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배우 김권, 실례지만 실제 ‘선수’는 아니죠?

“실례지만 실제로 호빠 선수는 아니죠?”

배우 김권(25)은 기자로부터 다소 무례한 질문을 받자 삭발한 머리를 쑥스러운 듯 매만졌다. “그럼요. 절대 아니예요.”라며 웃는 김권에게 “너무 진짜 같아서 그랬다. 미안하다.”고 사과를 건넸다. 그러자 김권은 한두 번이 아니라는 듯 “괜찮아요. 많이들 물어보세요.”라며 찡끗 웃어보였다.

종편채널 JTBC ‘밀회’에서 서한예술재단 서영우(김혜은 분)의 어린 애인이자 일명 호스트바 '선수'인 우성 역을 맡은 김권. 큰 역할은 아니지만, 김희애와 심혜진, 김혜은 등 걸출한 중견 배우들 사이에서 기죽지 않고 매력적으로 제 역할을 해내는 걸 보면 ‘신인이 맞나’ 하는 생각이 든다. 영우가 제 수족처럼 부리는 오혜원(김희애 분)을 은근히 깔보는 우성의 미묘한 표현력은, 너무 실제 같아서 신기할 뿐이다.

◆ “저 진짜 호빠 선수 아니예요”

무례한 호기심을 가진 건 기자뿐 아니었나보다. 김권은 “실제로 ‘밀회’ 스태프들이 ‘왜 이렇게 자연스럽나’라고 물어본다.”며 웃었다. “원래 관찰하고 공부해서 연기하는 걸 좋아해요. ‘밀회’를 앞두고는 배우 하정우 선배가 어둠의 세계를 그린 영화 ‘비스트보이즈’를 보고 많이 분석했어요. 가까운 분들 중에서도 독특한 제스처나 말투가 있다면 그대로 따라 해보기도 했고요.”

그렇게 탄생한 우성은, 흔히 생각하는 선수의 전형과는 거리가 있다. 잘생기고 한없이 가벼운 모습보다는, 은근하게 야욕까지 내비치며 인물들의 갈등에 불을 지핀다. “영우가 좋아해야 하니까 선수 같아만 보이면 안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영우가 반할 스타일이 뭘까 고민을 했어요. 너무 싸구려 같지 않으면서도 속내를 알 수 없는 그런 모습이요. 우성을 좋게 봐주신다면 제 고민들의 결과가 적중한 것 같아서 기분이 좋습니다.”

안판석 PD 역시 김권의 기대 이상 호연에 만족감을 드러낸 것으로 알려졌다. “정말 꼼꼼하시지만 신인이라도 늘 배려해주시는 연출 스타일에 감동받았다.”며 안PD에 감사함을 표하는 김권은 ‘밀회’ 촬영 현장이 학습장 같다며 웃었다. 특히 김혜은과 김희애, 심혜진이 극중 한껏 날을 세우고 연기를 하는 모습을 보면 신인으로서 깜짝 놀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라고 귀띔했다.

◆ 학교폭력 피해자에서 가해자, 호빠선수에서 학도병까지…

김권은 데뷔한 뒤부터 줄곧 강한 캐릭터만 연기했다. 영화 ‘응징자’에서는 주상욱 아역을 연기, 학교폭력 피해자를 연기했다. 슬픈 어린짐승처럼 눈물을 흘리던 김권의 눈빛은 많은 관객들의 뇌리에 박혔다. 이에 앞서서는 영화 ‘명왕성’에서 학교폭력 가해자 역할을 맡아서 소름 돋는 연기를 펼쳤다. 또 최근 TV조선 ‘불꽃속으로’에서는 최수종 어린시절을 그리며, 일제강점기 억압받는 조선의 젊은이자 학도병을 연기해 호평을 이끌어냈다.

“평범한 캐릭터 보다는 굴곡 있는 역할을 많이 맡은 것 같다.”는 질문에 김권은 “정말 운이 좋았던 것 같다.”고 말했다. 신인으로서는 쉽지 않은 도전이지만, 그런 도전들이 현재 김권의 열정을 만들어줬다는 것. 특히 ‘불꽃속으로’는 아역이긴 하지만 첫 주연작으로서 더욱 어깨가 무겁다.

“‘불꽃속으로’에서 시대극은 처음이고 또 최수종 선배님의 어린시절을 연기한다는 게 큰 부담으로 와닿았어요. 얼마 전에 극중 내용 때문에 삭발했는데요 전혀 슬프진 않았어요. 연기에 필요하다면 언제든 머리카락을 밀 준비가 돼 있어요. 이번 작품은 자기 관리가 얼마나 중요한지 그리고 내가 어떤 점이 부족하고 잘하는지를 잘 알게 됐던 중요한 기회였어요.”

◆ “모델에서 배우로, 언젠가는 영화감독 욕심도”

듣는 사람이 긴장할 정도로 김권의 연기에 대한 열정은 뜨거웠다. 사실 김권의 연예활동 시작은 배우가 아닌 패션모델이었다. 모델에이전시의 길거리 캐스팅을 통해서 장광효 디자이너의 쇼에 섰던 김권은 모델치고는 크지 않은 키 때문에 모델을 포기했고 스무살이 넘어서 연기의 진짜 재미를 알게 됐다.

“연기를 일찍 시작한 건 아니지만 ‘불꽃속으로’처럼 제 삶의 무게를 이겨내고 세상에 서는 작품들을 하면서 연기의 카타르시스를 느껴요. 조미료가 첨가되지 않은 그 날 것의 연기를 할 때 가장 행복하고요. 연기는 결국 사람들의 이야기이잖아요. 우리들의 이야기를 가장 잘 할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도전해보고 싶은 역할이 있나.”라는 질문에 김권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연산군’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영화 ‘헤드윅’을 인상깊게 봤다며 연출 겸 주인공을 맡은 존 카메론 밋첼의 천재성을 극찬했다. 이어 그는 오랜 시간이 흐른 뒤 연출도 해보고 싶다는 뜻을 조심스럽게 밝혔다.

“대학시절 권혁진 감독님의 수업에서 과제로 영화 ‘똥배우’를 연출한 적이 있어요. 많이 부족한 실력이지만 연출도 정말 재밌는 영역인 것 같아요. 제가 연출한 영화에서 연기도 해보고 싶어요. 물론 지금 하고 싶은 건 아니에요. 연출은 죽기 전에 해보고 싶어요. 정말 허세로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배우의 내공이 쌓이고 인생 공부를 충분히 했을 때요.”

신인배우는 있어도 작은 배우는 없다고 한다. 신인이지만 뜨거운 열정과 진지함으로 연기에 임하고 있는 김권의 포부의 크기만큼이나 멋진 성공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