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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안시현 "딸 아이와 함께 우승컵 안고 싶어요"

[취재파일] 안시현 "딸 아이와 함께 우승컵 안고 싶어요"
10대 후반과 20대 초반의 선수들이 주름잡고 있는 KLPGA투어에 올시즌 작지만 의미있는 변화가 감지되고 있습니다. 결혼과 출산으로 필드를 떠났던 아이 엄마가 3년만에 투어에 돌아와 개막전부터 준우승을 차지하며 30대 돌풍을 일으킵 겁니다. 2000년대 한국 골프계의 '신데렐라'로 불렸던 안시현이 그 주인공입니다.

"안녕하세요? 오랜만이네요~지금 김해로 내려가는 중이예요" 안시현은 이번 주말(25~27일) 경남 김해 가야 CC에서 열리는 KLPGA투어 넥센 세인트나인 마스터스 대회 출전을 위해 이동하는 차 안에서 전화를 받았습니다. 운전은 동행자에게 맡기고 흔쾌히 인터뷰에 응해주었습니다.

2003년 제주에서 열린 LPGA투어 CJ나인브릿지 클래식에서 깜짝 우승을 했을 때와 2004년 KLPGA투어 엑스캔버스 대회 우승 후 인터뷰에서 만난 20살의 안시현과 10년의 세월 흘러 아이 엄마가 된 안시현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습니다. 10년 전 예쁘고 공만 잘 치던 '철부지 게으른 천재'가 이제는 딸에게 부끄럽지 않은 엄마가 되기 위해 '완숙한 노력형 골퍼'로 변신해 골프 인생의 2막을 열어가고 있습니다.

-이젠 신데렐라가 아니라 '생계형 골퍼'로 불러야 하나요? "

'생계형 골퍼'라는 표현은 좀 그렇구요 그저 딸에게 부끄럽지 않은 엄마, 떳떳한 엄마가 되기 위해 열심히 연습하고 제가 잘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 뿐이예요. 후배들이 저에게 '쉰데렐라'라고 새 별명을 붙여주고 놀리는데 뭐 그리 나쁘진 않아요.(웃음)"

-아이 키우면서 프로골퍼 생활을 한다는게 쉽지 않을텐데요?

"친정 어머니가 아이를 돌봐 주시긴 하지만 아이 키우면서 연습하고 투어생활하는게 보통 일은 아니죠. 그래도 딸 그레이스는 제 삶의 목표이자 전부예요. 경기중에 보기를 범하고 화가 날 때도 딸만 생각하면 금세 웃음이 나와요. 요즘 그레이스가 말을 시작하면서 너무 귀여워요. 이따금 엄마에게 읽어주겠다고 책을 집어드는데 거꾸로 들고서 뭔 말인지 웅얼거리며 읽는 시늉을 해요. 정말 깨물어주고 싶을 만큼 이뻐요. 그 순간엔 모든 시름이 사라지고 행복해요"

-딸이 몇살이죠?

"어제(22일)가 두 돌이었어요. 작년에 돌 잔치 못해줘서 맘에 걸렸었는데 두번째 생일 잔치는 집 근처 식당에서 가족과 친구들 초대해 제대로 했죠. 은퇴한 박지은 언니와 '절친' 최혜정 프로도 와 주었어요.혜정이는 용인에서 같은 동네에 사는데 같이 아이를 키우는 입장이어서 서로 많이 의지하고 정보도 많이 주고 받아요. 혜정이 아이가 제 딸보다 100일 늦어요 같은 또래죠."

-무슨 정보를 주고 받나요?

"어떤 어린이 집이 좋고 기저귀와 우유는 뭐가 좋고...뭐 이런 정보들이죠. 아이 낳기 전에는 선수들과 어떤 골프채가 좋고 어느 연습장이 좋고 이런 얘길 많이 했었는데..."

-딸도 골프 시킬건가요?

"딸 그레이스에게 유아용 골프채 사줬는데 제법 잘 휘둘러요. 공도 잘 맞히고. 주변에서 '골프선수 시켜야겠네'라고 말하죠. 딸이 커서 골프선수 하겠다고 하면 말리진 않겠지만 일부러 권하고 싶진 않아요. 골프선수가 되기까지 그 과정이 너무 외롭고 힘들거든요."

-KLPGA 국내 개막전인 롯데마트 여자오픈에서 공동 준우승을 차지했는데 기분이 어떠세요?

"최종라운드에서 역전당해 우승을 놓치긴 했어도 그 동안의 긴 공백을 생각하면 대단히 만족스런 결과죠. 오히려 우승을 못한게 저에겐 더 높은 곳을 보고 자신을 채찍질할 수 있는 계기가 됐어요. 다시 채를 잡은지 몇 개월만에 성적이 나니까 골프가 더 재미있어 졌어요. 조금만 더 하면 뭔가 잡힐 것 같은 느낌이 있어요."

-이번 대회 전에 언론의 인터뷰 요청을 모두 사양했는데?

"시즌 첫 대회라서 부담이 많았어요. 모든 분들이 '안시현 어떻게 치나?' 눈 부릅뜨고 지켜보실텐데 동계 훈련의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긴장도 되고...그런 상황에서 대회 시작도 하기 전에 인터뷰부터 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보다 경기에 집중할 필요가 있었어요. 기자분들께서 너그럽게 이해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경기할 때 표정이 예전보다 좀 어두워진 것 같아요?

"주변에서 제가 경기하는 모습을 TV로 보시고 무슨 화나는 일 있냐고 물어보세요. 좀 웃으라는거죠. 저는 잘 모르겠는데 경기에 집중하다보니까 잘 웃지도 않고 무뚝뚝하게 보이나봐요."

-예전보다 오히려 샷은 더 좋아진 것 같은데?

"맞아요. 미국 가서 9주동안 동계훈련 정말 열심히 했거든요. 고등학교 때보다 더 열심히 했어요. 지금은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제가 하고 싶어서 하는 거예요. 연습이 재미 있고 그러다보니까 샷 이 더 좋아진 것 같아요. 거리도 아이 낳기 전보다 오히려 늘었어요. 이번 대회에서 드라이버 샷 평균 비거리가 261야드가 나왔더라구요. 예전에는 250~255야드 밖에 안됐거든요"

-스윙에 어떤 변화를 줬나요?

"예전보다 백 스윙을 줄여 간결하면서도 파워풀한 스윙을 하는거죠. 연습하니까 되더라구요. 또 달라진 게 있다면 '생각'이예요. 예전엔 경기 중에 공을 칠 때 아무 생각 없이 감각으로만 쳤어요. 그런데 이젠 '생각'이라는 걸 하고 쳐요. 다음 샷 할 때 거리를 얼마 정도 남기는 게 좋은지, 바로 그린을 공략할지,레이업(lay-up)을 할지,공을 왼쪽으로 보낼지 아님 오른쪽으로 보내는 게 유리할지,  이런 '코스 매니지먼트'를 하게 되니까 골프가 더 쉬워지더라구요. 보통 생각이 많으면 공이 잘 안맞는다고들 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저의 경우는 생각하면서 공을 쳐야 잘 맞는 것 같아요"

-친하게 지내는 선수는?

"두루 친하게 지내는 편이예요.(최)혜정이가 가장 친하고 김현지,이정은 5, 임지나 조아람... 이런 후배들과 가끔 회식도 하고 수다도 많이 떨어요.

-올해 목표는? 

"일단 상반기에 1승 거두는게 목표예요. 올해 우승하면 KLPGA투어에서 10년만에 우승하는 거예요. 다음 목표는 그 다음에 다시 생각해 봐야죠. 한 팔에 우승 트로피,다른 팔에 딸 아이를 안고 사진 찍는 상상을 많이 해요. 그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어요."

안시현은 인터뷰 말미에 여객선 침몰 사고 희생자와 가족들에게 깊은 애도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매일 뉴스를 보면서 많이 울었어요. 딸을 키우는 입장에서 너무 마음이 아프고 무책임한 사람들에 화도 나고... 그 가족들 마음을 생각하면 무슨 말로 위로를 할 수 있겠어요? 힘 내라는 말이 와 닿지도 않을 거고. 온 국민이 비탄에 빠져 있는데 골프선수들도 뭔가 도울 방법을 찾아봐야죠."

KLPGA, 한국여자프로골프협회는 25일 개막하는 넥센 세인트나인 마스터스에 참가하는 선수들에게 여객선 침몰 사고 희생자들을 애도하는 경건한 복장과 검은 리본 착용을 공지했습니다.

대회 기간 동안에는 대회장에 모금함을 설치해 선수들의 성금을 모아 전달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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