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장을 둘러싸고 8차선에 이르는 드넓은 길이 닦였습니다. 길 주변으로는 깔끔하고 보기 좋은 녹지가 새로 조성됐습니다. 공장 주위의 마을과 낡은 공장은 남김 없이 철거됐습니다. 그 잔해가 대로 한켠에 아직 쌓여있습니다.
시안시 근교의 한적했던 농촌 마을은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이 자리잡은 최첨단 IT 산업단지로 탈바꿈했습니다. '삼성의, 삼성에 의한, 삼성을 위한' 지역입니다.
시안시로서는 그럴만도 합니다. 삼성전자가 이번 공장 건설에 들인 투자액은 무려 70억 달러에 달합니다. 우리 돈으로 7조5천억 원을 훌쩍 넘는, 단일사업으로는 사상 최대 규모의 해외투자입니다. 게다가 단순한 굴뚝 산업이 아닙니다. IT 산업의 밑거름이자 정보화 사회의 쌀이라고 불리는 반도체를 만드는 산업입니다.
뿐만인가요? 이 공장에서는 삼성전자가 세계 최초로 개발한 입체형 낸드플래시를 처음으로 양산합니다. 입체형 낸드플래시는 삼성전자가 그 기술력을 세계에 유감없이 뽐낸 차세대 제품입니다. 메모리 반도체의 소형화가 회로 간섭 현상으로 한계에 부딪혔을 때 이를 입체화로 일거에 극복한 최첨단 기술입니다.
삼성전자와 함께 진출하는 60여개 국내 협력업체도 다 그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첨단 산업체들입니다. 반도체 생산을 위해 협력하는 화학 공장, 기계 공장, 물류 공장 등등 역시 최고도의 기술을 요구 받기 때문입니다.
우선 중국은 전세계 낸드플래시 소비의 50%를 차지합니다. 운송비를 고려할 때 소비시장에 가까이 갈 수록 유리한 것은 당연합니다. 아울러 반도체는 다른 어떤 제품보다도 적시 공급이 더욱 중요합니다. 따라서 막대한 시간이 걸리는 통관 절차를 생략할 수 있다는 점만으로도 현지 생산은 이롭습니다. 소비자의 니즈, 즉 요구사항을 현장에서 민감하게 반영할 수 있다는 점도 매력적입니다. 소비자와의 거리가 가까워지고, 접촉면이 넓어진다면 그만큼 더욱 원활하게 소비측의 욕구를 충족시켜줄 수 있습니다.
중국 시장에서 막대한 이윤을 얻는 삼성전자가 현지 경제 성장에 일조해야 한다는 중국 정부의 압력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경제에 미치는 정부의 입김이 막강한 중국에서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중국 정부가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는 서부대개발 사업의 거점을 마련했다는 점도 보이지 않는 이익입니다. 중국은 동서의 빈부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또 새로운 성장 동력을 얻기 위해 서부 지역에 막대한 투자를 감행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중국 시장에서의 기회는 서부에서 대부분 나올 것이라는 전망입니다. 삼성은 이에 접근할 수 있는 확실한 교두보를 마련했습니다.
중국 IT 산업의 메카로 성장하고 있는 시안에 터전을 잡음으로써 세계 경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했습니다. 관련 고급 인력을 상대적으로 저렴한 비용에 공급받을 수 있다는 잇점도 있습니다.
따라서 세계 시장에서 세계 최고의 기업들과 경쟁해야 하는 삼성전자의 입장에서 이번 중국 진출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입니다.
문제는 삼성전자에 있어 최선이 우리나라 입장에서 볼 때는 반드시 그렇지 않다는 점입니다. 아니, 이번 삼성전자의 중국 진출은 우리 경제에 만만치 않은 그림자를 드리웁니다.
우선 최첨단 산업체마저 우리나라를 떠나 해외로 나가야 하는 현실이 우려스럽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싼 인건비를 이용한 저부가가치 산업은 설 자리를 잃은지 이미 오래입니다. 대규모 생산설비와 기계화를 통해서, 또는 고도화된 기술을 이용한 고부가가치 산업에서 우리 경제는 살 길을 찾아왔습니다. 하지만 그마저도 이제 우리나라는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다는 뜻입니다.
무엇보다 기술 유출에 대한 걱정이 가장 큽니다. 물론 삼성전자측은 핵심 기술의 경우 전적으로 국내에서 연구, 개발되는 만큼 문제될 것이 없다고 설명합니다. 하지만 그것으로 마음 놓을 수가 없습니다. 반도체 공장은 그 어느 산업체보다 정교하고 안정적인 운용을 요구 받습니다. 전기나 물, 공기 등 공급의 안전성은 최고 수준이어야 합니다. 생산 전 과정이 대단히 치밀하게 설계되고 관리돼야 합니다. 이런 공장을 운용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고급 기술입니다. 중국은 시안의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을 통해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이런 귀중한 교육을 받게 된 셈입니다.
삼성전자는 또 핵심 기술 연구는 아니지만 소비자의 요구를 수용하고 응용할 수 있도록 하는 R&D, 즉 연구개발은 중국 현지에서 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이 또한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비싼 경험입니다. 소비자의 니즈를 만족시킬 수 있도록 창의력과 순발력을 발휘하는 개발 노하우는 핵심기술만큼이나 소중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삼성전자에 왜 해외로 나가냐고 따질 수 없습니다. 앞서 설명했듯이 세계 시장에서 경쟁해야 하는 처지에 국익을 이유로 발을 잡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로 인해 경쟁에서 밀려나 세계 시장에서 2, 3류 기업으로 전락한다면 그로 인한 손해가 훨씬 클 수 있습니다.
결국 우리가, 또 우리 정부가 꾀할 일은 국내 기업이 해외로 나가는 것을 막는 것이 아닙니다. 거꾸로 해외의 유수 기업이 우리나라에 투자할 수 있도록 환경과 여건을 조성하는 것입니다. 또는 우리나라 경제를 기반으로 제 2, 제 3의 삼성전자와 같은 기업을 키워내는 일입니다.
'공격이 최선의 수비'라는 명제는 축구에서만 통하는 금과옥조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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