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이불은 치우지 말아주세요." 방 안에 누워 있던 피고인 장모(58)씨가 법원 실무관에게 말했습니다.
재판을 진행할 자리를 만들려고 방안 집기를 분주하게 정리하던 실무관은 손을 멈췄습니다.
장씨는 그 이부자리가 노모가 누웠던 곳이라고 했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10년 넘게 피고인으로 지내던 아들 곁을 지키다 지난 1월 세상을 먼저 떠났습니다.
그 자리만큼은 그대로 둔 채 판결을 선고해 달라고 장씨는 청했습니다.
오늘(28일) 오전 11시 서울 동작구 장씨의 집에서 이례적인 재판이 열렸습니다.
10여년간 재판 절차가 정지됐던 장씨에 대한 선고 공판이었습니다.
원래 공판은 법정에서 열리게 돼 있지만, 거동을 못하고 누워 지내는 장씨의 바람대로 서울중앙지법 형사13단독 박진수 판사와 서울중앙지검 공판1부 박주현 검사, 박현진 변호사 등이 직접 그를 찾아갔습니다.
장씨가 재판에 넘겨진 것은 지난 2000년의 일이었습니다.
교통사고로 척추를 다쳐 누워 지내게 되면서 몇 푼이라도 벌기 위해 사기 도박단에 특수 화투를 만들어 넘기고 200만원을 받은 게 문제가 됐습니다.
사고 후유증으로 다리가 마비되고, 피부 괴사까지 진행되던 상황에 한 달에 100만원을 벌 수 있게 해주겠다는 지인의 말을 듣고 저지른 일이 그에게 '피고인' 딱지를 붙였습니다.
기소 후 법원은 매년 출석할 수 있는지 물었지만 장씨는 악화하는 몸 상태 때문에 법정에 나서길 매번 포기해야 했습니다.
14년만에 장씨의 재판을 연 박 판사는 오늘 그에게 징역 6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습니다.
죄질이 나쁘지만 신체장애로 생활이 어려웠던 점, 범행을 자백한 점 등을 고려해 내린 판결입니다.
재판 장소가 장씨의 집이고 그의 건강이 좋지 않은 점을 고려해 재판은 비공개로 진행됐습니다.
사회복지사들만 가끔 다녀가던 집에 모처럼 손님을 들인 장씨는 "이제는 마음이 홀가분해졌다"고 박 변호사를 통해 말했습니다.
매년 걸려오던 법원 쪽 전화에 죄책감이 들었다는 그는 15분간 진행된 재판이 끝나고서야 엷은 웃음을 지었습니다.
돌아가신 노모 앞에 죄과를 떳떳이 치르는 아들이 됐다는 안도감 때문일 거라고 박 변호사는 말했습니다.
(SBS 뉴미디어부)
14년 만에 집에서 재판받은 투병 피고인…'홀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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