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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팽목항의 못 다 한 이야기

[취재파일] 팽목항의 못 다 한 이야기
 '지금 이 땅에서 가장 큰 슬픔이 머무는 곳',  진도 팽목항에 취재 기자로 머물렀다. 개인적인 감정보다는 취재와 기사가 우선이었고 그러다보니 채 기사로 못 다한 이야기들이 마음 속에 조금씩 남았다. 방송 리포트의 한계 탓도 있었고, 다른 상황과 고민 때문에 못 다한 이야기들도 있었다. 이 자리를 빌어 기사로 못 다한 이야기를 털어본다.  

 #1. 서망 해변에 쓰인 편지
 지난 5일, 진도 팽목항에서 5백 미터 떨어진 서망 해변 모래 위에 짧은 글귀가 쓰였다. ‘정우야 돌아와’. 바다에서 알아볼 수 있도록, 사고 해역을 향해 큼지막하게 쓰인 글씨는 한동안 지나가는 이들의 마음과 눈길을 붙잡았다. 모래 위에 막대기로 그어 쓴 여섯 글자는, 말로 다 할 수 없을 만큼 먹먹한 데가 있었다.

 다음날, 무심한 파도가 편지를 쓸어가자 가족들은 다시 편지를 썼다. 이번엔 좀 더 길게. ‘정우야 보고 싶다. 집에 가자♡ 꼬옥 같이 가자’. 글씨는 여전히 크고 힘찼다. 슬픔을 넘어 사랑이 느껴지는 글씨였다. 나무 막대기로 모래 위 글씨를 꾹꾹 눌러쓰는 부모와 형제의 마음은 어떤 것이었을까.
 
세월호 보고싶다_2

 그 마음 들어볼 수 없을까, 바닷가에서 한나절을 기다렸지만 ‘편지의 발신인’은 결국 만날 수 없었다. 하루를 건너뛰고, 모래사장은 백지로 남았다. 근처를 순찰하는 경찰들에게 물어본 결과 ‘정우’ 학생의 어머니로 보이는 분과 젊은 남자 2명이 함께 글씨를 쓰는 걸 봤다는 얘기를 들었다. 매일 비슷한 시간 나와서 (그날은 나오지 않았다) 글씨를 쓰고 서로 기대어 한참동안 바다를 바라본다고 했다.

 세월호 사고를 당한 단원고 2학년 학생 가운데 정우라는 이름을 지닌 학생은 3명이 있다. 모두 성(姓)까지 같은 동명이인이다. 3명 모두, 구조되지 못했다. 2명은 차가운 시신이나마 가족 품으로 돌아가 안산 합동분향소에 위패가 놓였지만 단 1명의 정우는 오늘(14일)까지도 돌아오지 못했다. 마지막 남은 정우 가족만 팽목항에 남아, 매일 편지를 고쳐 쓴다.

 (*편지의 학생 이름은 가명을 사용했습니다)

#2 햄버거
 스물 다섯 아들은 햄버거를 좋아했다. 먹는 것도, 만드는 것도 좋아했다. 흔한 햄버거가 아니라 근사한 수제 버거 가게를 차리고 싶어 했다. 어머니는 돈이 없어 가게 차리는 비용을 보태줄 수 없었다. 돈을 모으기 위해 아들은 배를 탔다. 1박 2일 선상 아르바이트는 수입이 꽤 괜찮았다. 그게 마지막일 줄은 어머니도 아들도 몰랐다.

 사고 이후 팽목항 한켠에는 조그만 임시 햄버거 가게가 차려졌다. 가평에서 수제버거 집을 운영하는 김씨는 사고 소식을 듣고 한걸음에 달려와 이 천막을 차렸다. ‘세월호 사고 희생자 가족들과 슬픔을 함께 합니다’라는 뜻의 ‘함께버거’가 하루에도 수백 개씩 실종가 가족과 다이버들에게 전달됐다.

스물다섯 아들을 아직 찾지 못한 어머니도 매일 햄버거를 받으러 왔다. 햄버거만 보면 아들 생각이 난다고 했다. “우리 아들도 햄버거 가게 하려고 했다”면서 아픈 마음을 김 씨에게 조금씩 털어놨다. 가게 하나 차려주지 못한 게 너무 미안하고 슬프다고 했다. 입 안이 다 헤진 어머니를 위해 김 씨는 고기를 잘게 갈아 부드럽게 구웠다. “얼른 아들 찾아서 그만 와야 되는데”, “그럼요, 햄버거 그만 드셔야죠”하다 서로 목이 메었다.

 어버이날을 하루 앞둔 날, 팽목항 부두에 서서 하염없이 바다를 바라보던 어머니는 손에 든 햄버거를 바다로 던졌다. 아들을 위한 햄버거였다. 햄버거는 이내 바닷속으로 가라앉았다. 어머니는 눈물을 펑펑 쏟았다. 마침 근처를 지나던 카메라 기자가 날아가는 햄버거를 렌즈에 담았다. '아들을 위한 햄버거'로 인터넷에 돌아다닌 사진에는 이런 사연이 담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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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팽목항 미용실
 사고 20여 일째가 지나 팽목항에 미용실 자원봉사 천막이 생겼다. 조심스레 천막에 들어서는 아버지, 어머니들의 애틋한 사연을 미용 자원봉사자들이 전했다. 한 어머니는 자식이 어딨는지도 모르는데 머리를 자르고 단장하는 게 죄스럽다고 말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실종자 가족 사이에 “예쁘게 하고 있으니 자식이 돌아오더라”하는 얘기가 돌았다. 이 어머니도 그 말을 듣고 천막을 찾았다. 같은 얘기를 하는 부모들이 하나 둘씩 찾아왔다. 아무 얘기도 하지 않았던 다른 어머니가 떨리는 목소리로 “예쁘게 잘라주세요” 한 마디 남겼을 때, 전남 강진에서 온 
미용사는 직감적으로 알았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부모의 마음을 헤아려 미용사는 어느 때보다도 정성스레 머리를 잘랐단다.

#4. 청심환, 립글로즈, 인공눈물
 팽목항에는 실종자 가족과 다이버들을 위한 임시 약국도 세워졌다. 자원봉사를 나온 약사들이 사람들에게 필요한 약을 무료로 나눠준다. 주로 두통약, 소화제부터 시작해 파스, 피로회복제같은 약들이 잘 나간다. 수요가 몰리면서 한 때 약이 부족하기도 있었다.

 잘 나가는 약의 종류는 그때그때 바뀐다. 한 때는 청심환이 잘 나갔다. 계속 해서 실종자들이 수습될 때마다 가족들은 청심환을 털어 넣고 기다렸다. 역설적이게도, 가족들이 간절히 기다리는 건 더 큰 슬픔이었다.감당하기 힘든 슬픔에 대비하려고 가족들은 쓴 약을 삼켰다.

 언제부턴가는 입술에 바르는 립 글로즈와 구내염 약, 인공눈물 등이 잘 나가기 시작했다. 약사들도 의외의 물품들이었다. 의문은 금새 풀렸다. 찾아오는 실종자 가족마다 입술이 마르고 터 있었다. 나중에는 굳이 찾지 않아도 약사들이 립글로즈를 권했다. 입 안이 곪고 헐어 구내염 약도 필요했다. 인공눈물도 마찬가지였다. 자외선 탓도 있겠지만 너무 울어서 눈물도 말라버린 것 같다고, 한 실종자 가족이 말했다. 자원봉사를 나온 한의사는 '진액이 말라버린' 가족들이 많아 걱정이라고 했다. 슬퍼할 힘도, 다 해간다. 그래도 밤만 되면 여전히 팽목항 부둣가에는 애달픈 울음소리가 그치지 않는다. 

 못 다 한 것들이 이 뿐만은 아니다. 노란 리본에 쓰인 글귀, 절절한 부모의 편지, 밤을 새우는 자원봉사자들의 표정, 그 순간 순간의 감정과 모습들은 말과 글로 다 할 수 없는 것들 , 털어도 다 털 수 없는 것들로 남는다. 끝에서 끝까지 걸어서 10분 남짓 거리, 진도 땅끝의 조그만 항구는 기자에게 그렇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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