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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사회가 도와야 할 '길고 힘든 싸움'…심리외상 치유

9.11겪은 미국의 심리치유 10년 "회피하지말고 맞서세요"

[월드리포트] 사회가 도와야 할 '길고 힘든 싸움'…심리외상 치유
 미국인들에게 9.11 테러의 상처는 컸다. 그 자리에 새로 세워지는 월드트레이드 센터 건물은 완공이 임박했지만 세입자와 입주기업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당시의 아픈 기억이 영향을 주고 있다는 추측이 많다. 3천 명의 인명피해와 함께 미국 사회가 직면한 것은 엄청난 심리적 외상이었다. 미국 본토가 공격받았다는 충격과 24시간 생중계됐던 현장의 모습은 생존자와, 희생자 가족, 구조대원과 뉴욕 시민, 그리고 전체 미국인들에게 적지않은 정신적 상처를 남겼다.

  10년 넘게 계속된 심리치료 지원 프로그램

 생존자와 희생자 가족, 또 구조대원들까지 최소 1만 6천 명이 이른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었고, 정신적 후유증에 시달린 시민이 15만 명에 이른다. TV로 지켜보던 사람들 중 상당수가 심리적 충격을 호소했다. 테러 1년 뒤 뉴욕 의학아카데미의 전화 조사 결과에서는 맨해튼 남쪽의 시민 중 7.5%가 정신 트라우마에 시달렸고, 9.7%가 우울증을 겪은 것으로 나타났다.

 미 연방정부와 뉴욕시는 대대적인 심리지료 지원프로그램을 10년 넘게 실시했는데, 예산만 우리 돈으로 4조 원 정도가 투입됐다. 이른바 9.11 정신건강 프로그램인데 3개 기관에서 동시에 실시됐다. 생존자와 희생자 가족, 구조와 피해복구에 참여한 사람들은 A그룹으로 분류돼 무제한 정신과 상담과 심리치료를 받게 했다. 일반 시민들이 포함되는 다른 B 그룹에는 비용 일부를 지원하는 정책이었다. 증상을 느끼는 사람이 시 정부가 지정한 기관과 병원을 찾으면 상황에 따라 치료비를 지원하는 방식이었다.

 9 .11 피해자들의 경우, 특히 현실의 상처를 없었던 일로 계속 회피하려는 증상을 보였다. 이런 본능은 오히려 근본적 치유를 가로막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최근에는 당시 상황을 3차원 컴퓨터 가상현실로 재현해서 보여주는 치료법도 사용되고 있다. 처음엔 고통스럽지만 정신적 트라우마를 만든 기억을 더 좋은 쪽으로 머릿속에 재구성해서 극복을 유도하는 것이다. 미국의 이런 국가적 대처는 사회적 위축과 약물중독, 자살 같은 극단적 선택의 2차 피해가 더 클 수 있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상처에 정면으로 맞선 9.11 생존자 스콧씨

 취재팀은 뉴욕에서 9.11 생존자인 스콧 게스만씨를 만났는데, 스콧씨는 대인기피증과 공황장애에서 10년 만에 회복된 경우였다.  경영컨설턴트로 일했던 스콧씨는 강연과 교육이 주업무였지만 테러를 경험한 이후 극도의 불안감 때문에 큰 빌딩에는 들어가지도 못하는 어려움을 겪었다. 당시 공격을 받은 세계무역센터건물 23층에 있었던 스콧씨는 특히 화염에 쌓인 건물에 절친한 동료들을 두고 나왔다는 자책감에 오랜 시간 정상적인 생활을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정부 지원 심리치유 프로그램으로 치료를 받은 스콧씨는 당시 동료와 관련 사진들을 방 안에 걸어놓고 상처에 정면으로 맞서면서 가까스로 회복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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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당시의 사진들을 소중히 간직하는 것은 그들의 사연을 대변하고 추억하는 일이 그만큼 큰 가치가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회복되는데 10년이 걸렸지만 지금도 가끔 당시의 상황이 떠오르면서 슬픔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그는 당시 희생된 동료들을 더 추억하고 그들의 용기를 알리는 일을 하면서 자신도 심리적 증상을 극복하는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진정 바라는 것 

미국의 경우, 먼저 떠난 이들이 진정 소망하는 것은 남은 가족의 행복이라는 메시지를 사회적으로 확산시키는 작업도 벌였다. 자책의 고통으로 스스로 벌주지 말고, 앞으로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스콧씨도 이 경험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한국인들에게 말하고 싶다고 했다.

"먼저 떠난 소중한 가족은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이 상실의 슬픔 속에 지옥같은 삶을 살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그들은 남은 가족들이 기쁨과 용기, 영감, 행복을 누리며 살기를 바랍니다. 자신의 인생을 더 의미있게 산다고 해서 떠난 이들에 대한 공경이 소홀해지는 것이라고 생각해선 안됩니다. 저는 희생된 동료들의 사연과 인생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그들을 추억하는데 상당한 시간을 보냅니다."

한자리에 모여 개인의 아픔을 서로 털어놓고, 함께 자원봉사를 벌이는 힐링 프로그램도 치유에 큰 효과를 발휘했다. 같은 상처를 입은 사람들을 만나게 하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일단 자리가 만들어지면 모임이 계속 유지될 정도로 피해자들이 위안을 느꼈던 프로그램이었다.

9.11 정신건강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뉴욕주립 정신의학연구소의 조나단 박사는 당시 미국의 정신의학 의사들과 심리학자들이 자원봉사를 통해 9.11 피해자들을 돌봤다고 전했다. 한국도 그렇게 할 수 있을 것이다. 감성이 풍부하고 가족애가 강한 한국인들에게는 더 길고 힘든 싸움이 될 수 있다. 그만큼 심리치유에 대한 국가와 사회의 지원은 필수적이라고 9.11을 겪은 미국인들은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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