에 나타나 강하게 따져 묻습니다. 이 장면은 고스란히 전파를 탔습니다. “사진만 찍고 갔다는 그 말, 책임질 수 있냐?”고 물었고, 당황한 정부는 “일부가, 극히 일부가…”라며 얼버무렸습니다.

정부가 민간 잠수사의 진입을 의도적으로 배제했고, 심지어 방해까지 했다는 의혹에 실종자 가족들은 분개했고, 항의는 계속됐습니다. 일각에서는 특정 업체에 대해 편의를 봐줬다는 의혹까지 제기됐습니다. 뭐가 맞는지 앞으로 상황을 지켜봐야 하겠지만, 이번 일은 관치 우월주의가 재난 복구의 저효율을 불러왔던, 대표적 사례로 남을 것 같습니다.

일각에선 민?관 갈등으로 표현했지만, 엄밀히 이건 갈등이 아닙니다. 각기 다른 단체에서 온 민간 잠수부가 체계적으로 움직이는 건 불가능합니다. 중심을 잡는 게 정부의 역할입니다. 한시가 급한 상황, 그걸 못했다면 이건 전적으로 정부의 무능 때문입니다. 하지만 정부는 자원봉사자가 하면 얼마냐 하겠냐는, 보조나 맞춰야 한다는 식의 권위 의식에 젖어있었습니다. 심지어 브리핑 장소에서 대놓고 민간 잠수사를 힐난했다는 점만 봐도, 관 우월주의가 얼마나 강했는지 보여주고 있습니다. 대구 지하철 참사 때도, 태안 기름 유출 때도, 비슷한 진통을 겪었지만 시간이 흘러도 나아진 게 없었습니다.

그리고 언론…

이쯤 되면 언론 얘기 안할 수 없습니다. 정부가 말하는 대로 받아 적었던, 쉽게 말해 정부의 권위에 지나치게 편승했던 언론의 행태 역시 뜨거운 감자였기 때문입니다.

솔직히 말씀드릴까요. 초반에는 억울함도 있었습니다. 24시간 속보를 이어가야 하는 상황에서, 어떻게든 뉴스를 해내는 게 중요했습니다. 평소같이 사실 확인을 할 여력이 없었습니다. 바다 아래로 내려갈 수 없었기 때문에, 정부에서 잠수사 500명 투입했다면 500명 투입했다고 기사를 썼습니다. 사고 사흘 뒤 침몰 현장에 직접 다녀오긴 했지만, 조류가 너무 거세 가만히 서 있기조차 어려웠고 확인은 불가능했습니다. 과도한 방송 시간이 문제였지만, 이 역시 뭐라고 할 수 없는 게, 만일 그 시간에 뉴스를 안 하고 다큐멘터리나 드라마를 틀었다면 분명 상업방송이라 어쩔 수 없다, 뉴스를 축소시킨다는 식의 비난이 잇따랐을 겁니다.

하지만, 그간 뉴스의 방식을 곰곰이 생각해보면 시청자들의 비난은 결과적으로 옳았습니다. 언론에 대한 불만이 세월호에서 곪아 터진 것일 뿐, 그간 언론 역시 권력의 권위에 지나치게 의존했습니다. 진보 언론이든 보수 언론이든, 정부 기관의 발표라면, 일단 기사부터 써왔습니다. 찬양하던 비판하던, 그건 나중 문제였습니다. 모든 언론이 ‘권력’에 빌붙지는 않았지만, ‘권위’에는 전적으로 기생해 왔고, 그 권위를 검증하는 저널리즘은 전무했습니다. 정부 기관에 대한 권위를 일단 접고 들어간 탓입니다.

[8리/나리] 조문


권력과 권위의 선긋기

권력과 권위. 적어도 며칠 동안 사고 현장에 있으면서, 권력의 꼬리표에 있었던 이 권위란 녀석이 얼마나 빈껍데기에 불과했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단순히 유족과 실종자 가족에 대한 무례를 넘어, 엄청난 비효율을 초래했다는 점도 뼈저리게 열공했습니다. 권력과 권위를 분리시켰던 영국 민주주의, 분명 한계도 있다지만 부럽게 느껴졌던 이유입니다.

이번 참사와 얽히고설킨 일련의 사건이 단순히 촌극으로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권력과 권위의 선긋기, 더 나아가 긴장 관계가 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안 그러면, 이런 일들은 계속 반복될 수밖에 없을 겁니다. 앞으로 수많은 대책과 보완점이 나오겠지만, 좀 더 본질적인 고민을 해봤으면 좋겠습니다. 국가안전처 신설도 좋지만, 문제의 핵심은 권력의 마음가짐 아니겠는지요.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